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대중교통 파업의 구조적 원인과 공공성 훼손에 관한 고찰
[신수연의 Insight Report : 도시] Vol.1
저녁 어스름이 내려앉으면, 도시는 피로의 제국이 된다.
낡은 코트를 여미고 정류장에 서 있는 저 등(背)들은 누군가의 아버지이고 딸이며 하루치 노동을 마친 우리 가족이다. 그들을 실어 나르는 버스와 지하철은 도시가 허락한 유일한 위로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최근 이 위로가 위태롭다. 시민의 발을 두고 '적자'라는 주홍글씨가 새겨지기 시작한 후부터다.
묻고 싶다. 서울은 언제부터 우리의 자유로운 이동을 '비용'으로 계산하는 비정한 도시가 되었는지.
불을 끄는 소방관에게 '영업이익'을 묻지 않듯, 삶을 나르는 대중교통에도 '수익'을 물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숫자의 문제가 아니다. 사람의 존엄에 관한 이야기다.
최근 서울 대중교통의 파업과 태업 빈도가 급증하며 시민의 피로감이 한계에 다다랐다. 각종 SNS에서는 시민 불편에 집중돼 버스 기사를 질타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본질을 벗어난 1차원적 접근이다. 이번 총 파업이 되기까지 다양한 흐름이 있었으며 그 시작은 노사 갈등이 아닌 서울 시정 철학이 근본적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과거 박원순 시정(2011~2020)은 '노동 존중'을 기조로 노사 갈등을 봉합해 왔다. 하지만 요금 동결과 정규직 전환 등으로 인한 누적 적자가 지속됐고 이는 봉합되지 못한 채 고스란히 현 오세훈 시정(2021~현재)의 숙제로 넘어왔다. 오세훈 시정은 '경영 합리화'라는 칼을 빼 들었다. 18조 원에 달하는 누적 적자 해소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박원순 시정이 지난 10년 간 철학을 바탕으로 동결했던 대중교통 요금을 취임 후 평균 28% 이상 인상했다. 또한 감축과 구조조정을 강하게 압박하며 노조와의 관계를 '강 대 강' 파국으로 몰고 있다. 매년 반복되는 파업 위기는 이 구조적 충돌의 파열음이다.
위의 표처럼 모든 대중교통 수단이 최소 24% 이상 폭등했다. 특히, 고지대와 달동네 등 가장 취약한 곳을 누비는 '마을버스'가 33.3%로 가장 높은 인상률을 기록했다는 게 시사점이다.
지하철 역시 마찬가지다. 한 번에 300원을 올리면 저항이 클 것을 우려해 150원씩 두 번에 나눠 올리는 '조삼모사' 꼼수를 썼지만 최종 인상폭은 24%다. 오세훈 시정은 이러한 폭력적 인상을 단행하고도 여전히 노동자 탄압과 적자 논리만을 펼치고 있다.
오세훈 시정의 경영 합리화 논리는 공공 서비스의 본질을 오독한 '천민자본주의'의 그림자라 할 수 있다. 가장 치명적 오류는 대중교통을 '수익을 내야 하는 기업'으로 착각한다는 점이다.
생각해 보자. 우리는 소방서에 "올해는 화재 진압 수익이 적자니 소방관을 줄이자"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소방 서비스가 도시를 지키는 필수 인프라기 때문이다. 대중교통 역시 시민의 이동권을 보장하는 '도시의 혈관'이다. 그런 관점에서 지자체 예산은 회수해야 할 '투자금'이나 낭비되는 '영업 손실'이 아니라 도시 기능을 유지하는 '사회적 유지 비용'이다.
무엇보다 공공이 비용을 내세워 책임을 방기하는 순간 고스란히 '개인의 짐'으로 전가된다는 것이다. 서울시가 대중교통 투자를 멈추면 개인은 생존을 위해 치솟는 교통비를 감당해야 한다. 경제적 약자들은 이동에 제한이 생기고 현대 도시에서 이동의 제약은 노동과 교육 등 기초 권리 박탈로 이어진다.
즉, 이동권은 단순 '교통' 문제가 아니다. 이를 공공이 보장하지 않고 개인에게 맡겨버리는 건 서울시가 시민에게 '각자도생(各自圖生)'을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오세훈 시정은 민간 기업의 잣대인 '영업이익'이나 '부채 비율'로 대중교통뿐만 아니라 서울시의 공공 사업 영역을 평가하고 있다. KPI(핵심성과지표)는 돈이 아니라 '정시 도착', '시민 안전', '탄소 배출 감소', '교통 약자 이동권'과 같은 사회적 가치로 재설계되어야 한다.
� 천민자본주의(賤民資本主義, Pariah Capitalism)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가 사용한 용어로 쉽게 말해 물질만능주의.
합리성과 윤리를 상실하고 돈과 물질을 최고 가치로 여기며, 인간의 이기심과 불공정성으로 인해 경제적 병리 현상을 낳는 왜곡된 자본주의
대중교통을 '수익 사업'이 아닌 '기본권'이자 도시 경쟁력을 높이는 '투자'로 재정의해 적자 보전을 넘어, '전면 무료화'를 선언하는 도시들이 속출하고 있다.
대표적인 성공 사례는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Tallinn)이다. 2013년 탈린시는 과감하게 시민을 대상으로 대중교통을 전면 무료화했다. 당시 "도시 재정이 파탄 날 것"이라며 반대 진영의 비난도 있었지만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혜택을 받기 위해 탈린 교외 거주자들이 탈린으로 주민 등록을 옮겨 세수(주민세)가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이동의 자유로 유동인구가 늘어 지역 상권이 살아났다. 그 결과 탈린시는 오히려 매년 약 260억 원 이상의 재정 흑자를 기록하게 됐다.
이것이 바로 대중교통 무료화가 비용 낭비가 아닌 고도의 경제 전략임을 증명한 '탈린의 역설(Tallinn Paradox)'이다.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다. 룩셈부르크는 2020년 세계 최초로 국가 단위 전면 무료화를 단행했고 대만 타이중은 '10km 무료' 정책을 통해 오토바이 지옥을 벗어나 대중교통 중심 도시로 탈바꿈했다. 독일 역시 월 49유로 무제한 티켓으로 전 국민의 이동권을 보장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이 가능하게 한 건 넘치는 재원이 아니다. 이동의 자유가 결국 도로 혼잡 비용을 줄이고 환경을 살리며 도시 전체의 활력을 높이는 '진짜 효율'임을 알기 때문이다.
선진 도시들이 '무료'와 '무제한'으로 나아갈 때 오세훈 시정은 대처식 낡은 계산기를 두드리며 징벌적 요금 인상을 강행하고 있다. 돈을 아끼겠다며 시민의 발을 묶어 12조 원의 혼잡 비용을 길바닥에 버리고 1조 원의 적자를 아까워한다. 숫자에 갇혀 본질을 보지 못하는 '가짜 효율'의 전형이다.
그 '효율화'가 오히려 더 높은 사회적 비용을 유발하는 역설을 직시해야 한다.
데이터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서울 시민이 꽉 막힌 도로 위에서 시간과 연료로 낭비하는 '교통 혼잡 비용'은 연간 12조 원을 상회한다. 반면 서울교통공사의 연간 적자는 약 1조 원 수준이다. 오세훈 시정은 1조 원의 적자를 아끼려 대중교통을 옥죄 시민들에게 12배가 넘는 비용을 전가하는 '죽음의 나선'을 저지르고 있다.
� 죽음의 나선 (Death Spiral)
특정 자산이나 시스템의 가치가 하락하며 연쇄적인 붕괴를 일으키는 악순환 구조를 의미함.
비용 절감(배차 간격 확대)→승객 불편→이용객 이탈(자가용 구매)→수익 악화의 무한 루프.
적자 감소를 위한 요금 인상, 배차 간격 늘리기, 인력 줄이기로 이어지면 시민들은 "이 돈 내고 불편하게 탈 바엔 차라리 차를 산다."라며 이탈하게 된다. 안 그래도 복잡한 도로는 더 막히고 매연은 늘어나게 된다. 남은 것은 이동권을 침해받은 시민들과 텅 빈 적자 투성이의 대중교통뿐이다.
지금 오세훈 시정이 말하는 '경영 효율'은 세금을 아끼는 게 아니다. '교통 체증'과 '환경 오염'이라는 더 비싼 청구서를 시민에게 떠넘기는 행위다.
그러니 단어를 바꿔 불러야 할 때인 거 같다. 대중교통에 들어가는 재정 지원은 '적자 보전'이 아니다. 도시 마비를 막기 위한 저비용 고효율의 '사회적 투자'로 재정의해야 한다.
공동체는 쉽게 유지되지 않는다. 하물며 가닿을 수 없다면 더더욱이 어려울 것이다.
적자를 핑계로 대중교통의 장벽을 높이는 건 시민들을 각자의 섬에 가두는 '강제 격리'나 다름없다.
이렇듯 이동권은 단순 물리적 이동의 문제가 아니다. 공동체를 지탱하는 최소한의 물리적 합의인 것이다.
Editor. 신수연 (문화NOT공장 CHIEF DIRECTOR)
부서질 것 같던 스물에는 서른이 되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마흔을 바라보는 지금도 여전히 위태롭습니다.
그래서 혼자가 아닌 '함께'를 택했습니다.
효율적인 공장을 거부하고 비효율적인 문화를 만듭니다.
정의를 말하면 이상한 사람이 되는 시대에도 꿋꿋하게 '공공선'과 '책임 있는 자유'를 이야기합니다.
거대한 사회를 바꿀 수 없다면, 우리가 살고 싶은 사회를 작게라도 만듭니다. 상상하고, 실험하고, 실패하는 것이 허락된 공동체를 짓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