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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넬의 서재 Oct 05. 2020

나를 키운건 절박함이었다

후회없이 절박하고 사랑해 보았는가


너는 얼마나 절박했느냐. 너는 얼마나 사랑했느냐.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뜨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죽기 직전에 후회없는 삶을 살았다고 하는 사람은 세상의 모든 부, 명예를 쥔 사람이 아닐 것이다. 그것은 아마 가장 절박한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살고, 전심으로 사랑한 사람들만이 남기고 갈 수 있는 말일 것이다. 괜히 참을 인忍자 세 번이면 못할 일이 없다 하는 게 아니다. 정말 너무 절박해 그저 참고 이겨내는 것외에 달리 방법이 없을 때 사랑이라는 달콤한 열매를 맺어 계속 살아나갈 수 있다.  


두려움이 엄습해 홀로 전장을 뛰쳐나온 아이는 하루도 마음이 편할 날이 없었다. 혼자 살겠다고 뛰쳐나온 것에 대한 죄책감, 집으로 돌아가도 가족들 얼굴에 먹칠을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자책. "살아야겠다"는 절박함에 뛰쳐나왔지만 막상 도망쳐나오고 보니 그것은 충동, 두려움, 도피였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하여 어린 병사는 전장을 완전히 떠나지도 못하고 가족에게 돌아가지도 못하며 그 사이에서 갈팡질팡한다. 차라리 전장에 남아 용감히 싸워 전사했더라면. 차라리 애초부터 징발되지 않았더라면. 차라리 전쟁이란 게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오만가지 헛된 생각에 사로잡혀 절규를 하고 있을 동안, 불행인지 다행인지 희망 한톨기 없어보이던 부대는 승세를 이어나가기 시작한다. 하필이면 자신이 도망쳐 나온뒤 저럴까 하는 철없는 억울함이 가장 먼저 든다. 전쟁터 속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전우들을 멀리서 지켜보며 그제서야 자신의 부끄러움과 초라함을 느낀다. 그냥 얻어진 승리가 아닐터인데. 저들이 내놓은 목숨과 절박함이 있었기에 얻은 결실일터인데. 반드시 승리하여 집에 돌아가겠다는 절박함이 그 병사에겐 부족했으리라. 순간 죽음의 공포를 뛰어넘지 못해 지금의 진퇴양난에 빠졌다. 어쩌면 그를 기다려주는 가족과 고향이 없었더라면 더 처절하게 싸울 수 있었으리라. 쓸데없이 따뜻하게 차려놓은 밥 한 그릇, 뜨뜻하게 데운 방바닥이 자꾸 생각나 순간을 참지 못하고 홀로 도망쳐 나왔다. 그리고 정말 어디 돌아갈 곳 하나없는 곳에서 혼자가 되었다.  


다시 전장으로 돌아간다 한들, 도망친 대가를 치뤄야할 것이요, 이대로 집으로 돌아간들 평범한 삶을 영위할 수는 없으리오. 아무것도 남지 않은 상태에서 어린 병사의 진짜 절박함은 시작된다. 


어쩌면 그 절박한 사랑을 영위하기 위해 자꾸만 아픔 속으로 내몰아치는 것인지도 모른다. 두렵다. 한바탕 슬픔이 스치고 난 후 찾아온 평온함은 다시 잃기 싫을만큼 달콤하다. 차라리 그 달콤함을 몰랐더라면 좋으려만. 똥개 훈련 시키듯 겨울이 지나면 기어이 봄이 오고 만다. 하지만 더 두려운 사실은 다가온 봄을 영영 잊지 못해 거기에 안주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겨울내 없으면 죽기라도 할듯 했던 외투, 장갑, 모자는 봄이 오면 모두 장롱신세로 전락한다. 따스한 햇빛의 달콤함에 지나간 혹독함을 싸그리 잊어버린다. 한때 비장했던 절박함, 강렬했던 사랑 모두 녹아내리고 만다. 어쩌면 진짜 시험은 겨울이 지난 뒤 따스한 햇살이 비어있는 마음을 간질일때 시작되는 걸지도 모른다. 진짜 모험은 어린 병사가 전장을 뛰쳐나온 뒤 시작된다. 젊은 청춘의 사랑은 그 마음이 조금씩 식어갈 때쯤 시험에 들고, 수십년을 함께 해온 사랑은 삶의 동반자가 더 이상 곁에 없을 때 시작된다.  


안이해졌던 마음은 그래서 갑작스레 쏟아지는 채찍질에 다시 고통스레 매질당할 수 밖에 없다. 그것은 아마 지키지 못한 절박함과 사랑의 대가일 것이다. 정말로 그렇다. 그때가 되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정말로 그저 참고 견뎌내는 것일 뿐이다. 전쟁이 끝난 승리의 전쟁터는 돌아갈 수 없는 곳이 되어 버렸다. 돌이킬 수 없는 떠나버린 이의 마음은 그저 시간을 벗삼을 뿐이다. 영영 다시 만날 수 없는 임이 보고 싶은 건 정말로 그저 참는 것 외에 별 수가 없다. 이때 다시 엄습하는 고통의 크기는 얼마나 사랑했느냐, 얼마나 절박했느냐에 반비례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인내하다보면 다시 얼음이 녹고, 꽃이 필 것이다.  


그러면 그때 다시 한번 묻고 싶다. 처음의 그 절박함, 사랑하는 마음을 오래 지켜낼 수 있는지. 매순간 후회남지 않도록 사랑하고 절박할 수 있는지를. 





<말장난: 태어나버린 이들을 위한 삶의 방법론> 中 "절박함" 발췌


모두가 한번쯤은 마주해야 할 깊은 무의식으로 떠나는 성장형 에세이. 숨겨두었던 기억 속 어둠을 의식 밖으로 끌어내어 내면의 아이를 자유롭게 해주는 치유의 여정. 태어나버린 모든 이들을 위한 서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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