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23장 왜 기장이 조종할 때 사고 발생 확률이 더 높을까? - 권력 거리

by 닐슨
야마구치 슈 지음, 김윤경 옮김, 다산초당(다산북스), 336쪽
헤이르트 호프스테더
네덜란드 림뷔르흐 대학교, 조직 인류학 연구자


철학은 학창 시절 교과목으로 배웠지만 기억에 남아있는 내용은 거의 없다. 세계사나 사회 과목 수업 중 철학을 시대별로 구분하고 그 시기의 대표 인물들을 분류하고 암기하는 게 전부였던 터라 제대로 된 철학을 배울 기회는 없었다. 내가 배운 철학은 이런 식이었다. 소크라테스의 제자는 플라톤이고 그 제자는 아리스토텔레스다. 이건 “소카락을 푸러트리면 아퍼”라고 외우면 쉽다는 식이 내가 배운 철학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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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을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접할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하던 차에 제목이 끌리는 책을 알게 되었다. 책은 다른 철학 책처럼 이야기를 시간순으로 구성하지 않았다. 여러 철학자가 남긴 개념을 정리해서 사람, 조직, 사회, 사고 이렇게 네 부분으로 구성하고 있다. 목차를 보며 관심 있게 살펴보고 싶은 부분을 쉽게 찾아볼 수 있고 철학자와 개념에 관해서 다른 책이나 검색을 통해서 조금 더 깊은 내용을 쉽게 알아볼 수도 있었다.


내가 관심 깊게 읽은 내용은 2장 “왜 이 조직은 바뀌지 않을까?”에서 “23. 권력 거리” 부분이다. 네덜란드의 사회 심리학자인 헤이르트 호프스테더는 전 세계적으로 조사한 ‘상사에게 반론할 때 느끼는 심리적 저항 강도’를 수치화하여 “권력 거리”라는 개념으로 정의하였다.




항공기를 기장과 부기장 중 어느 쪽이 조종할 때 추락사고의 확률이 더 높을까. 당연히 경험이 적은 부기장이라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경력이 10년이나 더 많은 기장이 조종할 때 추락사고의 확률이 높아진다는 통계가 있다. 같은 목적이 있는 2인 이상의 집단을 조직이라 정의한다면 항공기 조종실은 최소한의 조직이라 말할 수 있다. 이때 한 사람의 판단과 행동에 대해 다른 사람이 반대 의견을 쉽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기장이 조종타를 잡고 있을 때 부기장은 반대 의견을 솔직히 말할 수 있을까.


모두가 ‘예’라고 할 때 ‘아니오’라고 할 수 있는 친구, 그런 친구가 좋다


이 카피로 순식간에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광고를 기억하는가. 당시로서는 상당히 파격적이었던 한 증권사의 광고는 검정 슈트를 입은 여러 사람이 모두 같은 방향을 보고 있을 때 혼자 다른 방향을 보며 ‘아니오’라고 손가락을 좌우로 젓는 모습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 광고는 나에게 “용기”로 각인되어있다. 권력 거리는 다른 말로 용기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우리나라도 비슷하지만 저자가 살고 있는 일본 사회에서는 상사가 잘못된 결정을 내릴 때 부하직원이 쉽게 반론을 제기하지 못한다고 한다. 이는 일본인들이 다른 국가 사람들보다 자신의 의견을 밝히는 데 저항감을 느끼는 정도가 더 강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즉 권력 거리가 큰 것이다. 일본을 가장 잘 설명하고 있다고 일본인이 자평하는 책인 “국화와 칼”을 보면 일본인의 특성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사람은 윗사람에게 ‘온(恩)’을 받는다. 그러나 자신보다 낮은 사람에게 받은 ‘온’은 못마땅한 열등감을 불러일으킨다. 일본인이 “누구에게 ‘온’을 입었다”고 말하는 것은 “누구에 대해 의무와 책임을 지고 있다”는 뜻과 같다. (국화와 칼 - P.72) - 루스 베네딕트 지음, 유승우 엮어 옮김, 위너스초이스


이런 일본인의 문화적 특성이 있기에 권력 거리가 커지게 된다. 이러한 사회에서 혁신, 즉 패러다임의 전환은 어떻게 될까. 과학자 토머스 쿤은 “나이가 낮거나 조직에 속한지 얼마 안 된 사람”으로 정의한 상대적 약자가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표명해야 기술 혁신이 가속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일본은 권력 거리가 커서 약자의 의견은 쉽게 무시된다. 이것이 세계 최고를 달리던 일본이 혁신기술부터 전통적인 산업까지 모두 다른 나라들에 따라 잡히고 이제는 뒤처지고 있는 이유가 될지도 모른다.


이 두 가지 사실로 보아 조직의 리더, 상사는 자신의 의견에 반대하는 의견에 대해 귀를 기울이는 경청의 수준을 넘어 적극적으로 자신에게 반대하는 의견을 찾아 나서고 수용하려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23번째 장은 세상 모든 조직을 이루고 있는 그 구성원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은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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