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도 괜찮아

산티아고 순례길 에필로그 - 끝

by Nell Kid
한 번은 이 길을 걸어도, 괜찮을 것 같아
Saint-jean-Pier-de-Port → Santiago de Compostela

순례길은 일찍이 끝났다. 그리고 난, 이 후 열흘 정도의 적당한 여행을 마친 후에 대륙을 옮겼다. 마드리드에서 이스탄불, 그리고 다시 이스탄불에서 케이프타운으로 향하는 일정이었다. 비행기는, 아프리카 대륙을 통째로 종단해야 했다. 이스탄불에서의 이륙 시각은 새벽 1시 55분이었다. 본래 계획은, 불이 다 꺼진 비행기 좌석에 등을 붙이고 앉아, 물론 나의 좌석에는 독서등을 하나 켜놓고, 그 동안의 순례길을, 더 나아가 유럽에서의 날들을 생각하며 사색을 하려던 것이었다. 원래 계획은 못 지키라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 이용했던 터키 항공은, 여태까지의 항공사들 중 최고였다. 우선 개인 모니터 안의 영화들이 상당했다. 보고 싶었던 <히든 피겨스>를 비롯한 많은 작품들이 그 안에 있었다. 거기에, 케이프타운으로 가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는 않았던 관계로, 좌석 한 줄을 내가 다 점령해버리는 기분 좋은 행운까지 겹쳤다. 나만 누우면 진상 손님으로 보일까봐 눈치를 보았는데, 남들도 눕길래 나도 그들을 따랐다. 덕분에, 지루하지도, 불편하지도 않은 비행 시간을 보낼 수 있었으며, 비행기에서 가능할 거라 생각지 않았던 숙면까지 취했고, 사색의 시간 같은 건 이미 사라져버린 뒤였다. 내려서는 전혀 새로운 대륙의 모든 것들에 긴장해야 했고, 숙소에 도착해서도 그 불안감은 완전히 가시지 않는 중이다.

20170509_150236.jpg 안녕 마드리드, 안녕 순례길, 안녕 유럽, 안녕 나의 화양 연화.

순례길은, 한 마디로, 고단했던 날들이었다. 공유의 표현을 빌리자면, 길이 나빠서, 길이 험해서, 길이 적당하지 않아서, 걸었던 모든 길이 흙길이었다.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들도 정말 많았다. 포기해야 했던 순간까지도 있었다. 감염 증세가 발에 나타났을 때였다. 이 길 위에서 만난 많은 한국인들은, 정말 이 길을 걷는 것을 주 목적으로 한국에서부터 준비를 하고, 또 비행기를 탔다. 여행을 하다가, 그냥 여기를 한 번 걸어볼까,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임했던 나와는 마음가짐부터 달랐다. 간절함의 차이는, 보고 느끼는 것의 총량에도 유의미한 차이를 만들었다. 냉정히, 그리고 솔직히, 나는 순례길의 풍경들에서 큰 감동을 느끼지 못했다. 지난 90일 가까운 여행 기간 동안 더 이국적이고, 또 더 멋진 광경들을 많이 보았던 것도 하나의 이유일 테고, 또 한 편으로는 이 길이 그저 숙제처럼만 느껴졌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후자의 이유를 떠올리게 된 데에는, 길 위에서의 친구들과 걷기 시작하고, 이 길을 약간이라도 즐길 수 있게 되었을 땐, 그 풍경이 조금씩은 마음 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오래도록 이 길을 꿈꾸고, 준비했던 사람들에게는, 꽤 힘들고도 벅찬 언덕마저도 하나의 즐거움으로 인식되는 듯했다. 그들 중 어떤 이는, 순례길에 얼마나 많은 기대를 품고 왔는지를 내게 말하며, 되려 나를 부끄럽게 만들기도 했다. 아, 나는 누군가가 저토록 간절히 바랐던 길을 정말 안일하게 걷고 있구나, 라는 자괴감이 들었다.


간절한 이들은, 준비에도 더 철저했다. 30일 이상의 순례길 위에서 방문하게 될 지명들을 대부분 알고 있던 이들도 있었다. 물집이 잡혔을 때 어찌해야 되는지, 또 어떻게 휴식을 취해야 하는지, 그들은 미리 예습을 했고, 그래서 시행착오를 덜 겪을 수 있었다. 나의 경우, 바늘과 실, 그리고 알코올을 현지에서 구입했고, 물집은 그냥 뜯으면 낫겠지, 라는 마음에 맨손으로 제거하기도 했다. 지금 보면, 그리 멍청한 순례자도 또 없었다. 하긴, 마지막 일주일을 제외하고 내 복장은 언제나 청바지였다. 그 길이, 그렇게나 많은 언덕과 산을 넘어야 하는 곳인 줄은, 걷기 시작해서야 알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말도 안 되는 짓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다녔다. 첫 날 나의 복장은, 10kg짜리 큰 배낭을 뒤에 메고, 5~6kg짜리 작은 배낭은 앞에 걸친 채, 양 손에는 쇼핑백 하나씩을 들고, 그 와중에 양말은 얇은 발목 양말을 신었었다. 단 이틀만에 발 상태가 맛이 간 건 당연한 일이었다. 많이 나아졌지만, 그때부터 비롯된 상흔은 지금도 조금 양 발에 남아있다. 일주일이 안 되었을 때, 약국을 방문했었고, 그 곳의 약사는 의사에게 꼭 가라는 조언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빨간약만을 그로부터 받고, 뭐 어떻게든 낫겠지, 싶은 마음에 그 상태로 계속 걸었다. 순례길 완주에 실패했다면, 결정적인 패착의 순간으로 남을 날이기도 했다.

20170509_152339.jpg 공항으로 가는 교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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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10_011338.jpg 이제 난, 케이프 타운으로 향했따.

순례길 동안의 나의 문제는, 혹시 내게 무슨 문제가 생긴다면, 그건 필히 정신적인 나약함이나 의지 박약의 것이지 물리적인 여건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리라 착각했던 어리석은 견고한 믿음이었다. 그 때문에, 나는 멀쩡치 않은 발을 이끌면서도, 이건 다 내가 이 순례길에 간절하지 않아서야, 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계속 걸음을 이어나갔다. 마침내 발에 붕대를 감고, 항생제를 바르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이르러서야, 내가 이 길을 너무 무모하게 대했음을 뼈저리게 절감했다. 그래도 다행인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주를 했다는 점이다. 나처럼 평소의 자존감이 낮은 사람에게, 도전의 실패는, 특히나 순례길만큼이나 거창했던 도전의 실패는, 꽤나 큰 정신적 생채기가 될 수도 있다. 결과가 좋으면 다 좋은 것이라고, 이 길을 끝까지 걸었다는 사실이 다른 모든 염려와 고민을, 기분 좋게 뒤덮었다. 조금은 늦었지만, 그래도 너무 늦지는 않게 의사의 진단과 항생제 처방을 받을 수 있었고, 생각보다 빨리 발은 아물었다. 이때 금액적으로 다소 무리해서라도 욕조가 있는 싱글룸에서 머물렀는데, 3일 동안 내내 족욕을 하고 발을 집중적으로 관리했던 게 큰 효과를 보았다. 이 3일 덕분에 남은 2주의 원동력을 얻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친구들이 있었다. 순례길 위에서의 가장 큰 동기부여였던 이들이었다. 3일차에, 그냥 지나가는 말로, 우리 같이 산티아고에서 사진을 찍자, 라고 서로 이야기를 했는데, 이것이 마치 정언 명령처럼 마음 속에 자리했다. 전혀 기대치 않았던 곳에서 만난, 기대치 않은 인연이었다. 나와 같은 국적의 친구는 단 한 명도 없었지만, 의외로 그 사실이 약간의 해방감을 주었고, 함께 다니는 것이 즐거웠다. 하루 중 가장 즐거운 시간은, 그 하루에 걸어야 할 거리를 다 마치고 이들과 함께 맥주를 마시던 시간이었다. 그러면서 서로의 물집을 자랑하고, 또 시덥잖은 이야기들로 하루를 마무리 하며 다시 내일의 걸음을 준비하던 시간이기도 했다. 분명, 쉽게 잊히지 않을 기억이다. 조금 더 수줍게 고백하자면, 결국 생각해보면 이들 덕분에 걸을 수 있었다. 혼자였다면 진작 포기했을텐데, 함께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 큰 위안과 디딤목이 되어 주었다. 이미 지난 글들에서 몇 번의 고마움을 표했지만, 다시 한 번, 마지막으로 정중한 감사를. 순례길을 걷다가 가장 황당하고도 당혹스러운 순간은, 구글맵으로 하루동안 걸어온, 그리고 남은 거리를 확인할 때다. 자동차로는 한 시간 정도의 거리를 하루 내내 이 고생을 하고 있나 싶은 허탈함이 밀려오기 때문이다. 그런 거리를, 가장 재래적인 교통 수단조차 이용하지 않은 채 우린 계속 걸었고, 이내 산티아고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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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27_134421.jpg 마침내 도착했던 산티아고 대성당

사람이 달도 가고, 화성도 가는 이 시대에, 프랑스와 스페인의 한 국경 마을에서 출발하여 산티아고까지 향했던 걸음이 어떤 의미가 있을 지는 모르겠다. 종교인이라면, 순례가 그의 적성과 직무에 맞는 행위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건 '그냥' '굳이' 걷는 일이다. 인공지능이었다면, 프랑스의 생장에서 스페인의 산티아고까지의 순례길을 택했을지 조금은 의문이다. 이건 분명, 비합리적인, 그리고 비효율적인 행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이유로 이 길을 걸었고, 또 지금도 걷고 있으며, 그 순례길의 의미는 사람들마다 다르게 다가올 것이다. 그들 중 나와 비슷한 어떤 사람들은, 이 길을 다 걸어내고도 아주 특별한 의미를 찾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가끔은 하나의 행위가 의미 그 자체일 때도 있다. 그토록 길었던 이들의, 나의, 그리고 우리의 걸음은, 우리의 생에 지울 수 없는 발자국을 남겼을 테다. 그 발자국은 꽤 깊은 발자국일 테라, 시간이 흘러 낙엽이 떨어지든, 눈이 내리든, 그 자리를 지킬 것이다. 그럴 때, 낙엽을 치우다가, 혹은 눈을 쓸어 내리다가, 산티아고로 향했던, 미약했지만 포기하지 않았던 이 발걸음들을 보며, 새로운 감회와 감정을 가져볼 수 있겠지. 순례길이 내게 당장의 의미를 보여주진 않았지만, 아마 이 정도의 선물은 주었으리라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내 결론은, 섣부르긴 하지만, 이 길을 '한 번'은 걸을 만 하다는 것이다. 이게 어떤 의미로 남을 지는 나도 잘 모르지만, 그저 맥 없이 흘러가버린 지난 날이 되어버리진 않을 것이란 기대가 있다.

20170427_125714.jpg 순례길에서, 가장 벅찼던 순간. 저 표지를 봤을 때.

이렇게 순례길이, 또 어떻게 보면 내 삶에서 참으로 중요했던, 혹은 중요하게 될 걸음들이 끝났다. 걷는 것 이외에는 정말 별다른 것을 할 게 없는 이 길에서, 다른 때보다 음악을 더 많이 들었다. 아래는, 순례길에서의 플레이리스트들이다. 신기하게, 이 각각의 노래들을 들으면, 그 날의 기분과 감정이 조금은 떠오르기도 한다. 순례길 이야기의 마지막 플레이리스트는, 넬의 'Day after day'다. '눈앞이 점점 더 흐려져 가, 두 다리가 풀려 넘어지고, 매 순간 숨은 턱밑까지 차올라, 분명 쉽진 않겠지, 누구도 그럴 거라고 얘기한 적 없어, 한걸음 걸음이 무겁겠지 그래도 달려갈 테니'라는 이 부분이, 순례길 내내 내게 힘을 주었던 가사다. 그럼, 정말 안녕, 나의 산티아고, 나의 순례길.


1. 디어 클라우드, '행운을 빌어줘'

2. 김윤아, '독'

3. 보아(BOA), '한별'

4. 정진운, '준비'

5. 김동률, '고별'

6. 플라이투더스카이, '그대는 모르죠'

7. 다비치, '그런 적 있나요'

8. 바닐라 유니티, 'Sorry'

9. 캐스커, '고양이편지'

10. Lesley Barber, 'Manchester By The Sea Chorale'

11. g.o.d, '다시'

12. 이적, '같이 걸을까'

13. 러브홀릭스, '아픔'

14. 이석훈, '오늘은 어제보다 괜찮았지'

15. 성시경, '더 아름다워져'

16. 9와 숫자들, '유예'

17. 이예준, '넌 나의 20대였어'

18. 이적, '걱정말아요 그대'

19. 김이지, '흩어져'

20. 테이, '따뜻했던, 그대만'

21. 김동률, '동행'

22. 아이유, '이런 엔딩'

23. 김정범, '달빛 바다(영화 어느 날 OST)'

24. 넬, 'Dream Catcher'

25. 페퍼톤스, '계절의 끝에서'

26. 넬, '청춘연가'

27. 넬, 'Grey Zone'

28. 넬, Standing in the Rain'

29. 빅뱅, 'WE LIKE 2 PARTY'

30. 정준일, '보고싶었어요'

31. 넬, 'Day after 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