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동행카드 : 조삼모사(朝三暮四)의 행정학

독일은 반값, 서울은 인상

[신수연의 Insight Short] '소방서는 돈을 벌지 않는다'

Intro.

지난번 대중교통 리포트 발행 후 한 독자분께서 문의하셨고, 그에 대한 답으로 한 번 더 글을 쓰게 됐습니다.


요금을 인상했지만, 대신 '기후동행카드(무제한 패스)'를 만들어주지 않았나요? 그럼, 인상분이 상쇄되는 것 아닌가요?


이 분뿐만 아니라 많은 분이 이렇게 생각할 듯합니다. 오세훈 시정이 노린 프레임도 이것이라 유추합니다.

하지만 데이터를 뜯어보면 이것은 전형적인 '조삼모사(朝三暮四)'임을 알 수 있습니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지만, 통계는 거짓말을 할 수 있습니다. 기후동행카드의 '평균의 함정'을 분석합니다.



1. 63,295원의 착시 : 당신은 평균에 속았다

오세훈 시정은 기후동행카드의 가격(6만 2천 원)을 책정하며 "시민들에게 혜택을 주기 위함"이라고 홍보했습니다. 그 근거는 '평균 대중 교통비'입니다.

박원순 시장 재임 당시 서울시가 분석한 데이터(2016년 기준)에 따르면 서울 시민의 월평균 대중 교통비는 63,295원입니다. "평균이 6만 3천 원인데 6만 2천 원에 무제한이면 이득 아니냐?"라는 논리입니다.

하지만 여기에 치명적인 통계적 오류가 있습니다. 평균은 중값이 아닙니다.


서울시 도시교통본부, <2016년 대중교통 이용 현황 분석 결과> (교통카드 빅데이터 기반)


박원순 시장 재임 시절(2016년 기준) 서울 시민 월평균 대중 교통비


데이터를 보면 8만 원 이상을 쓰는 '장거리 광역 통근자(17.5%)'로 추정되는 이들이 평균을 끌어올렸습니다. 실제 시민들을 일렬로 세웠을 때, 가장 많은 사람이 몰려 있는 구간(26.9%)은 '4만 원~6만 원'이며, 중윗값은 5만 원 초반대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즉, 시민의 약 60%는 애초에 월 6만 원도 쓰지 않았습니다. 이들에게 '6만 2천 원 무제한'은 혜택이 아니라 요금 인상 고지서일 뿐입니다.



2. 청년 할인? '15%'만을 위한 생색, 청년 혜택의 허구

그래도 청년은 55,000원이니 혜택 아니냐는 질문도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이 또한 모수(대상 규모)의 함정이 숨어있습니다.


우선 서울 시민 10명 중 7명은 대상조차 아닙니다.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통계(2024~2025)를 보면 서울시 전체 인구(약 938만 명) 중 청년 할인 대상(만 19~39세) 인구는 약 284만 명(30.3%)에 불과합니다. 나머지 70% 시민은 할인 논의에서 배제됐습니다.


그나마 대상에 포함된 30%의 청년조차 사정은 다르지 않습니다. 지출 분포 데이터를 대입해 보면 청년의 약 52%는 월 대중 교통비가 55,000원이 안 됩니다. 이들에게 이것은 '할인'이라고 볼 수 없을 겁니다.


결론적으로 오세훈 시정이 생색내는 '청년 할인'의 수혜자는 서울 시민 전체의 약 15%에 불과합니다. 나머지 85%의 시민은 요금 인상의 부담을 떠안았습니다.



3. '병 주고 약 파는' 비용은 누가 내는가

더 근본적인 문제는 요금을 무리하게 올리지 않았다면 기후동행카드라는 제도 자체가 필요 없었다는 겁니다.


서울시는 멀쩡한 요금 체계를 흔들어놓고, 이를 수습하겠다며 막대한 행정력을 낭비했습니다.

실물 카드 제작: 카드 디자인 비용, 수백만 장을 찍어내는 비용 그리고 초기 물량 공급 실패

시스템 구축 및 홍보: 시스템 구축 비용과 지하철 역사, 버스 정류장과 대중교통마다 도배된 광고 비용


이 모든 비용은 결국 시민의 세금입니다. 가장 뼈아픈 건 '정보의 비대칭'입니다. 키오스크 사용이 어려운 노인이나 바빠서 홍보를 접하지 못하거나 초기 물량 공급 실패로 카드를 확보하지 못한 시민은 인상된 요금을 고스란히 떠안았습니다. 결국 오세훈 시정이 펼친 '기후 동행 쇼'의 비용은 정보에 어둡고 가난한 시민들의 주머니를 털어 충당한 겁니다.



4. 결론 : 독일과 서울의 결정적 차이

마지막으로 오세훈 시정이 벤치마킹했다는 독일의 '49유로 티켓'과 비교해 봅니다.

애초 정책 방향성 자체가 다릅니다.


독일 49유로 티켓 vs 서울 기후동행카드 비교


독일은 비싼 요금을 낮추기 위해 전국 통합 티켓을 만들었고, 서울은 인상된 요금을 감추기 위해 세금을 들여 누더기 카드를 만들었습니다.


원숭이에게 아침에 도토리 3개를 주니 화를 내자, 저녁에 3개를 주고 아침에 4개를 주겠다니 좋아했다는 고사성어 조삼모사(朝三暮四).

지금 오세훈 시정이 우리에게 하는 행정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우리는 숫자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당신이 '평균'이 아니라면, 기후동행카드는 당신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Editor. 신수연 (문화NOT공장 CHIEF DIRECTOR)

부서질 것 같던 스물에는 서른이 되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마흔을 바라보는 지금도 여전히 위태롭습니다.

그래서 혼자가 아닌 '함께'를 택했습니다.


효율적인 공장을 거부하고 비효율적인 문화를 만듭니다.

정의를 말하면 이상한 사람이 되는 시대에도 꿋꿋하게 '공공선'과 '책임 있는 자유'를 이야기합니다.

거대한 사회를 바꿀 수 없다면, 우리가 살고 싶은 사회를 작게라도 만듭니다. 상상하고, 실험하고, 실패하는 것이 허락된 공동체를 짓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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