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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아란 Oct 13. 2020

비대면 수업이 당연해지고 있다

코로나 시대의 대학원 수업



교수님, 안녕하세요. 수업을 듣는 학우 중에 어떤 분이 비대면 수업을 선호한다고 해서요. 직장과 학업을 병행 중이라 지금처럼 계속 비대면 수업이면 좋겠다고 합니다.


현재 대학원 1학차, 나는 어쩌다보니 한 수업의 반장(?)으로 뽑혔는데 그래서 앞으로 비대면수업을 계속 할 지, 대면수업을 할 지 의견을 취합하게 되었다. 그리고 취합 후 교수님께는 익명으로 전달했다. 취합한 의견은 소수이긴 했지만, 비대면 수업을 원한다는 의견이었다. 코로나 때문에 비대면 수업을 하니 주간 과정임에도 불구하고 직장과 학업을 병행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생겼고, 이로 인해 계속해서 비대면을 원하는 학생의 수요가 생긴 것이었다.




비대면 수업이 당연한 대학원 새내기


10/5일자로 비대면 수업 기간이 종료되고, 이후 수업 진행방식에 대한 수요조사(대면 혹은 비대면)가 각 강의별로 실시되었다. 비대면 수업을 원하는 학생이 한 명이라도 있을 경우, 그 한 명을 위해 대면수업과 비대면수업이 병행되어야 했고 이는 대면수업+실시간중계라는 형태로 나타났다. 학부 수업의 경우 동영상 강의를 촬영하여 업로드하기도 하지만, 대학원 수업의 경우 대부분 실시간 화상회의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세미나식으로 진행하기 때문에 대면수업+실시간중계라는 새로운 형태가 등장했다.


사실 비대면수업 혹은 대면수업 수요조사를 실시하는 목적은 코로나로 인해 외출이 불안한 학생이 있을 수 있으니 선택권을 주자는 것에서 시작했을 터였다. 그러나 재난상황은 사람들 생각의 default값을 바꾸었다. 다시 말해, 코로나 시대에 첫 학기부터 비대면 수업을 받은 대학원 새내기에게는 비대면 수업이 default값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아예 비대면수업을 염두에 두고 대학원에 진학하는 경우가 생기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비대면수업이 당연해진 대학원 새내기인 나에겐, 비대면수업이 나쁘지 않았다. 누군가는 돈이 한 두 푼이 아닌데, 비대면 수업에 등록금 모두를 내는 것은 아깝다고 말한다. 왜 아까울까? 문득 궁금해져서 '원격수업' 하면 떠오르는 것들을 적어보면, 무척이나 싼 가격, 그래서 좀 듣다 말아도 덜 아까웠고, 회사에서 들으라고 하니 대충 틀어놓고 딴짓했던 적도 있었다. 공급자는 한 번 콘텐츠를 만들면 그걸 몇 년씩 우려먹어서 콘텐츠의 질이 너무 낮았고, 수강 시스템은 너무 올드한 나머지, 익스플로러 조상님 버전에 최적화되어 있어 매번 activeX와의 싸움을 벌였다. 고등학교 때 들었던 인강은 저렴하면서도 좋은 선생님의 강의도 있었지만, 오프라인 때보다 집중력이 짧아서 늘 다른 짓을 하기 일쑤였다.


그런데 대학원에서는 실시간 화상수업이 대부분이어서, 위에서 떠올린 원격수업의 안좋은 기억들이 별로 없었고, 오히려 비대면수업이어서 편한 점도 많았다.




비대면 수업의 장점



1. 이동하지 않아도 괜찮아.


며칠 전, 첫 대면수업을 다녀왔다. 대학 새내기로 돌아간 듯 기다려왔던 순간이었지만, 과장을 조금 보태서, 나는 수요조사에서 대면수업에 투표한 것을 약간 후회했다.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냈던 나는, 오랜만에 1시간 거리를 대중교통을 타고 이동하니 강의실에 도착하자마자 진이 빠져버렸다. 슬세권이니(슬리퍼 역세권), 킥세권(킥보드 역세권)이니 하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일찍 일어나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한 작년의 내가 너무나 대단하게 느껴졌다. 


비대면수업을 할 때는 1시간을 들여 이동할 필요가 없었다. 심한 경우 수업 30분 전에만 일어나서 씻고 노트북을 켜기만 하면 되었다. 새벽까지 과제를 하고 늦게 잠들었더라도 10시 전에만 일어나면 되었다. 대면수업으로 인해 발생하는 이동시간 1시간, 준비시간 합치면 2시간을 나는 좀더 공부나 과제하는 시간에 투자할 수 있었다. 아, 물론 부족한 수면시간에도 투자했다.



2.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괜찮아.


올해 대부분을 집에서 보내면서, 가까운 곳에 볼 일을 보러가는 경우 외에 마스크를 쓸 일이 거의 없었다. 있더라도 1-2시간 내외에 그쳤다. 이미 주변 직장인들은 온종일 마스크를 쓰고 있는 일상에 익숙했을 터였지만, 적어도 나는 아니었다.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집에 돌아올 때까지 몇 시간을 계속 마스크를 쓰고 있으니 그렇게 답답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마스크가 피부에 닿는 부분이 자꾸 가려웠고, 트러블이 올라오려고 했다.


비대면 수업을 들을 때는, 집에서 마스크 없이 편하게 수업을 들었다. 대면수업 첫 날, 대중교통에서 1차적으로 진이 빠지고, 2차적으로 이 마스크 때문에 힘들었다. 얼른 집에 가서 마스크를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3. 영화관보다 넷플릭스가 좋은 것처럼


코로나가 터지기 전부터 이미 어느 순간부터 영화관에 가는 일이 줄어들었다. 넷플릭스에 올라오는 영화를 봤고, 극장개봉 후 넷플릭스에 올라오기만을 기다렸다. 내게 익숙하고 아늑한 공간에서, 먹고 싶은 것 먹으면서, 화장실도 자유롭게 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비대면 수업도 이와 비슷했다. 내게 익숙하고 아늑한 공간에서, 먹고 싶은 것 먹으면서, 화장실도 자유롭게 갈 수 있었다. 나중에 얘기하면서 알게 되었는데 어떤 학우는 화면에 눈만 빼꼼 내놓고 초밥을 먹기도 했고, 출출했던 나는 사과를 깎아먹으며 수업을 듣기도 했다. 3시간 연속수업을 하다보니 항상 밥시간이 애매하게 늦어졌기 때문이었다. 어떤 날은 쉬는 시간 일절 없이 수업이 이루어지는 적도 있었는데, 그 때는 잠시 카메라를 끄고 맘편히 화장실을 다녀오기도 했다.


이렇게 3가지가 비대면 수업의 큰 장점인 것 같고, 최대 단점은 피드백이 아무래도 덜 원활하다는 점이다. 확실히 대면수업일 때, 같은 수업을 듣는 학우로부터 받는 피드백의 양이 더 많은 편이다. 비대면수업일 때는 다른 사람이 마이크를 켜고 얘기할 때 내 마이크를 꺼야 오디오 겹침 현상이 생기지 않아서(오디오가 겹치면 말이 끊기면서 잘 안들린다) 피드백이 즉각적으로 나오기보단 마이크를 껐다 켰다 하면서 순차적으로 이루어졌다. 


결론적으로, 비대면 수업의 단점이 아쉽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비대면수업을 한다고 등록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진 않았다. 위 3가지의 장점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코로나가 바꿀 앞으로의 대학교/대학원


'직장과 대학원을 병행할 수 있을까요?' 


이런 질문은 대학원 준비 커뮤니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질문 중 하나다. 나는 무턱대고 10년 뒤의 내가 잘해주길 바라며 학자금 대출을 받아 대학원에 진학했지만, 직장 없이 대학원에 전념하기엔 생활비가 걱정인 것은 사실이다. 다행히도 나는 결혼 후 전셋집을 구해 원룸 월세처럼 매달 5-60만원을 지출해야한다는 부담이 없고, 양가 부모님이 냉장고를 채워주셔서 배를 굶주리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에 대학원에 도전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비록 한국장학재단에서 한 학기별로 150만원의 생활비 대출을 저금리로 해주긴 하지만, 당장 직장을 그만두면 생계가 막막한 사람에게 대학원이란 그림의 떡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코로나로 인해 비대면 수업이라는 것이 자리잡게 되면서 직장을, 생계를 포기하지 않고서도 학습을 지속할 수 있다는 것은 굉장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생각해보니 상경하기 전 과거의 나는 물리적인 거리 때문에 서울에 있는 대학원을 가고 싶어도 쉽게 포기하기도 했었다.


앞으로 비대면 수업이 보편화 된다면, 혹은 지금처럼 대면수업+실시간중계 방식의 수업이 보편화가 된다면 물리적인 거리로 인해 진학을 포기한 직장인 혹은 지방에 거주하는 사람이 수도권 대학교/대학원에 진학하려는 수요가 더욱 생길 것이다. 물론 지금이야 치열하게 입시 준비를 해야하지만, 인구절벽과 맞물려 기본 TO도 못채워 대학이 발을 동동 구르는 때는 멀지 않았다. 아마 수도권 중심으로 몇몇 대학만 TO를 겨우 채워 살아남고 경쟁력 낮은 대학의 살림살이는 더욱더 어려워질 것이다. 혹은 외국인 학생을 지금보다 더 적극적으로 유치해서 살아남거나, 유명 교수와 강의의 질로 승부를 걸거나. 어쩌면 강의의 질이 더욱 중요해져서 교수 사회에 정년 보장이라는 것이 사라질 지도 모르겠다. 앞으로는 이런 현상이 국제적으로 나타나 세계 유명 대학의 순위별로 학생 쏠림이 나타날 수도 있을 것 같다. 대학교의 국경은 더욱 사라지고, 한국 내에서 살아남는 대학도 소수가 될 것이다. 대체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이 재난은 몇 십년의 미래를 우리에게 앞당겨 오길래 우리의 일상이 이렇게 바뀌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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