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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보는옆집개 Dec 28. 2020

영화를 좋아하는 세 가지 방법

내가 영화 리뷰를 쓰는 이유

 영화팬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의 말이 있다. "영화를 좋아하는 방법은 세 단계가 있다. 첫 단계는 본 영화를 다시 보는 것, 그다음은 본 영화에 대해 글을 쓰는 것, 마지막은 직접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이미 본 영화를 여러 번 다시 보는 것은 나의 일상이자 즐거움이었다. 다만 여러 번 본다고 하더라도 후에 내가 그 영화를 어떻게 봤는지, 무엇을 느꼈는지에 대해 기록하지 않다 보니 그 기억이 금방 휘발되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내가 본 영화에 대해 간단하게라도 글을 남겨보자고 마음먹던 차에 브런치라는 플랫폼이 있다는 것을 알고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쓰기 시작했다.

 프랑수아 트뤼포의 저 말이 진짜냐 아니냐는 말도 참 많았다. 그래서 제대로 된 그의 문장을 인용하기 위해 검색해보니 아래와 같은 기사를 찾을 수 있었다. 해당 문장은 사실 프랑수아 트뤼포의 문장이 아니라, 그의 문장을 각색한 영화평론가 정성일의 말이라는 것이 기사의 요지이다.


 1993년 2월 7일 MBC 라디오 <정은임의 FM 영화음악> ‘영화를 두 배 재미있게 보는 법’ 방송에서 정 평론가는 이런 말을 한다. “첫 번째 조항은, 영화 재미있게 보기는 ‘한 영화를 두 번 볼 때’부터 시작합니다. 이것은 제 얘기가 아니라 프랑수아 트뤼포라는 감독 얘깁니다. 트뤼포 감독은 영화광의 3단계가 있는데요. 첫 번째 단계는 한 영화 두 번 보기, 두 번째 단계는 영화평 쓰기, 그리고 세 번째 단계는 영화 찍기, 이것이 최고의 단계라고 얘기합니다.”

 (중략)

 정 평론가의 첫 평론집 <필사의 탐독(바다출판사, 2010)> ‘프롤로그’에 따르면 “트뤼포가 시네필의 세 가지 단계를 공식적으로 책에 밝힌 것은 1975년 그가 쓴 글을 모은 <내 인생의 영화들 Les films de ma vie>에서였다”라고 한다. "The first step involved seeing lots of movies; secondly, I began to note the name of the director as I left the theater. In the third stage I saw the same films over and over and began making choices as to what I would have done, if I had been the director." (첫 번째 단계는 많은 영화를 보는 것이었다. 두 번째로 나는 극장을 나설 때 감독의 이름을 적어두기 시작했다. 세 번째 단계에서 나는 같은 영화를 보고 또 보면서 내가 감독이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출처: http://www.newstof.com/news/articleView.html?idxno=10214)


 사실 저 말이 누구의 말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어떤 영화를 좋아하다 보면 그 영화를 다시 보고 싶어지는 것이 내게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영화에 대해 글을 쓴다는 것은 주저하게 되는 점이 있었다. 비평 혹은 리뷰 등의 전문적인 차원의 글이 아닐지라도 누군가가 삶의 한 부분을 바쳐 만든 것에 대해 무언가 토를 단다는 것이 조심스러웠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더 단순하고 솔직한 이유도 있다. 보는 것보다 쓰는 것은 훨씬 번거롭고 귀찮은 일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에 대한 글을 쓰게 해 준 큰 동기는 바로 저 문장이다.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의 말이든 정성일 평론가의 말이든, 번거로움과 귀찮음을 이겨내고 쓸 만큼 내가 영화를 좋아하는 것은 확실하니까.

 앞으로 브런치에 리뷰할 영화들은 크게 두 종류이다. 하나는 당연히 내가 좋아하고 관심이 가는 영화들이다. 이 영화들 중에는 이미 여러 번 봐온 영화들도 있을 것이고 새롭게 만나게 될 영화들도 있을 것이다. 또 하나는 매달 한국 박스오피스 상위권에 든 국내 영화들이다. 좋아하는 영화들만 즐겨 찾다 보면 세계가 좁아지는 느낌이 든다. 내 취향과는 무관하게 많은 사람들이 찾는 영화들도 한 번 다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 위해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https://www.kofic.or.kr/kofic/business/infm/introBoxOffice.do)을 참고할 것이다.

 영화를 즐기는 방법, 그리고 영화에 대해 글을 쓰는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그중에서도 내가 영화를 보고 쓸 렌즈 역할을 해 줄 것은 나의 취향과 경험이다. 글이라는 것은 그래서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간의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랄까, 혹은 나의 부족한 시각을 보충하기 위해 좋은 영화 서적에 기대어 글을 써나갈 것이다. 여러 책들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해 줄 책은 바로 로버트 맥키의 <STORY: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 (고영범, 이승민 옮김, 민음인, 2015)이다.

(사진 출처: 알라딘)

 영미권의 여러 영화학교에서 교과서로 쓰이다시피 한다는 이 책은 내가 대학 시절 즐겨본 영화 서적이다. 분명 내가 좋아하는 여러 영화들은 서로 장르도, 스타일도, 제작 시기도 다양한데 그 영화들은 도대체 왜 좋을까, 하는 의문점에서 몇 가지 영화 서적들을 뒤적였던 기억이 있다. 그중에서도 600페이지에 달하는 이 두꺼운 책을 선택해 읽었던 이유는 서두에 나오는 아래의 부분 때문이었다.


 이 책은 규칙이 아니라 원칙에 관한 것이다. 규칙은 <반드시 이런 방법으로 해야 한다>고 말한다. 원칙은 <이런 방법이 효과가 있으며......, 기억이 미치는 한 항상 그래 왔다>고 말한다. (중략) 어떤 원형적인 특성을 품고 있는 영화는 할리우드, 파리, 홍콩, 그 어디에서 만들어지든 관계없이 영화로부터 또 다른 영화로, 한 세대로부터 다른 세대로 이어지는 즐거움의 총체적이고 영속적인 연쇄 반응을 촉발하는 계기가 된다. 이 책은 전형이 아니라 원형에 관한 것이다. 원형적인 이야기는 현실의 구체성으로부터 보편적인 인간 경험을 들어 올린 후 그 내부를 개성적이고 독특한 문화적 특성을 담고 있는 표현으로 감싼다. (중략) 전형적인 이야기는 그 내용을 협소하고 특수한 문화적 경험으로 제한한 후 낡고 몰개성적인 일반성으로 포장한다.(pp.9-10)


 "규칙이 아닌 원형을 찾는다." 이 생각이 나를 사로잡았던 것이다. 시나리오 작법서이지만 이 책은 단순히 특정한 글쓰기 규칙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영화를 사례로 들며 그 영화들이 왜 좋은 영화이며, 그 좋은 영화들을 큼직하게 서로 묶었을 때 어떤 종류들의 영화들이 있는지를 설명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시나리오 쓰기를 공부하는 데뿐만 아니라 다양한 영화를 리뷰하는 데 참고하기에 좋다. 앞으로 다룰 다양한 영화가 어떤 지점에서 좋은지, 어떤 지점에서 아쉬운지를 이야기하기에는 하나의 '규칙'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참조'들과 '원칙'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위의 책 외에도 내가 즐겨 읽던 다양한 장르의 책과 영화, 음악, 그림 등 다양한 것들을 넘나들며 여러 영화들을 리뷰하는 것이 목표이다. 그 목표를 위해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영화들을 만나게 될지 모르겠지만 이것 만큼은 확실하다. 이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나는 영화를 더 깊이, 더 많이 좋아하게 될 것이라는 것. 그리고 아직 발견하지 못한 새로운 영화들, 새로운 세계들을 만나게 될 것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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