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이면도로의 사유화와 자동차 중심 도시 계획의 한계에 관한 고찰
[신수연의 Insight Report : 도시] Vol.2
기억하는가. 불과 20여 년 전만 해도 동네의 골목은 아이들의 운동장이었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면 약속된 마냥 골목에 나와 공을 찼다.
분필로 그린 땅따먹기며 온갖 낙서로 어지러웠고 이웃집 담장 너머로 공이 넘어가면 제 집 드나들 듯 꺼내 오던 시절이었다. 그런 소음들이 다 괜찮은 시절이었다.
그러나 2026년의 골목은 적막하다. 아이들의 고함은 사라지고 후진하는 차량 소리, 주차 시비로 오가는 고성과 빼곡히 들어찬 쇳덩이들.
우리는 편리를 위해 무엇을 포기했나? 도시는 시나브로 우리의 골목을 앗아 자동차에 증여했다. 이것은 단순 주차난의 문제가 아니다. 공동체가 머물 물리적 공간이 사유재산의 보관소로 전락한 서글픈 증명이다.
서울시 인구와 자동차 등록 수 통계를 겹쳐보면 기이한 역주행 현상이 목격된다. 지난 5년간 서울에서 사람은 30만 명 이상 줄었지만, 자동차 등록 대수는 요지부동이다.
인구가 줄어들면 차도 줄어드는 것이 당연할 것 같지만, 서울은 정반대로 가고 있다. 2022년 자동차 등록 대수가 사상 최대치인 319만 대를 돌파한 이후, 인구 감소세에 비해 차량 감소 폭은 미미하다. 결과적으로 서울은 1인당 감당해야 하는 차량의 밀도와 도로 혼잡도는 오히려 증가하며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도로가 막히면 지하철 등 다른 교통수단을 고려하는 게 합리적인데, 지갑은 비합리적인 방향으로 열린다.
우리의 소비 행태는 지독히 이중적이다. 대중교통 요금 150원 인상에는 "서민 죽이기"라고 분노하면서 5천만 원짜리 신차 구매와 그에 따른 월 수십만 원의 유지비 지출에는 한없이 관대하다.
그런데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사실이 있다. 그 자동차가 서 있는 바닥이 사유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도로는 시민 모두가 공유하는 '공공재'다. 그런 공공 도로의 90% 이상이 개인들의 값비싼 철제 박스에 독점되고 있다. 이것은 명백한 '공유지의 비극'이다.
그렇다면 공유지를 관리 감독해야 할 국가는 무엇을 하고 있나? 못하는 게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 대한민국 경제 구조 자체가 자동차 산업을 '상전'으로 모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반도체 강국'이라 생각하지만 경제와 일자리를 주도하는 실세는 자동차다.
"반도체는 숫자를 벌지만, 자동차는 사람을 먹여 살린다."라는 여의도의 불문율이 있다. 생산 유발액 321조 원(1위), 대한민국 전체 고용의 7% 190만 명으로 4인 가족 기준 760만 명의 생계가 달린 산업에 '규제'를 들이댈 정치인은 없다. 때문에 국가는 규제 대신 '방임'을 택한다. 스스로 인질이 돼 막대한 세금을 들여 자동차 인프라(도로, 주차장 등)를 계속 확충하고 있다. 하지만 자동차 환경을 조성할수록 사람들은 자동차를 구매해 '루이스-모그리지의 역설'이 구현되고 있다.
�루이스-모그리지의 역설(Lewis-Mogridge position)
도로를 더 많이 건설하면 오히려 교통량이 늘어나 결국 교통 체증이 해결되지 않거나 심화다는 이론. '수요 유도' 효과라고도 불림. 새로운 도로가 단기적인 속도 향상을 가져오지만, 결국 더 많은 운전자를 유인해 장기적으로는 교통량 증가로 이어짐.
이렇듯 경제 논리 아래 국가는 국민을 상대로 다음의 세 가지 직무 유기를 범하고 있다.
면허 발급 시스템이 붕괴했다. 자동차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독일은 면허 취득에 최소 3~6개월의 교육과 수백만 원이 든다. 반면 한국은 '규제 완화'라는 핑계로 시험을 간소화했다. '3일이면 따는 면허'가 양산한 것은 운전자가 아니라 도로 위의 예비 범법자들이다.
현대해상 교통기후환경연구소의 분석에 따르면, 면허 취득 3개월 미만 운전자의 사고율은 3년 이상 경력자보다 39.6%나 높다. 국가는 이 위험한 시한폭탄들을 도로로 내밀고 있다.
여기에 '하차감'이라는 천박한 문화가 기름을 붓는다. 차에서 내릴 때 타인의 시선을 즐긴다는 이 전 세계 유일무이한 신조어는 자동차가 이동 수단이 아니라 '신분 과시용 계급장'이 되었음을 자인한다. 집은 없어도 차는 벤츠를 타야 '대접'받는다는 사회적 인식이 차량 수요를 비이성적으로 폭발시키고 있다.
자동차 구매 시 '공간'에 대한 책임을 전혀 묻지 않는다.
일본은 1962년부터 '차고지 증명제'를 시행 중이다. 거주지 반경 2km 이내 물리적 주차 공간이 확보되지 않으면 차를 살 수 없다.
그러나 한국은 주차 공간 없이도 차량 등록이 가능하다. 그 결과 갈 곳 없는 차들은 골목길을 불법 점거해 보행로뿐만 아니라 소방차의 진입까지 막고서 공유지를 개인 주차장처럼 사유화한다.
이 기형적인 구조를 완성하는 마지막 퍼즐은 금융과 세제다.
돈 한 푼 없어도 '전액 할부'로 차를 던져주는 대출 시장이 활개 치며 상환 능력보다 당장의 수익을 위해 초년생들에게 수천만 원 족쇄를 채우는 도덕적 해이가 만연한다. 도로 위를 달리는 수많은 외제차 중 상당수는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카푸어'들이다.
세금 체계마저 부자 감세에 가깝다. 한국의 자동차세는 '가격'이나 '탄소 배출량'이 아닌, 구시대적인 '배기량(cc)'을 기준으로 한다. 1억 원짜리 2.0L 외제차와 2천만 원짜리 2.0L 국산차의 세금이 동일하다.
여기에 정치권은 표를 의식해 유류세를 깎고 함부로 늘리지 못하며 국민들에게 끊임없이 잘못된 신호를 보낸다. "차를 끌고 나오는 게 이득입니다. 유지비는 우리가 깎아드릴게요."
탄소 중립을 외치며 전기차 지원금을 늘리는 한편 여전히 화석 연료 소비를 장려하는 모순이다.
이 모든 직무 유기가 합쳐져 아래와 같은 '대한민국 도로 지옥의 구조'가 완성된다.
세계적인 교통 선진국들의 공통점은 명확하다. "도시에 차가 많은 것은 자랑이 아니라 질병"이라고 규정한다. 그들은 시민을 위해 기꺼이 운전자를 '불편하게' 만든다.
6-1.독일 : 도로 다이어트
2023년 처음 독일을 방문해 시내 거리를 걷다 신선한 충격을 받았었다. 인도와 차도의 폭이 거의 대등한 길이 많기 때문이다. 독일은 4차선 도로를 2차선으로 줄이고 남는 공간을 보행로, 자전거 도로, 녹지로 돌려주는 '도로 다이어트'를 공격적으로 시행 중이다. "차의 속도를 늦춰야 사람이 산다."라는 철학 아래, 차량 통행을 의도적으로 불편하게 만들어 도심 진입을 억제한다.
6-2. 일본 : 차고지 증명제
앞서 설명했듯이 일본은 1962년부터 "주차장 없는 차는 번호판을 달 수 없다"라는 원칙을 고수해 왔다. 도쿄의 골목길이 우리와 달리 깨끗한 이유는 시민 의식이 높아서가 아니라 불법 주차 시 즉시 견인과 살인적인 과태료를 부과하는 시스템 덕분이다. 그들은 공공 도로를 개인 주차장으로 쓰는 행위를 '도둑질'로 간주한다.
6-3. 싱가포르 : 차량 총량제 (COE)
싱가포르에서는 차랑 가격보다 비싼 '차량 취득 권리증(COE)'을 경매로 사야 한다. 국가가 도심 내 차량의 총 대수를 엄격하게 제한(쿼터제)하고 차량 구매 비용을 극도로 높여 대중교통을 강제한다. 대신 그 수익금은 대중교통 인프라에 전액 재투자된다.
6-4. 프랑스 파리 : 15분 도시와 주차장 삭제
안 이달고 現 파리 시장은 "도심 노상 주차장의 50%를 없애겠다."라고 선언 후 실행에 옮겼다. 센강 변의 차도를 없애 공원으로 만들고 시속 30km 제한 구역을 확대했다. 여기에 주차장까지 없애 시내에 차를 끌고 나올 엄두를 못 내게 하는 '물리적 퇴출' 전략이다.
[핵심 고찰] 불편함이 도시에 주는 선물
이 나라들은 왜 유권자(운전자)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이런 정책을 펼칠까?
개인의 승용차를 불편하게 만들었을 때 도시 전체가 얻는 이득이 압도적으로 크기 때문이다.
공간 형평성: 운전자 독점 도로를 보행자, 자전거, 아이들에게 돌려줌으로 '공간 민주주의'가 실현된다.
지역 경제 활성화: 차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은 돈을 쓰지 않는다. 걷는 사람이 늘어나야 골목 상권이 산다.
사회적 비용 감소: 교통사고, 소음, 매연, 주차 갈등으로 낭비되던 사회적 비용이 줄어든다.
결국 "차를 위해 도시를 끌 것인가, 사람을 위해 도시를 켤 것인가."이다.
선진국들은 이미 답을 정했다. 우리만 아직도 망설이고 있을 뿐이다.
자동차 산업의 내수 소비 진작이라는 경제 논리 아래 도시는 질식해 가고 있다. 이제는 미개함을 벗어나기 위한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다.
차고지 증명제: 현재 제주에서 시행 중인 "주차 공간 없이 구매 불가" 원칙을 서울부터 도입해 거주지 반경 1km 이내 주차 공간 확보를 의무화해야 한다. 이것만이 골목의 사유화를 막는 유일한 해법이다.
도로 다이어트: 4차선 도로를 2차선으로 줄이고 인도, 자전거 도로, 대중교통 도로로 전환해야 한다. 운전이 불편해야 비로소 사람이 걸을 수 있다.
금융 규제 강화: 차량 전액 할부 금지뿐 아니라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을 적용해 차량 가격의 최소 20~30% 선수금 납부를 의무화해야 한다.
세제 개편: 배기량 기준 과세를 폐지하고 정책적 모순이 발생하는 유류세 인하를 중단해 차량 유지 비용을 현실화해야 한다. 겉으로 ‘탄소 중립’을 외치고 뒤로는 화석 연료를 세금으로 보전하는 기만적 행태를 멈추고 합당한 사회적 비용을 치르게 해야 한다.
불편함을 감수하지 않는 공동체에 미래는 없다.
3일 만에 따는 면허, 3분 만에 나오는 대출 그리고 불법 점거하는 3평의 도로. 이 기형적 ‘3박자’가 대한민국을 거대한 주차장으로 만들었다. 빚내서 산 쇳덩어리를 '나 자신'과 동일시하는 미개한 착각에서 깨어나지 않는 한 우리에게 '선진국'이라는 타이틀은 어불성설이다.
Editor. 신수연 (문화NOT공장 CHIEF DIRECTOR)
부서질 것 같던 스물에는 서른이 되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마흔을 바라보는 지금도 여전히 위태롭습니다.
그래서 혼자가 아닌 '함께'를 택했습니다.
효율적인 공장을 거부하고 비효율적인 문화를 만듭니다.
정의를 말하면 이상한 사람이 되는 시대에도 꿋꿋하게 '공공선'과 '책임 있는 자유'를 이야기합니다.
거대한 사회를 바꿀 수 없다면, 우리가 살고 싶은 사회를 작게라도 만듭니다. 상상하고, 실험하고, 실패하는 것이 허락된 공동체를 짓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