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OCA Jul 23. 2023

(만학도의) 미국 석사 1년 후기: 마음편

지난 1년간 정말 이런저런 다양한 감정을 겪었다. 새로운 공부에 대한 설렘과 뭔가를 배우고 발전해 나가는 과정에서 느끼는 성장감과 기쁨도 있었지만, 타지 생활의 외로움은 기본이고, 한국에서 생활할 때에는 전혀 느껴보지 못한 힘듦과 고충들을 많이 겪었다. 그래서 이번엔 그러한 감정들, 특히 내가 겪었던 마음의 어려움들을 되돌아보고자 한다.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

묵묵히 공부를 하는 일에는 꽤나 자신이 있는 편이다. 그래서 미국에 유학오기 전에도 어느 정도는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미국 석사를 나와서 느낀 점은, 육체적으로 끈기 있게 힘듦을 버티는 것보다, 정신적인 불안함을 이겨내는 것이 훨씬 힘들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대충 나와 비슷한 길을 가는 친구들을 보며 내 미래를 그려볼 수 있었고, 내가 어느 수준의 성취를 해내면 어떤 길을 갈 수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었다. 물론 내 노력과 결과가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내가 어느 정도 노력을 하면 어떤 길을 갈지를 대충이나마 예상해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미국에서의 생활은 달랐다. 나는 미국에서 살아본 경험이 전무하다. 내 주변엔 국내에서 석사를 한 친구들, 미국에서 박사를 한 친구들은 있었을지언정, 미국에서 석사를 한 친구는 거의 없었다. 그래서 내가 미국 석사를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미국석사과정 도중 만난 친구들의 경우 나와는 여러 가지 환경(국적, 경력, 지향점) 등이 천차만별이었기 때문에, 내 미래를 가늠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마음을 다잡고 꾸준히 공부한다는 것이 정말로 쉽지 않았다. 미국에서 1년간 공부를 하는 동안, 내 노력에 대한 어느 정도의 보상이 기대되는 상황에서 노력을 하는 것과, 보상을 전혀 가늠할 수 없는 상황에서 노력을 하는 것은 정말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새로운 시작과 포기한 것들에 대한 미련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미국 석사를 나온다는 것은 시작점에 다시 선다는 것이다. 시작과 출발은 보통은 그 자체로 뭔가 설레는 분위기를 자아내는 멋있는 단어들이지만,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지난 1년간 느꼈다. 


나이가 지금까지는 무언가를 시작한다는 것이, 내가 쌓아온 것들에 대한 결과이자 연속선상에 있는 경우가 많다. 고등학교 때 공부를 하는 것은 결국 대학생활을 시작하기 위함이고, 대학교 때 공부를 하는 것도 결국 직장생활을 시작하기 위함이다. 내가 쌓아온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열심히 쌓아온 것들을 발판 삼아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나의 경우, 미국에서의 새로운 시작은 곧 내가 쌓아온 것들과의 단절을 의미했고, 오히려 그것들 - 지난 직장 경력이라든지, 인간관계라든지, 모아놓은 돈이라든지 하는 것들 - 을 버려야만 하는 것이었다. 어디선가 인간은 이익보다는 손실에 민감한 동물이라고 했었다. 비록 쌓아온 것들보다 앞으로 쌓을 것들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내 스스로 포기한 것들이기는 했지만, 그것들이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내 선택이 과연 옳았던 것인지, 그냥 한국에서 살던대로 살았으면 마음도 편하고 더 행복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닌지, 스스로에 대한 의심을 멈출 수 없는 나날들이었다..



타지생활의 외로움

해외생활을 해본 이들이라면 누구나 타지생활의 외로움을 말할 것이다. 단순히 지인이 없다는 이유로 생기는 외로움은 아니었다. 사실 유학을 나와서도 굉장히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러나 나와는 전혀 다른 환경과 문화에서 자라온 사람들 사이에서, 언어적인 소통도 완전하게 원활하지 않은 상태로 지내다 보면, 정말로 혼자인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많다. 거기에 공부도 열심히 해야 하고 취업준비도 별도로 해야 하는데, 여기에 이런저런 어려움까지 겹치게 되면 외로움이 꽤나 극에 달하게 된다. 


학부에서 수업을 들을 때 교수님들께서 꼭 하시던 말씀이 유학을 나오려면 가능한 결혼을 해서 나가는 게 좋다는 것이었는데, 그때는 이런 외로움에 대해 크게 생각해보지 않아서 공감을 못했으나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사람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사실 한국에서는 이처럼 온전한 외로움을 느껴볼 경험이 없었던 것 같다. 항상 가족이 곁에 있었고, 그래도 가끔은 속 깊은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이 있었으니까. 한국에서 겪었던 외로움이란 기껏해야 너무 바빠서 가족, 친구들과 시간을 원하는 만큼 보내지 못한다거나, 이성친구가 없어서 느꼈던 외로움 따위의 것들이었던 것 같다. 



극복할 수 있을까?

이런 어려움들은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누군가가 이러한 힘듦과 고난에 대한 뚜렷한 해결책을 제시해 주면 참 좋으련만, 아쉽게도 그러지는 못할 것이다.


주변에서 비슷한 길을 간 이들의 경험담을 듣는 것이 어느 정도 도움은 되는 것 같다. 감사히도, 링크드인에서 비슷한 진로에 계신 분들에게 메시지를 하면 조언을 해 주시는 경우가 꽤나 있었고, 그분들의 다양한 시각은 꽤나 도움이 되었다. (커피챗이라는 앱을 통해서 유료로 상담을 진행할 할 수도 있기는 했는데, 개인적으로는 링크드인에서 내가 정말 궁금한 일들을 미리 겪어봤을 법한 분들의 경험을 듣는 것이 훨씬 나았다.)


그러나 결국은 스스로 극복해야 하는 것 같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스스로의 마음을 성장시키고 굳세게 만들어야 할 것이다. 내 마음이 이러한 고난을 극복하는 과정 속에서 굳건하게 성장하기를, 그리고 그러한 마음의 성장이 내 삶에 있어 무언가 의미가 있기를 바랄 뿐이다. 



고난과 버텨나간 모든 이들에게 존경을

내 마음이 굳건히 성장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한 가지 말할 수 있는 점은 겸손함과 타인을 이해하는 마음을 조금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예컨대, 예전에는 솔직히 잘 나가는 연예인이 힘들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 아니 저렇게 인기도 돈도 많고, 앞길도 탄탄한데, 하는 식이었다. 그러나 유학 생활을 하며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힘듦과 고난이 참 많다는 점을 깨달았고, 누군가가 어떤 어려움을 겪는다고 말할 때 그 어려움의 깊이와 정도를 내가 감히 판단해서는 안 되겠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게 누구든 자기 자신만의 고난을 극복해 가며 살아온 모든 이들에 대하여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달까. 


올해 대한민국을 휩쓸었던 더글로리에서 박연진을 연기하신, 임지연 배우의 수상소감이 참 공감이 된다. 미국 석사 유학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불안함 속에서 꿋꿋이 자신의 연기를 해나갔을 임지연 배우의 이 소회가, 나를 포함하여 불안과 두려움, 외로움을 안고 도전을 하는 이들에게 조금은 힘이 되었으면 한다. 


더 글로리 박연진은, 저에게 도전이었고,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었습니다. 연기가 아직도 두려운 저는, 언제나 좌절하고, 매번 자책만 하는데, 그런 생각들이 가끔은 '나는 불행한가', '내가 하고 싶은 일과 잘하는 일은 다른 건가'하는 생각을 하게 될 때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오늘은 존경하는 선배님과 동료들 앞에서 제 자신에게 말해주고 싶네요. 연진이로 사느라 너무 고생했고, 너도 충분히 잘 해내고 있다고. 멋지다 연진아.


https://www.youtube.com/watch?v=ezbF853nMJc&t=85s

작가의 이전글 미국 석사 1년 후기: 공부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