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무엇으로 숨 쉬는가 : 무용(無用)의 쓸모

베를린 템펠호프와 뮌스터가 증명한 여백의 힘

[신수연의 Insight Report : 도시] Vol.3



Intro. 공백을 허락하지 않는 대한민국의 도시

독일에서 횡단보도 앞에 서본 적 있는가? 차량 신호가 파란 불임에도 사람이 발을 내디디면 차들은 멈춰 선다. 뒤차는 경적 대신 함께 기다린다.
속도보다 사람을 위해 잠시 멈출 수 있다는 것. 이것은 법의 영역이 아닐 것이다. 효율보다 사람이 먼저라는 사회적 합의와 누군가를 위해 잠시 멈출 줄 아는 여유가 있다는 것이다.
이 기다림의 미학은 도로 위뿐 아니라 도시 자체에서도 느낄 수 있다.
선진 도시는 당장 무엇을 채울지 모르겠다면 미래 세대를 위해 비워두는 기다림을 선택한다. 사람을 위해 차를 멈추듯, 미래를 위해 개발을 멈춘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선 이 논리가 통하지 않는다. 신호가 바뀌기 전부터 엑셀에 발을 올리는 운전자처럼 도시 또한 강박처럼 여백을 허용하지 않는다. 노는 땅을 위해 계산기를 두드리고 건물을 올려야 직성이 풀린다.
효율성에 질식해 가는 서울은 여전히 도시 경쟁력을 높인다는 한다는 논리 아래 도시 감수성은 여전히 70년대 독재 시절 국가 주도 성장에 머물러 있다.



1. 독일의 도시 철학 : 축소를 기회로 바꾸다

독일의 도시 계획가들은 흥미로운 이야기를 한다.


앞으로 도시 계획은 무엇을 지을지가 아닌 무엇을 짓지 않을지 고민하는 일이다.


1-1. 짓지 않음으로 확장되는 상상력

독일은 우리나라와 달리 인구 소멸을 크게 재앙으로 여기지 않는다. (2024년 1.35명으로 유엔 초저출산 기준을 넘었지만, 우리보다 높다.) 억지로 아파트를 지어 도시를 부양하기보다 빈집을 부수고 콘크리트를 걷어내는 '도시 축소' 정책을 펴고 있다. 이에 대한 논리는 명확하다.


인구가 줄어드는 건 역설적으로 한 사람이 누릴 공간이 넓어진다는 것이다.


즉, 인구 감소(문제라고도 하지 않는다.)를 삶의 질을 높이는 기회로 받아들이고 있다.


1-2. 인간이 물러난 자리를 자연에

독일은 그렇다고 빈 공간에 조경 등 인위적 공원을 조성하지도 않는다. 대신 인간의 간섭을 최소화하고 자연이 스스로 회복하도록 내버려 두는 '재자연화'를 기다린다.

인간의 욕망이 걷힌 자리에 시간이 걸릴지라도 자연이 스며들면 도시는 거대한 생태 공원으로 진화할 것이고 그렇게 빈 땅은 방치된 곳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여백'이 된다.



2. 선진 사례 : 베를린과 뮌스터가 보여준 증거

독일의 도시 철학은 단순 탁상곤론이 아니라 독일 도시 곳곳에서 실제로 작동하고 있다.

필자가 방문했던 두 곳을 대표 예시로 제시한다.


2-1. 베를린 템펠호프 공항 : 독재 유산이 시민 사회로

템펠호프 공원(Tempelhofer Feld)

공항이라 하면 보통 도심 외곽이 떠오르지만, 템펠호프 공항은 히틀러의 세계 수도 게르마니아라는 도시 계획 아래 도심 공항으로 만들어졌다. 3개의 지하철 노선(U-Bahn)이 지나다니고 중심부에서 지하철로 15분 정도면 접근할 수 있다.

공항은 '세계 수도 게르마니아의 관문'이라는 명칭답게 당시 세계에서 가장 넓은 단일 건축물로 활주로를 포함한 전체 면적(3.8㎢)은 여의도(2.9㎢) 보다 넓다. 하지만 면적에 비해 활주로를 많이 확보하고자 타원형으로 부지를 쓰다 보니 활주로가 짧아 현대의 대형 비행기 수용이 제한적이었다. 수도의 대표 공항으로 기능하기엔 제한이 많았고 결국 2008년에 문을 닫게 된다.


행정과 자본은 환호했다. (생각해 보라. 서울로 치자면, 관악구 쪽에 여의도보다 더 큰 땅이 매물로 나왔다.) 주거지, 쇼핑몰 등 다양한 계획이 쏟아졌다. 베를린시는 계획을 수립하는 동안 시민들에게 잠시 개방하기로 2010년 5월에 결정한다. 사람들은 빈 활주로에서 러닝뿐만 아니라 텐트를 치고 고기를 구워 먹는 등 각종 행사를 진행했다. 심지어 텃밭을 가꾸는 이도 있었다.


2011년, 계획 수립이 끝나 중앙부를 제외하고 주택 단지와 상업 지구를 지으려 했으나 공원을 사용하던 시민들이 '100% Tempelhofer Feld'라는 시민 단체를 결성해 개발 계획 백지화를 요구하며 운동을 펼쳤다. 베를린시는 몇 년간의 논의 끝에 의견을 수용해 2014년 5월 주민 투표(가장자리 개발 vs 100% 현재 상태 보존)를 진행했다. 투표 결과 시민 64.3%의 반대로 템펠호프 법이 제정돼 활주로와 녹지를 포함한 공원 부지에 어떠한 영구적 건축물지을 수 없는 것으로 결정됐다.

독재자가 추진한 공간이 시민의 자산이 된 순간이다. 행정은 시민의 선택에 따라 개발이란 효율이 아닌 비효율적인 여백을 선택했다. 이것이 독일 국민과 행정의 품격이겠다.


이후 공항 건물도 1/3 수준만 박물관, 창업 지원 센터, 예술인 레지던시, 경찰 사무실 등 공공 목적으로 활용하고 나머지 터미널과 격납고는 비워두고 있다. 베를린시는 추후에도 상업 시설로 채우지 않을 것이라 공표했다. 현재도 마땅한 계획을 세우지 않고 미래 세대를 위한 가능성의 공간으로 남겨두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빈 공간은 동체의 위기를 구히기도 한다. 2015년 난민 긴급 수용소로 2020년 우한 바이러스 사태 때는 초대형 백신 접종 센터로 활용됐다. 현재는 우크라이나 난민을 수용하며 도시를 넘어 세계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템펠호프 공항 난민 수용


2-2. 뮌스터 프로메나데 : 성벽을 허물고 숲을 두르다

필자가 허수경 시인의 흔적을 찾아 2주간 머물렀던 뮌스터는 비움의 미학을 시각적으로 가장 잘 보여주는 도시 중 하나다.


뮌스터 지도 (구글맵)

도시의 지도를 보면 구도심을 녹지가 원형으로 감싸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총길이 4.3km에 달하는 숲길 프로메나데다. 18세기까지만 해도 도시의 방어벽이었던 이곳은 '7년 전쟁'이 끝나고 다른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성벽을 없애기로 한다. 그 과정에서 뮌스터는 대다수 도시가 성벽 자리에 순환 도로(파리의 불바드, 비엔나 링슈트라세가 대표적)를 만든 것과 달리 나무를 심고 가로수길을 만들었다.

이 이례적 선택이 도시의 운명을 갈랐다. 오늘날 뮌스터는 독일의 자전거 수도라 불린다. 프로메나데는 자동차가 들어올 수 없는 자전거 고속도로이자 보행자의 길이다.


� 7년 전쟁 (1756~1763)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를 주축으로 유럽 전역이 휩쓸린 대규모 국제전. 사실상 '제0차 세계대전'이라 불린다. 이 전쟁을 겪으며 유럽은 구시대 성벽이 대포 앞에서 무용지물임을 깨닫는다.


허수경, 뮌스터의 푸른 반지 中

도시를 방어하는 벽은 도시에 사는 사람들과 도시 바깥에 사는 사람들을 구분한다. 너와 나 투명하게 구별하는 것이 방어벽이다. 방어벽 곳곳에 서 있는 문을 통과하여 도시로 들어오려는 이들은 세금을 내야 하며, 심지어 적들이 도시를 점거하려 할 때 거대한 싸움을 벌이기도 해야 한다. 그러니 도시 의회와 시장이 더 이상 이곳에는 벽이 필요 없다고 결정했을 때 이제 도시는 누구에게 속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속하는 장소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 자전거와 산책하는 사람들이 옛 방어벽이었던 그곳을 가득 채운다. 기차역을 지나서 걸어오다가 대로로 걷지 않고 사잇길로 걷자 싶을 때 너른 풀밭을 지날 수 있다. 그리고 문을 지나면 갑자기 일렁이는 푸른 물결 속에 들어서게 된다. 또한 도심에서는 어느 곳이든 이 길로 들어설 수가 있다.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는 상점들과 인파에 지칠 때면 가로수길로 들어간다. 언젠가 너와 나를 구별하던 벽이 이제 내가 너에게로 가는, 또한 네가 나에게로 오는 소통의 길이 된 것이다.


서울의 한양도성 성곽길이 끊어져 차도로 변해버린 것과 비교하면 뮌스터는 물리적 성벽을 생태적 성벽으로 쌓아 도시가 어떻게 숨 쉬어야 하는지 200년 넘게 증명하고 있다.

뮌스터 프로메나데



3. 서울의 비극 : 우리에게 잠시였던 템펠호프

이제 시선을 서울로 돌려보자. 베를린이 템펠호프를 통해 '여백'의 가치를 증명했다면, 서울에도 비슷한 가능성을 품었던 공간이 있었다. 공덕역 앞 '경의선 공유지'다. 하지만 두 공간은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경의선 공유지 지도


3-1. 경의선 공유지 : 제도화되지 못한 상상력의 한계

경의선 공유지의 시작은 템펠호프와 유사하다. 국가철도공단이 소유한 공덕역 부근, 경의선 숲길이 끊어지는 구간의 땅은 이랜드의 민간 개발이 지연됨에 따라 방치되어 있었다.


2016년, 시민, 예술인 그리고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쫓겨난 상인들이 이 방치된 곳으로 진입했다. 그들은 직접 컨테이너를 옮기고 텐트를 치며 자발적 점유를 시작했다. 시민들이 장터를 열고 포럼을, 텃밭을 가꾸며 삭막한 서울 안에서 활력을 찾았다. 당시 박원순 시정이 내세운 '공유 도시'의 철학을 시민들이 몸소 실천한 서울판 템펠호프의 탄생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건 비극으로 끝난다. 2019년 개발 계획이 확정되자 철도공단과 기업은 시민들을 '불법 점거자'로 규정해 퇴거 통보한다. 시민들은 "국유지는 공공재고 공공재는 시민의 것"이란 논리를 호소했지만, 베를린과 달리 서울의 행정(서울시, 마포구청)은 "사유 재산권 문제라 개입할 수 없다."라는 답을 냈다. '공유 도시'를 내세웠던 박원순 시정의 배신이었다.


결국 2020년, 굴착기에 공간이 밀려버렸다. 베를린이 시민의 힘으로 '여백'을 법제화할 때, 서울은 공권력으로 시민을 축출했다. 현재 그 자리는 시민들의 광장 대신 상업 시설이 올라가고 있다. (이 치열했던 투쟁의 기록은 책 <커먼즈의 도전>에 상세히 남겨져 있다.)


템펠호프와 경의선 공유지 비교표


3-2. 여백을 견디지 못하는 도시 : 효율성의 함정

우리는 왜 템펠호프처럼 비워두지 못할까? 근본적 원인은 대한민국이 도시를 바라보는 관점에 있다.

인구 대비 땅이 좁다는 인식이 강한 한국에서 '빈 땅'은 '낭비'가 된다. 자본주의 논리에 기반해 땅은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자산'이다. 그래서 강박적으로 빈칸을 채운다. 아파트를 쇼핑몰을. 억지스러운 랜드마크를. 심지어 4개의 노선이 겹치는 공덕역이다.


도시 계획의 기준은 오직 용적률뿐이다. 주어진 땅에 얼마나 높게 얼마나 빽빽하게 건물을 채워 넣을 수 있는지가 유일한 성공 척도다. 뮌스터가 18세기에 성벽을 허물고 숲을 두를 때 21세기 서울은 용적률을 꽉 채워 수익을 고민한다. 이 '효율성의 함정'에 빠진 도시에서 미래를 위한 여백이 설 자리는 없는 것이다.


도시 개발의 두 가지 갈림길 : 채움의 악순환 vs 비움의 선순환


3-3. 빗장이 풀렸다 : 더 빨라진 폭주 (박원순 vs 오세훈)

박원순 시정이 '보존'과 '재생'을 위해 그나마 걸어잠근 빗장을 오세훈 시정이 모조리 풀고 있다.

가장 먼저 무너진 건 스카이라인이다. 지난 10년간 서울에는 남산과 북한산의 조망을 가리지 않고 시민 누구나 풍경을 누리게 한다는 '35층 룰'이 있었다. 하지만 오세훈 시장은 취임 후 이 규제를 전면 폐지했다. 그 결과 여의도와 잠실에 60~70층짜리 초고층 재건축이 허가됐다. 서울의 하늘과 풍경은 그 비싼 아파트에 사는 소수만의 전유물로 전락할 위기에 직면했다.


더 뼈아픈 건 '최후의 보루'라 불리는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다. 박원순 시장은 당시 같은 정당 문재인 정부의 압박에도 "그린벨트는 밥그릇이 아니라 수저와 같다. 수저를 깎아 밥을 먹을 순 없다."라며 미래 세대를 위해 해제를 막아섰다. 하지만 2024년, 오세훈 시정은 주택 공급을 명분으로 12년 만에 서울 그린벨트 해제를 공식화됐다.


독일이 도심 한복판 공항을 숲으로 남길 때 서울은 숲을 밀어 아파트를 짓겠다고 한다. 한 번 풀린 그린벨트는 다시 되돌릴 수 없다. 이것은 미래 세대의 산소통을 떼어다 현세대의 투기판에 던진 것이다.


3-4. 세운상가의 비명 : 재생에서 파괴로

이러한 '채움의 폭주'가 극적으로 벌어지는 현장이 대한민국 최초의 주상복합, 세운상가다. 이곳은 도심 제조업의 심장이자, 수십 년간 전기·전자 장인들이 지켜온 거대한 산업 생태계다.


전임 박원순 시정은 이곳의 가치를 인정해 '다시 세운'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낡은 건물을 부수지 않고 보수해 보존하고 끊어진 보행로를 연결해 사람을 모으는 '재생'에 방점을 찍었다. 이 재생 프로젝트는 을지로 특유의 거친 매력과 결합해 '힙지로' 열풍을 가속화했고 덕분에 젊은이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오세훈 시정은 세운상가를 철거하고 그 자리에 길게 숲길을 내겠다는 '녹지 생태 도심' 계획을 발표했다. 표면적으로 좋아 보인다. 하지만 여기엔 치명적 거래가 숨어 있다. 상가를 허물고 녹지를 만드는 비용을 충당하겠다며 주변부를 초고층으로 개발할 수 있도록 용적률 인센티브를 대폭 퍼줬다.


즉, 세운상가 자리에 생길 녹지는 시민을 위한 숲이라기보다 새로 지어질 마천루들을 위한 '앞마당 정원'으로 입주자들의 사유화가 될 것이 뻔하다.(공공공원의 사유화도 추후에 다룰 예정이다.) 베를린은 공항 활주로라는 '공간'을 비웠지만, 서울은 사람(도심 제조업 종사자)과 역사(최초의 주상복합)를 비우려 한다.



4. 결론 : 도시의 품격은 '지움'에서 나온다

송현동, 용산, 세운상가. 서울에 남은 마지막 '기회의 땅'들이 조급함에 희생되고 있다.

특히 1882년 청나라군부터 일본군, 미군에 이르기까지. 100년 넘게 이방인의 땅이었던 용산기지를 겨우 되찾고선 아파트로 채우자는 주장은 우리의 상상력이 얼마나 빈곤한지 알 수 있다.

도시의 빈 땅은 현세대가 맘대로 다 써도 되는 전유물이 아니다. 예측 불가능한 위기를 맞이할 '미래 세대를 위한 비상금'도 필요한 것이다. 지금 우리가 랜드마크니 아파트니 다 때려 박으면, 50년 뒤 우리 아이들은 도시에 위기가 닥쳤을 때 손 쓸 땅 한 평 없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19세기 맨해튼에 센트럴 파크를 설계할 때, "이 땅을 공원으로 두는 건 미친 짓"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그때 설계자 프레더릭 로 옴스테드는 이렇게 답한다.

지금 이곳을 비워두지 않으면, 100년 뒤 이만한 크기의 정신병원을 지어야 할 것.


지금 서울은 아니, 아파트만 하염없이 짓는 내 고향 부산을 포함한 대한민국 전역은 국토를 정신병원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 이제라도 '채움의 폭주'를 멈추고 '비움의 지혜'를 배워야 한다. 돈 벌었다고 온몸을 명품으로 휘감는 졸부 도시로 남을 것인가 여백의 가치를 아는 품격 도시로 나아갈 것인가. 경의선 공유지와 템펠호프, 그 갈림길에서 우리가 선택할 답은 명확하다.



[Epilogue : 신수연의 한마디]

빈 땅은 단순히 비어 있는 것이 아닌 무엇이든 채울 가능성이다.

우리는 지금 그 가능성을 콘크리트로 덮고선 '발전'이라 착각한다.

훗날, 우리 아이들이 도시에서 숨 쉴 곳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아파트 평당 가격표를 보여줄 건가?

지금 우리가 굴착기로 민 건 고작 몇 평 땅이 아니라 다음 세대가 그려나갈 도시의 상상력 그 자체다.



Editor. 신수연 (문화NOT공장 CHIEF DIRECTOR)

부서질 것 같던 스물에는 서른이 되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마흔을 바라보는 지금도 여전히 위태롭습니다.

그래서 혼자가 아닌 '함께'를 택했습니다.


효율적인 공장을 거부하고 비효율적인 문화를 만듭니다.

정의를 말하면 이상한 사람이 되는 시대에도 꿋꿋하게 '공공선'과 '책임 있는 자유'를 이야기합니다.

거대한 사회를 바꿀 수 없다면, 우리가 살고 싶은 사회를 작게라도 만듭니다. 상상하고, 실험하고, 실패하는 것이 허락된 공동체를 짓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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