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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길의 애정 May 24. 2022

'INTJ'에 '뚜벅이'가 더해진다면

전남 여수 |  여행 계획 수립 기록

 실외 온도가 급격하게 올라가고 있었다. 코 끝을 강렬하게 자극하던 아카시아꽃은 어느새 발향을 마치고 땅으로 떨어지고 있었고, 곳곳마다 붉은 빛깔의 장미가 색감으로 강렬하게 존재감을 드러내는 계절이 되었다. 초록의 계절을 지나 다원색의 다채로움이 거리마다 노출되고 있다.  4~5월은 한 해의 상반기 중 여행을 다니기 가장 좋은 시기다. 알맞은 온도 덕에 활동성은 높아지고, 옷가지의 부피와 무게가 적어 그리 무겁지 않게 짐을 쌀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좋은 시기를 그대로 보내기가 아쉬웠다. 몇 해간 끊임없이 따라오며 괴롭혔던 사회의 무게에 지쳐서, 지난 담양 여행의 여운이 계속 남아서, 그것도 아니면 담양에서의 짧은 일정이 아쉬워서라는 이유로 여행을 계획을 했을 수도 있었지만 나열한 이유를 굳이 들지 않아도 좋은 이유 거리가 될 '계절'을 핑계 삼아 이렇게 또 떠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1박 2일, 기차, 바다, 등산, 사람 손이 덜 탄 곳.


 조건은 단순했다. 관광지로 개발이 덜 된 바다를 볼 수 있는 1박 2일 기차 여행. 그래도 꽤나 전국을 많이 돌아다녀봐서인지 금세 여러 후보지가 머리에 떠올랐다. 여기에 취향을 반영해 남쪽 지역을 중심으로 지역을 줄이기 시작했다. 기차역과 가까우면서 바다를 바로 볼 수 있는 남쪽. 부산, 울산, 여수, 목포, 군산. 총 다섯 곳으로 후보지를 추렸다. 바닷길을 따라 등산할 수 있는 곳에 초점을 두고 사람의 흔적이 최대한 적은 곳을 탐색했다. 

 그러다 '섬'이 떠올랐다. 위에 나열된 곳(육지)들은 이미 너무나도 많이 개발되어 있어 정취를 즐기기 어려웠지만 섬은 육지보다는 덜 개발되어 있을 것이었다. 또 배를 타본 지 꽤 오래됐으니 배 여행을 추가하면 더 다채로울 것 같았다. 행선지가 정해지자 거짓말처럼 '여수'가 바로 떠올랐다. 여수는 지역에서 내건 슬로건 자체가 '섬 섬 여수'일 정도로 섬이 많다. 거문도, 사도 등 이미 이름난 섬이 많았고 교통편이 특별시나 광역시가 아님에도 매우 좋은 편이니 뚜벅이 여행지로 손색이 없는 지역이었다. 


 하지만 여수는 이미 다녀온 뒤 여러 이유로 실망을 많이 했던 곳이라 망설여졌지만 우선 여수엑스포행 KTX를 결제했다. 이제 섬에서 이틀을 모두 지낼 것인지, 당일 입출도를 모두 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했다.
고민 끝에 처음으로 떠난 1박 2일 '혼자 여행'이니 호텔에서 편하게 쉬는 게 좋을 것 같아 당일 입출도를 하기로 결정했다. 


 이제 도착 시간, 이동 시간을 고려해 배 시간을 맞춰서 갈 수 있는 섬을 선택해야 했다. 여수엑스포역에서 돌산까지는 버스 운행과 이동 시간이 맞지 않아 신기항으로 가기는 어려웠고, 여수 연안 여객선 터미널에서 출발하는 섬을 가야 했다. '가보고 싶은 섬' 사이트에서 여수 연안 여객선 터미널 발 행선지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가보고 싶은 섬'이라는 사이트는 사전 예매를 할 수 있고, 출발하는 항 기준으로 어느 터미널에 도착할 수 있는지, 운항 시간대, 잔여 좌석을 볼 수 있어 섬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가보고 싶은 섬' 사이트를 살펴보는 것을 추천한다. ('가보고 싶은 섬'에서 예매가 안되고 현장 발권만 가능한 곳도 있다.)

 거문도를 꼭 가보고 싶었지만, 당일 오후에 출발해 익일 오전에 나와야 하는 일정이라 다음을 기약하기로 하고 시간대가 가장 잘 맞는 금오도를 가보기로 결정했다. 결정을 번복하지 않기 위해 바로 왕복 승선권을 결제했다. 여수 연안 여객선 터미널에서 출발한 배는 금오도의 함구미항으로 도착한다. 함구미항에서는 '금오도 비렁길' 1코스의 시작 지점이라 1코스부터 걸을 수 있어 지리적 위치도 좋았다.

 숙소는 회사에서 임직원 복지로 제공되는 복지포인트가 남아있어 호텔로 결정했다. 일전에 여수를 갔을 때 해상 케이블카를 타며 바라봤던 MVL이 생각나 현재는 소노캄으로 이름이 바뀐 소노캄 여수로 결정했다. 소노캄 바로 옆에는 여수 엑스포 행사장과 오동도가 있어 시내버스 환승이 편한 진남관까지 가는 버스와 택시 승강장이 숙소 바로 앞에 있다. 뚜벅이들에게는 교통면에서 좋은 곳에 위치해 있어 이곳을 선택한 이유도 꽤 컸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지만 나의 경우 여행 계획을 짤 때 교통과 숙소를 먼저 예매한 후 그에 맞춰 스케줄을 짠다. 그리고 여행을 가면 잘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 예쁜 카페를 일부러 찾아가는 것, 호캉스, 체크아웃 시간에 맞춰 체크아웃 같은 것들이 그것이다. 주어진 시간 동안 바다, 산, 강, 나무, 풀, 꽃 같은 자연과, 그 지역에서 나보다 더 오래 있었을 유적을 보는 것을 휴식이라 여기기에 걸음 수가 많고 이동 동선이 길다. 때문에 일정표를 잘 짜야하는데, 이때 구글 스프레드시트를 활용한다. 


 일정표는 날씨나 컨디션에 따라 이행하지 못할 수 있기에 여행지가 상이한 Plan A와 B, 두 개를 짜둔다. 


시간대별로 상황을 짜고, 이동 수단은 버스 번호와 배차 간격, 승차 정류소 → 다음 정류장 → 도착 정류소명을 순서대로 기재하며, 동일 노선을 가는 대체 버스 번호를 모두 기재한다. 지역 버스 어플이 있다면 미리 깔아 두고 구글 스프레드시트에 참고 시트를 만들어 시간표를 미리 받아둔다. 환승 시 정류장의 위치가 다를 경우 미리 지도 앱에서 도보 경로를 캡처해 일정표에 첨부해둔다. 혹 서울에서 쓰는 후불 신용카드가 통용 되지 않을 수도 있어, 지역 홈페이지에서 버스 카드 통용 여부도 미리 체크해둔다. 


 관광지의 경우 입장료, 도보로 관광하는 시간, 모노레일이나 케이블카 등을 타면 몇 팀이 합승하는지, 관광 포인트를 미리 정리해두고, 방문할 식당은 주 메뉴, 1인 식사 가능 여부를 중점으로 정리해둔다. 참고가 될만한 관광 지도는 권역별로 아이패드에 미리 받아 놓는다. 


 뚜벅이 여행은 최대한 많은 돌발 상황(특히 교통)에 대비를 해놔야 한다는 생각 때문인지 국내 여행이지만 국외 여행 수준으로 방대한 자료를 준비해둔다. 구글 스프레드시트는 일정표와 체크리스트, 스크랩 URL을 정리하기에 매우 편리하니 엑셀이 익숙하다면 웬만한 여행 어플보다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다. 

 여행 일정 계획 중에 MBTI와 관련한 재미난 게시글을 봤다.

 ['J' 유형이 보면 뒷목 잡을 'P'유형 일정표]라는 제목이었는데 심리학을 대학 때 전공해서 MBTI는 재미로만 보지만 J 유형인 내가 봤을 때 눈을 감고 고개를 가로저은걸 보면 MBTI가 어느 정도는 맞을 수도 있겠다 생각이 든다. 게시글의 P 유형 사람은 A4 용지의 반도 안 되는 '쪽지'에

 '도착하면 곱창 냠냠, 바다 감상, 추우면 바다 뷰 카페에서 커피 호로록, 룰루랄라 쇼핑, 저녁은 회 찹찹, 다음 날 출발 전 마사지.'

 라고만 적었는데 이걸로 과연 여행이 가능할까 싶었다. 여행의 밑그림을 그리는 게 이렇게 다를 줄이야. '호로록', '룰루랄라', '찹찹'이라니. 분 단위로 여행 계획을 짜는 나에게는 충격 그 자체였다. 딱 하루만 저런 성향으로 살아보고 싶다. 나라는 사람은 임종이 당장 앞에 있어도 신변 정리를 위해 해야 할 일에 순번까지 매겨가며 D-DAY를 계획하고 있을 사람이다. 

 여수 여행을 계획하며 배 시간, 동선 때문에 여러 번 계획표를 수정했지만 이 과정도 여행의 일부라 여기며 찾아보고, 수정하고, 상상해보며 출발할 날을 맞이할 준비를 마쳤다. 자 이제 떠나보자. 수백 번 돌려 본 머릿속 시뮬레이션은 이쯤 하면 괜찮을 것 같다며 신호를 주었다. ('이제 그만'이었을 수도 있다.)

 담양에 이어 고착된 부정적 이미지를 깨줄 지 무척이나 기대가 되는 2주 간의 기다림이 끝을 향해가는 순간이었다. 




- 여수로 향하는 기차 : 여수 2편 바로가기 클릭

- 수수한 여수 섬 여행 : 여수 3편 바로가기 클릭

- 언덕 위 절경 : 여수 4편 바로가기 클릭

- 소소한 도보 여행 : 여수 5편 바로가기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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