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겨울 눈꽃송이가 피었다.
그해 첫 눈은 너만큼이나 갑작스럽게 다가왔다. 날이 추워졌다는 것 외에는 특별한 경고도 없이. 지난밤 문득 외롭다고 몸을 웅크렸을 때 느꼈던 너의 에너지 같았다. 행여나 내 살결에 네 기운이 닿아 놀랄까 온몸을 꼭 감싸 안아주는 너의 존재같았다. 하룻밤 자고 일어나니 횡량했던 내 마음을 하얗게 뒤덮고 남을 만큼의 눈이었다. 분명 똑같은 세상인데, 세상이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간밤의 꿈이 꿈이 아니였다는 걸 상기시켜주려는 듯이.
창문을 여니 차가운 바람이 눈꽃을 얼굴에 흩뿌려댔다. 피부에 닿는 눈꽃눈꽃마다 알 수 없는 감정을 꽃피웠다. 그 속엔 기쁨, 사랑, 감사, 행복 따위의 노래가 담겼다. 내 감정과 분리된 다른 누군가의 감정이었다. 먼 곳에 있는 네가 나에게 직접 닿지 못함이 한이 되었나. 혹시라도 내가 너를 잊을까 눈꽃송이마다 너의 웃음, 농담, 눈빛이 담겨있었다.
대지를 뒤덮은 눈은 겉으로는 쌩쌩한 너만큼이나 차가워보였다. 그렇지만 차가움으로 둔갑한 하얀 눈밭은 분명 대지에 스며 녹아드는 온기를 품고 있었다.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너의 떨리는 눈빛과 닮아있었다. 혹시라도 상처받을까 차가움으로 무장했지만, 눈빛만으로 세상을 녹여버리는 네 모습 그 자체였다.
한 겹 한 겹 쌓인 눈꽃은 벌거벗었던 겨울나무에 꽃을 피웠다. 그 사랑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나뭇가지에서 지는 눈꽃송이가 흩날렸다. 하늘에 퍼지는 눈꽃송이는 피아노 음반이라도 치듯 통통 거리며 튀어올랐다. 크리스마스 캐롤이 흘렀다.
눈덮인 화폭을 담으려 카메라를 꺼냈다. 가만히 창문 앞에 서 있어도 들리는 네 목소리와 장난기 넘치는 네 얼굴이 보였다. 첫 눈이 내리면 가장 먼저 사진 찍어 보내고 싶은 사람이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라고 했던가. 이제는 직접 사진을 보낼 수 없는 사람에게 설경을 통째로 선물받았다.
첫 눈이 내리면 생각나는 사람과 읽고 싶은 <말장난>
모두가 한번쯤은 마주해야 할 깊은 무의식으로 떠나는 성장형 에세이. 숨겨두었던 기억 속 어둠을 의식 밖으로 끌어내어 내면의 아이를 자유롭게 해주는 치유의 여정. 태어나버린 모든 이들을 위한 서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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