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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넬의 서재 May 18. 2021

내게 우주 그 자체였던
사람이 사라졌다.

웹툰 <이토록 보통의> 웹소설화 1편

웹툰 <이토록 보통의> "어느 밤 그녀가 우주에서" 에피소드 중



이 시리즈는 다음 연재 웹툰 <이토록 보통의>의 두번째 에피소드인 "어느 밤 그녀가 우주에서"편의 웹소설화입니다. 이 웹소설은 캐롯 작가님의 원작에 기반한 팬창작 웹소설로, 상업적으로 사용될 수 없습니다. 웹툰 <이토록 보통의> "어느 밤 그녀가 우주에서"는 다음 웹툰에서 무료로 볼 수 있습니다. (2021.05 기준)


"어느 밤 그녀가 우주에서" 1화 (다음 웹툰, 캐롯 작가님)



제 1화


*이 이야기의 배경은 가까운 미래입니다. 


나는 항상 이유를 모르고 불안했다. 너른 우주에 떠 있는 통통배처럼. 내게 삶이라는 건 흔적도, 무게도 없이 흘러가는 느낌이었다. 딱히 무언가를 이루겠다는 삶의 의욕이 부족했던 걸까. 나의 삶은 항상 우주의 파도에 맞춰 떠다니기만 할 뿐, 직접 키를 잡고 방향을 이끌어가지는 못했다. 


그럴때면 끝도, 방향도 알 수 없는 고독감이 한 번씩 몰려왔다. 이렇게 망망대해에 떠다니다 어느 순간 가라앉아 사라져버려도 아무도 눈치조차 채지 못할 것이란 기분. 이 세상에 두 발로 씩씩하게 걷기는 커녕, 발도 닿지 않는 수면 위에 떠다니며 삶을 영위하는 기분. 뭐라고 칭할지 모를 이 기분은 공허함, 두려움, 우울함, 불안함, 자괴감, 허무함, 상실감 등 여러가지 이름을 바꿔가며 나를 괴롭혔다. 


이런 나를 허공이 아닌 두 땅 위에 안착시켜준 건 P였다. 


나처럼 잘 살다가도 갑자기 세상이 너무 무섭고, 외롭고, 불안할 때, 그녀는 우주 다큐멘터리를 본다고 했다. 어릴 적부터 우주 탐험사가 꿈이였다고 말하는 그녀는 늘 우주에 대한 영상을 보며 자라왔다고 했다. 나와 같은 우주 공간에 살면서도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완전히 다른 여자였다, P는. 


내가 우울에 빠져 있을 때마다, 그녀는 이렇게 말하곤 하였다. 


"은기야, 봐봐. 이 세상에는 지구가 있고, 지구보다 훨씬 큰 행성이 있고, 또 그것과 상대도 안되는 크기의 태양이 있고, 은하수가 있고.... 또 그런 은하수가 이 우주에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걸..." 


나는 그렇게 광활한 우주 속에서 아등바등 연명하는 삶의 크기가 결국에는 우주의 미생물 만큼의 크기도 되지 않는데 더 허무해지지 않느냐고 반문하곤 하였다. 그러면 나에게 너무나 과분한 P는 이렇게 대답해주었다. 


"흠... 글쎄... 다만, 우주를 가만 보고 있으면, 내가 하고 있는 고민들이나 걱정들이 무척 사소하고, 보잘 것 없게 느껴져. 그리고 나에겐 그게 꽤나 위로가 돼. 그러니까 나는 이 우주가 은기에게도 조금이나마 위로가 됐으면 좋겠어." 


우리는 같은 우주 아래서 함께 우주를 올려다보았다. 그녀 말대로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어마어마한 우주를 바라보며 나는 마음 속으로 늘 기도했다. 그녀가 꿈을 이루지 못하게 해달라고. 그래서 나를 두고 우주로 떠나는 일이 없게 해달라고. P는 이미 나에게 우주 그 자체였으니까. 



"어느 밤 그녀가 우주에서" 2화 중 (다음 웹툰, 캐롯 작가님)



제 2화


사실 그녀는 나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도 과분한 여자였다.


고작 로봇 대여점 주인인 나는 바쁠 일이 없지만, 우주 항공국 공무원인 P는 함께 살면서 밥 한끼 못 먹을 만큼 바빴다. 나는 그저 그녀가 나를 사랑하는 내 여자친구라는 사실에 감사할 뿐이었다. 


한 지붕 아래 살았으나, 내가 그녀의 얼굴을 마음껏 바라보고 꼭 껴안아줄 수 있을 때는 그녀가 일에 지쳐쓰려져 잠들었을 때 뿐이었다. 그녀의 얼굴을 보기 위해 새벽같이 일어나 잠든 P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이 내 삶의 행복이었다.


P는 그런 나에게 미안했는지 항상 나를 안심시키는 약속을 했다. 자신이 휴가를 받는대로 니스에서 한 석 달 머물다 오자고 했다. 


느지막이 일어나서 커피 한 잔씩 마시고, 해변에서 산책하고. 샤갈 미술관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샤갈 그림도 실컷 보고. 모나코 까르푸에서 쇼핑해온 맛있고 싱싱한 재료들로 스테이크도 잔뜩 해먹자고 하였다. 


나는 그런 그녀의 사랑을 맘껏 받고 있다는 사실에 감동해 눈물을 찔끔 흘리고는 하였다. 


어느 날 그녀가 이 모든 것을 바꿔버릴 중대 발표를 하기 전까지는. 


아직도 나는 가끔 그날 밤, 내가 그녀에게 보인 반응을 후회한다. 만약 내가 그날, 그녀가 마침내 이뤄낸 것을 진심으로 기뻐해줬더라면.... 모든 게 달라졌을까. 




"어느 밤 그녀가 우주에서" 3편 중 (다음 웹툰, 캐롯 작가님)



제 3화 


물론 나도 알고 있었다. P가 몇 년 동안 자신의 꿈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그리고 내가 그녀를 사랑하는 만큼 진심으로 기뻐해줬어야 마땅했음을. 그녀가 1년이란 시간동안 우주에 나가기 위해 얼마나 많은 것들을 희생해왔음을. 엄청난 경쟁력을 뚫고 당당히 그 자리를 거머쥐었음을. 


그러나 나에게 먼저 떠오른건, 그녀의 앞길을 위한 축복보다 그녀가 없는 이 집에서 견뎌내야 할 시간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자신이 곧 우주로 1년 동안 떠난다는 생각지도 못한 일방적인 통보에 나는 그녀에게 버럭 화를 내고 말았다. 


차마 배신감과 불안함을 감추지 못하고 그녀에게 화를 내고 헤어지고 오는 길. 나는 모양 빠지게도 교통사고를 당했다. 


의식을 잃은 가운데 어렴풋이 떠오르는 건 오열을 하는 P와 나를 둘러싼 의료진들, 그리고 귀따갑게 울리는 삐삐- 거리는 소리였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눈을 떴을때 가장 먼저 보이는 건 병원 천장이었다. 


시간이 꽤 흘렀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지만, 놀랍도록 가볍고 상쾌한 기분이었다. 지금쯤 P는 우주에 있겠지. 그녀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누구보다 잘 아는 내가 제일 먼저 축하해줬어야 하는데. 눈을 뜨자마자 후회감이 몰려왔다. 


"은기야....!" 


병원 문이 딸칵 열리고 들어온 건 놀랍게도 P였다. 쉴새없이 내 이름을 부르며 우주에 있어야 할 P가 닭똥같은 눈물을 흘리며 내 얼굴과 두 손을 연신 꽉 잡았다. 


"은기야, 은기야... 나... 안 떠나. 우주 안가기로 했다고... 이제 항상 같이 있는 거야. 영원히..." 


그렇게 나는 다시 P와 예전처럼 한 지붕 아래 살며 일상으로 돌아가는 듯 하였다. 가끔 꿈에, 차에 치이던 순간이 나와 소스라치게 놀라며 깨는 일이 종종 있음에도 나는 그녀가 곁에 있다는 것에 행복했다. 


그녀의 말처럼 모든 것이 영원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내가 믿고 있던 모든 것이 거짓이라는 것을 알기까지의 시간은 고작 1년이었다. 



"어느 밤 그녀가 우주에서" 4화 중 (다음 웹툰, 캐롯 작가님)


제 4화 


그 날 이후 일 년 여가 지났다. P는 내가 사고가 난 후에, 계속해서 출근하지 않았다. 말은 휴가를 당겨 받았다고 하지만... 예전 같으면 휴가건, 공휴일이건 울려대던 핸드폰이 잠잠한 것을 보니 일을 아예 그만두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묻지 않는다. 이것으로 좋다. 


우리는 소소하게 텔레비전을 보며 웃고, 니스 해변이 나오는 방송을 보며 추억에 잠긴다. 말 나온 김에 다시 니스로 여행을 가기로 약속한다. 지난 번 묵었던 쌩텍쥐베리 호스텔에서 묵을 거면 침대가 너무 더러우니 침낭을 가져가자고 한다. P는 침대 위에서 침낭이라니 꼭 아기 같다며 피식 웃는다. 그럼 자기는 그냥 그 아기를 꼭 안고 자겠다며 나를 꼭 껴안아 자기 쪽으로 당긴다. 자장가도 불러주겠다는 P의 목소리에 취하는 와중에 - 


띵동 --


초인종이 울린다. 아무도 찾아올 일 없는 야밤에. 


P를 찾는 목소리가 문 너머로 들린다. 방문자 신상 정보 스캔이 완료됐다는 안내문과 함께 현관문이 열린다. 순식간에 공무 집행 로봇 서넛이 집 안으로 들이닥친다. 늦은 시간 남의 집에서 무슨 짓이냐고 물을 새도 없이. 집행 로봇들은 P님의 의뢰 집행 중이라며 P를 끌고 밖으로 나간다. 이상하리만큼 P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양팔을 잡힌채 로봇들의 안내에 따라 집 밖을 나간다. 


뭐가 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일인지 어리둥절한 가운데 다급히 P의 이름을 외친다. 놀랍게도 외침에 대한 답변은 내 등 뒤에서 돌아온다. 


"응, 은기야." 


방금 문 밖으로 끌려 나간 P가 싱긋 웃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서 있다. 


"나 여기있어." 





원작 웹툰 <이토록 보통의> 중 "어느 밤 그녀가 우주에서" 보러가기: 

http://webtoon.daum.net/webtoon/viewer/4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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