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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핫산 Mar 27. 2022

소유욕을 버리라고 강요하는 사회

왜 미니멀리스트가 되라고 하는가?

 매주 금요일 저녁에는 개인 메일함을 정리를 한다. 금요일의 메일 정리는 단순하게 메일을 확인하고 답장을 보내고 메일함을 비우는 그런 과정이 아니라 금요일 저녁의 의식이기도 하다.


최소 30분 간격으로 일정대로 정해진 삶을 살아야 직성이 풀리는 'J'의 삶*에서 이 시간만큼은 'P'가 된다.

아니다.

끝나는 시간이 그때그때 다를 뿐 이것도 매주 규칙처럼 하고 있으니 어쩌면 'J'의 연장일 수도 있겠다.


 메일함을 열어 보면 대부분의 메일이 '(광고)'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하루에도 수십, 수백 개가 쌓이고 때론 자동 필터링으로 스팸함으로 이동하기도 하는 이 광고 메일을 누가 보느냐면,

바로 내가 본다.


웹서핑이나 목적 없는 아이쇼핑 '시간' 낭비하일을 싫어하는 내가 의식의 흐름대로 행동하는 시간이다. 이때에는 메일로 온 광고를 보면서 링크를 클릭해 상품을 구경하기도 하고 뉴스레터를 읽기도 한다.


오늘도 그렇게 메일을 하나씩 다가 인터넷 서점의 메일을 열었다. 연말정산에서 도서 소득공제를 쏠쏠하게 받을 정도로 책을 좋아하다 보니 인터넷 서점의 메일은 같은 광고 중에서도 특히 선호하는 광고다.


메일 속의 추천 도서 배너 미니멀 라이프를 다룬 책이 보여 링크를 클릭했다. 나도 오랫동안 쓴 낡은 행거를 부순 기억이 있어서였다. 물론 책의 제목처럼 넘치는 옷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서 무너진 것은 아니었다. 이사 때문에 위치를 자주 옮기다 보니 단순히 내구도가 다 해서 망가진 거였지.


링크로 이동해서 책의 정보를 보다가 문득 예전 기억이 떠올랐다. 내가 미니멀 라이프를 살겠다며 커다란 박스로 여섯 개는 내다 버렸던 옷들에 대한 기억. 그리고 지금 나는 이전에 정리하고 버린 옷과 책을 그리워하게 되었다.


그 옷 참 좋아했었는데.

그 책 지금은 절판돼서 못 사는 데.

하고 말이다.


 나도 한 때는 미니멀리스트가 되려고 한 적이 있었다. 수많은 미니멀리즘 책들이 한 목소리로 말하던 것처럼 집에 쌓여 있는 짐들이 부담으로 다가왔었다.


집에 세탁기, 냉장고도 없이 손빨래를 하고 절임 식품을 먹는다는 어떤 책의 저자처럼 극단적으로 할 용기는 없었지만 한동안 읽지 않은 책, 입지 않은 옷, 심지어 가구까지 정리한 그때의 실행력은 결코 소소하지도 않았다.


책의 조언을 곧이곧대로 듣고 집에 있는 책과 옷을 몽땅 내다 버리면서 심적 부담감이 줄어들 거라고 믿었다.


한동안은 몽땅 내다 버렸다가

빈자리에서 느껴지는 허전함에 다시 또 사들이고,

어느 정도 쌓이면 다시 또 몽땅 내다 버리는 삶의 반복이었다.


물건을 사는 것이 내 허전함을 채워줬고 쌓인 물건들은 다시 부담감을 늘렸다.


허전함과 부담감을 반복하는 삶.

그때는 그게 맞다고 생각했다.


스무 살에 독립을 해서 쭉 1인 가구로 살아온 나는 원룸에 오랫동안 살았다. 때론 주방 분리형, 때론 주방 일체형이었지만 공용 면적 포함 10평 미만의 공간을 크게 벗어나지 않고 살았다. 직장 문제로 세가 비싼 지역으로 이사를 가게 될 때엔 그나마도 더 작은 평수로 이사를 하기도 했다.


좁은 집에 쌓여 있는 물건들은 부담감으로 다가왔고 집이라는 공간을 아늑하지 않고 갑갑하게 느끼게 만들었다. 그래서 부지런히 버렸다.


어떤 책은 '무조건적인 비움' 아니라 '나를 감동시키지 못하는 물건'을 버리라고 했다. 그렇게 또 감흥이 없는 물건들을 비워내고 옷으로 가득 채웠던 5단 서랍장과 책으로 가득 채웠던 책장들까지 비워내고 나서 나를 찾아온 것은 편안함은 아니었다.


작은 집, 작은 방에 꼭 필요한 물건만 있는 집은 단어 그 이상으로 삭막했고 나는 우울해졌다. 


 집과 물건과 나라는 삼각관계에서 반복되던 감정싸움은 6개월 전 드디어 끝이 났다. 내가 24평 아파트로 이사를 간 것이다.


혼자 사는 1인 가구가 방 세 개의 24평 아파트에 살게 되면, 침실 겸 작업실과 드레스룸을 제외하고도 방 하나가 남는다. 주방도 거실도 베란다도 따로 있는 넓은 집에서 용도를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방이 하나 남는 거다.


나는 이 방을 '힐링 방'으로 정하고 그곳에 내가 좋아하는 물건들을 채워 넣었다. 한 면 가득 붙박이 책장을 두고 책을 가득 채워 넣었고, 취향에 맞는 소품들을 넣었다.


원룸 살 때 집이 좁아서 눈물로 처분할 수밖에 없었던 난방 테이블 '고타츠'도 다시 사서 넣었다.

좋아하지만 둘 곳이 없어서 사지 못했던 디즈니 인형들도 가득 사서 넣었다.

창가에는 햇빛을 예쁘게 반사시키는 것 외에는 쓸모가 없는 풍경들도 잔뜩 달았다.

방문을 열고 들어가면 뭐하는 방인지 의문을 품게 만드는 물건들로 가득한 방.


집을 올 화이트로 리모델링을 하면서 현관부터 주방, 거실, 방까지 넓고 여유로움이 가득한데, 이 방만 파란색 문과 파란색 벽지, 파랗고 빨간 커튼으로 유채색의 물건이 가득 차 있다. 하지만 내가 이 방의 꽉 채워진 물건을 보고 부담감을 느끼는가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나는 깨닫고 말았다. 미니멀리즘은 잘못됐다.

'비워내기'라는 것은 상대적으로 가난했던 나, 가지지 못했던 나에게 무소유를 권유했고, 나는 그걸 행하면서 정신 승리를 하고 있었던 거다. 내가 힘들고 갑갑한 마음이 드는 것은 이 가득 찬 물건들 때문이라고.


소유욕은 인간의 본능이다.

수면욕, 식욕, 성욕 등과 더불어 인간의 본능에 가까운 욕구들은 그렇게 행동하면 기분이 좋고 행복해진다.


'나의 것'을 '소유'하는 것이 나를 불행하게 할 리가 없다.


얼마 전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한 최소한의 면적에 대한 글을 봤다. 공용 공간 5평을 별도로 1인당 최소 필요 면적은 5평. 가족 구성원에 따라 1인 가구는 10평. 2명이라면 15평. 3명이라면 20평 이상은 되어야 쾌적하게 살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중요한 것은 이 면적에 '물건'이 차지하는 공간은 포함되지 않는다.


모두가 최소 면적을 충족하는 공간을 가질 수는 없다. 당연히 공간이 부족하니까 '물건'에게 내어줄 공간이 없게 되고, 이게 결국 '미니멀리즘'으로 이어진다.


나의 宙(집 주)를 충족할 수가 없으니, 물건을 비워내면서 나의 필요 면적을 늘려 심리적 안정감을 느끼려는 것. 그게 미니멀리즘이 시작된 원천이 아닐까.


사람들의 '삶의 공간'에 대한 부족함을 채워줄 수 없는 사회는 '비움'을 권장하면서 '텅 빈 집'을 보며 정신 승리를 하라고 권유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이사를 온 지 6개월.

지금의 나는 우울하지 않다.

심리적 행복을 위해 공간을 비운다는 이유로 물건을 내다 버리지도 않는다.

그냥 필요 없는 물건은 사지 않고, 필요 없어진 물건은 남에게 주고, 내가 죽는 날까지 단 한 번이라도 다시 볼 것 같은 물건은 그냥 집에 둔다.

좋아하는 물건을 사는 데 금액에 연연할지언정 물건을 둘 공간에 연연하지 않는다.


홀가분한 인생을 살고 싶다면 실행하라며 미니멀리스트의 삶을 권장하는 책이 최초로 등장한 2015년(전문 서적으로는 이 이전에도 있었다.)부터 서점가에는 아직까지도 미니멀리즘을 권장하는 책이 보인다.

언제까지 속아줘야 하는 걸까.

부지런하게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하던 시절에도 했던 생각인데, 미니멀 라이프를 살겠다면서 미니멀 라이프에 대한 책을 소유하는 것도 어불성설 아닌가.




*MBTI 검사. I(내향)와 E(외향), S(감각)와 N(직관), T(사고)와 F(감정), J(판단)와 P(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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