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항해의 기착지, 더블린

영국 홀리헤드 - 아일랜드 더블린 (2016~2017 세계 여행)

by Nell Kid
새 여행에 닻을 올린 날

아일랜드는 섬 국가다. 정말 이름부터 섬스럽지 않은가. 아주 어릴 적 영어 학원을 다닐 때, 섬의 아일랜드(island)와 국가 아일랜드(Ireland)를 유난히도 구분하지 못 했던 기억이 난다. 그 덕분에 아일랜드가 섬나라라는 사실은 꾸준히 기억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슬란드라는 복병이 나타나 어린 날의 부족한 사고체계를 뒤흔들기도 했다. 아마 그때는 이렇게 생각했던 듯하다. 이게 어디 붙어있는 나라든 가지도 않을 건데 왜 남의 나라 이름을 외우고 있어야 되냐고. 드라마 <나인>처럼 향을 피워 과거로 돌아간 후에, 그 때의 나에게 너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아일랜드에 가게 될 거야, 라고 말 해준다면, 그 아이는 조금이라도 더 동기부여가 될까. 어쩌면 불안에 떨 지도 모른다. 그건 복제인간을 다룬 영화 <아일랜드> 때문인데, 미래에서 왔다는 사람으로부터 내가 아일랜드로 간다는 소리를 들으면 이제 죽겠구나 싶은 마음에 모든 의욕을 다 잃어버릴 수도 있다. 아니면, 열심히 자라봤자 고작 저 정도라는 사실에 절망할 수도 있고. 아일랜드는 그런 나라다. 영국 옆의 조그만 나라, 실제로도 국토의 북부 지방은 영국령인 나라, 그리고 영화 <Once>의 본 고장. 영화 보는 걸 좋아하기는 해도 아주 매니아라고는 자부할 수 없으며, 따라서 굳이 영화 촬영지나 배경을 찾아 여행을 떠나지도 않는다. 팟캐스트를 듣는데, 이건 영화 평론가 김혜리 기자님도 그렇단다. 그러면서 자기 선배 중에 실제로 그런 테마로 여행하는 사람이 한 명 있다고 덧붙였는데, 혹시 그 선배의 블로그 제목이 '언제나 영화처럼'은 아닌지 물어보는 메일을 보내보고도 싶었다. 어쨌든. 한국에서는 아일랜드에 대해 많이 알려진 바가 없으니, 아주 단순한 도식으로 아일랜드는 <원스>고, <원스>가 곧 아일랜드다. 더 적나라하게 말해서는, 배경 지식이 거의 전무한 상태로 오게 된 것이다.

어제 흐린 날의 홀리헤드

영국에서 아일랜드로 가는 방법은 몇 가지 있다. 우선 비행기다. 가장 추천하는 방법이다. 돈만 충분했다면, 나도 비행기를 탔다. 하지만 영국의 리버풀에서 홀리헤드로 가서, 거기서 굳이 1박을 한 다음 배를 타는 총 비용보다 비행기가 더 비쌌다. 따라서 나는 배를 탔다. 출항은 오후 두시 즈음이라, 느긋하게 아침 9시 반까지 잠을 잤다. 방문을 여니 주인집 아주머니의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며 계단을 올라오고 있었다. 그래, 모름지기 개라면 이렇게 예민해야지. 이래야 집도 지키고 도둑도 잡지. 두 발로 일어서봤자 내 무릎보다도 작은 귀엽고 또 귀여운 꼬마 강아지라는 게 문제지만. 꽤 높고도 많은 계단을 그리 빨리 달려 올라오는 걸 보며, 네가 어리긴 어리구나 싶었다. 쇼파에 올라오는 것조차 버거워했던 우리집 개의 말년이 문득 생각났다. 우리 개도 얘처럼 아가같고, 예민하고, 날렵하고, 빠르던 시절이 있었는데. 주인집 아주머니의 개는 애교가 참 많았다. 거기에, 아마도 자기가 사람인 줄 아는 모양이었다. 네 발로 있는 시간보다 두 발로 깡총거리는 걸 더 자주 목격했다. 내 다리에 얼굴을 문댔다. 무릎을 굽혀 강아지에게 인사했다. 우리 개한테 그랬듯 '잘 자쪄?'라고 했다가, 아 얘는 영국 개지 싶은 생각에 '굿모닝'으로 급하게 바꿨다. 어쩌면 네가 나보다 영어 듣기에 더 능숙할 지도. 유난히도 애교를 부리는 이 강아지를 보며, 혹시 하늘에 있는 우리 개의 영혼이 이 강아지로 다시 태어난 건 아닐까 하는 윤회 사상적 상상을 했다. 그건 아마 아닌 듯했다. 이렇게 붙임성이 좋은 개는 아니었으니. 개 주제에 무뚝뚝했고, 걔도 참 별종은 별종이었다. 그럼에도 많이 보고 싶은 마음에, 핸드폰에서 사진을 찾아보았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그래도 우리 개가 조금 더 귀여운 듯했다. 그 얼굴에 애교까지 부렸다면 아주 완벽했을 텐데. 우리 귀여운 뚱땡이.


아주머니께서는 내가 일어난 걸 확인하시고 아침을 준비해주셨다. 토스트, 베이컨, 버섯, 스크램블 에그, 거기에 시리얼과 오렌지 주스, 그리고 커피였는데, 스크램블 에그가 은근히 맛있었다. 포식에 가까운 아침 식사였다. 아침을 챙겨 먹은 것도 얼마 만인지 모르겠고. 덕분에 든든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식사를 다 마치고, 커피를 마시며 강아지와 조금 장난을 치다가 슬슬 항구로 갈 채비를 갖추었다. 이렇게 표현하니 무슨 그물이라도 들고 만선을 꿈꾸며 바다로 나가는 사람 같은데, 그냥 샤워하고, 옷 갈아입고, 머리를 말린 후에 보온병에 커피를 담았다는 소리다. 원래 여행은 아무것도 아닌 일에도 거창하게 의미부여 하는 과정이 아니겠는가. 평소보다 짐은 더 꼼꼼히 쌌다. 나라를 옮기는 건 어쩐지 그래야 할 듯 했다. 바다를 건너면 다시는 영국으로 못 돌아올 것 같았달까. 원칙상으로만 보면 아직 내게는 40일 정도의 여유가 있긴 있다. 그렇다고 그게 짐을 두고 가도 괜찮다는 소리는 아니니, 조금은 더 신중을 기했다. 아주머니와 강아지의 배웅을 받으며 숙소를 나섰다. 그래도 어제보다는 바람이 덜 부네, 싶은 마음이 한 3초 정도 지났을 때 아주 강한 바람을 느꼈다. 그럼 그렇지. 홀리헤드는 사람도, 숙소도, 경관도 모두 좋은데, 이 놈의 바람 때문에 너무 추운 곳이었다. 특히 다리를 건널 때는 이 바람이 나를 질식하게 만드려는 건가 싶을 정도로 매섭게 불어댔다. 그 때문에 물에 빠진 것도 아닌데 '푸우우' 하면서 숨을 내쉬어야 했다. 가뜩이나 끌고 다니는 캐리어가 무거워 죽겠는데, 바람까지 정면으로 부니 더욱 벅찼다. 된소리 음절이 아주 많이 포함된 욕을 내뱉고 싶었지만, 그렇게 했다가는 침이 내 얼굴로 튈 것만 같아 속으로만 속삭였다. 개와 관련된 비속어는 이번에는 뺐다. 숙소에서의 귀여운 강아지 때문이었다. 어쩐지 그래서는 안 될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오늘 아침의 홀리헤드
역과 터미널이 붙어 있는 홀리헤드. 여기도 웨일즈라 언어가 두 개씩 병기되어 있다.
티켓팅 기계
출항을 기다리며.

출항 시간은 조금 미루어졌다. 따라서 항구에 도착해서 상당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운항사 카운터 앞에서 한참을 줄 서서 기다린 끝에, 체크인이 시작되었다. 메일로 발송된 화면을 보여주었는데, 어라,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간단했다. 신분 확인도 없이 내 이름을 확인하더니 들어가란다. 명색이 나라간 이동인데, 영국에서 버스 탈 때랑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수속 절차도 아주 간단했다. 배낭을 대충 살펴보면서 '뾰족하거나 위험한 거 있습니까?' 그리고 '팔을 옆으로 벌려보세요'가 끝이었다. 이 나라로 입국할 때의 그 깐깐함과 꼬장꼬장함은 남의 나라로 떠날 떄는 전혀 상관하지 않는 듯했다. 그러고 캐리어를 맡기자, 이젠 모든 수속 절차는 마무리 됐고 나는 대합실에서 대기만 하면 되었다. 배로 장거리를 이동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고, 따라서 어지간하면 캐리어를 포함한 모든 짐을 다 들고 탑승할 예정이었는데, 얼떨결에 수하물로 맡겨버리고 말았다. 너무 친절하게 내 가방을 받아주길래 혹시 추가 비용이라는 삥을 뜯으려는 수작이 아닐까 싶었는데 다행히 그러진 않았다. 도착해서 저 짐을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찾게 되는지 아무런 정보가 없었지만, 다른 사람들도 잘 맡기는 걸 보니 별 일은 없겠지 싶어서 마음 편하게 대합실로 올라갔다. 여기서 조금 부끄러운 고백을 하자면, 나는 그 대합실에 구멍가게 수준의 면세점이라도 있을 줄 알았다. 아일랜드가 아무리 영국과 밀접하고 지리적으로도 인접했다고 해도, 어쨌든 외국 아닌가. 외국으로 나가는 곳에 면세점이 없다니. 수속할 때는 여권에 도장도 안 찍어 주더니, 이거 영 출국하는 기분이 안 났다. 쉥겐 국가들 사이를 이동할 때는 별도의 출입국 심사를 하지 않는 게 원칙이지만, 영국과 아일랜드는 그 나라들이 아니니 뭔가 좀 다를 줄 알았다. 조금은 허탈하게, 하지만 곧 배를 탄다는 역시 조금은 들뜬 마음으로, 대합실에 앉아 기다렸다.

20170213_132437.jpg 체크인 카운터
20170213_132121.jpg 수하물 표
20170213_132834.jpg
20170213_132837.jpg 간단한 수속 절차
20170213_132844.jpg
20170213_132925.jpg
20170213_132927.jpg
20170213_132938.jpg
com.daumkakao.android.brunchapp_20170214031934_0_crop.jpeg
20170213_133239_373.jpg
20170213_133300_216.jpg
20170213_133523_716.jpg
20170213_133549_892.jpg 대합실과, 탑승동으로 가는 에스컬레이터

거기서 신난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혼자 여기저기 사진을 찍고, 또 구경하고 다녔다. 그 때문에 몇몇 사람들은 나를 신기한 듯이 구경했다. 밴드가 무대 위에서 엄청 신나는 노래를 공연하는데, 주위 관객들은 목석 같은 반응을 보일 때와 같은 다소간의 뻘줌함을 느꼈다. 이 사람들한테 아일랜드는 '외국'이 아닌 듯했다. 탑승 문이 열리고, 두근대는 마음으로 계단을 내려갔다. 내가 타게 될 배는 어떤 배일까. 그래도 아일랜드까지 가는 배인데 아주 작진 않겠지. 태어나서 지금까지 주욱 오직 육지에서만 생활했던 나는, 배에 대한 이상한 로망이 있다. 그건 아마 그 동안의 배라는 게, 석촌 호수의 오리배나, 이런저런 놀이공원들의 후룸라이드나, 아니면 한강의 유람선처럼 유희를 목적으로 했던 경우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머릿속으로 '마쀼~꼬지론~따~~노'를 부르며 두근두근하는 마음으로 문을 나섰는데, 기다리고 있던 건 배가 아닌 버스였다. 5초 정도, 아주 멍하게 서 있었다. 그 후에야 상황 파악이 되기 시작했다. 아, 저걸 타고 부둣가로 가는 구나. 다소 민망한 기분으로 버스에 올랐다. 그리 짧지 않은 거리를 달려, 제한 구역으로 들어가더니, 배 앞에 멈춰섰다. 마치 활주로에서 이륙 신호를 기다리는 비행기처럼 운전 기사가 무전기로 정보를 주고 받았다. 앞에 있는 건, 배라기보다는 거대한 블랙홀 같았다. 어마어마하게 큰 화물 트럭들이 그 안으로 빨려들어가는 듯 했기 때문이었다. 하늘에는 드론이 그 모든 상황을 지켜보는 중이었다. 세상 참 좋아졌네. 실제로 활용되는 드론을 눈앞에서 본 건 생전 처음이었다.

배로 올라가기 전

마침내, 버스는 배 안으로 '슝' 들어갔다. 언덕에 가까운 오르막을 오르자, 다음은 바로 어두컴컴한 주차장이었다. 주차장 같다 싶었는데 정말로 주차장이어서 조금 놀랐다. 거기서 내려, 선실이 있는 곳으로 올라갔다. 거대한 선박답게 엘리베이터까지 있었다. 나는 그제서야 우리나라의 '조선업'이 국가 경제를 부양했다는 이야기를, 왜 어릴 적부터 그토록 수도 없이 들어왔는지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그건 단순히 배를 만드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건설'에 가까웠다. 아일랜드로 가는 근거리의 선박도 이 정도 규모니, 크루즈나 거대 화물 선박은 어떨지 상상도 안 됐다. 왜 그런 배들의 크기를 형용하는 단위로 '축구장'이 쓰이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있는 곳은 7층이었다. 7층. 글래스고에서 머물렀던 10층짜리 호스텔 이외에 그 동안의 숙소 중에는 3층 이상의 건물조차 없었다. 조선업은, 아주 크고 넓은 주차장을 가진 주상 복합 빌딩을 짓는 일이었다. 정말 중공업 중의 중공업이구나 싶었다. 시간이 되자 배의 매듭이 풀리고 '항해'를 시작했다. 배를 '유람'이 아닌 '항해'의 목적으로 타는 건 난생 처음이라 아직 마음은 흥분 상태에 가까웠다. 이 큰 배가, 조금씩 꿋꿋하게 앞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그것도 아주 편안하게 물살을 가르며. 인생을 항해에 비유하는 흔한 클리셰는, 언제나 우리에게 거센 파도와 바람을 이겨낼 수 있는 강인한 의지와 용기를 요구한다. 거기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게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다. 그런데 배가 이런 크기의 선박이면 의지니 용기니 하는 것들은 아무 쓸모가 없다. 일반석보다 더 비싼 특실에 있던 것도 아닌데도, '흔들림 없는 편안한' 승차감을 경험할 수 있었다. 강인한 의지나 용기가 있다면, 그걸 활용하여 바다에 나가기 직전까지 악착같이 돈을 모은 후에, 커다란 배에 승선하는 편이 훨씬 낫고 안전하다. 영국의 홀리헤드에서 아일랜드의 더블린 사이의 바다가 물론 '망망대해'는 아니다. 그 짧은 '항해'동안, 나는 이 중요한 신자유주의적 사실을 깨달았다.

거대한 주차장
배 내부 사진들. 별 게 다 있다.
갑판

맥주를 한 잔 하고 갑판에 나가자, 아주 예쁜 바다와 석양이 펼쳐지고 있었다. 아름다운 일몰은 봐도봐도 질리지가 않는다. 오히려 조금은 벅차기도 하고. 선상임에도 바람이 그리 강하지 않아 오래도록 바다를 보고 서 있었다. 그제야 영국을 떠났다는 사실이 확실히 실감났고. 더블린이 아주 어두워졌을 때 배는 도착했다. 역시 마찬가지로 버스를 타고 터미널까지 이동한 다음, 거기서 입국 수속을 밟았다. 이번에도 절차는 간단했다. 담당 심사관이 '이 곳에 처음이니'를 물어본 뒤, 여권에 도장을 찍어 주었다. 도장을 받아서 기뻤다. 그래, 이래야 좀 외국으로 나가는 맛이 있지. 터미널 주변은 정말 컴컴했다. 재래식 이동 수단일수록, 다른 대중교통과의 연계가 훨씬 불편하다. 인천 공항과, 인천 버스 터미널, 그리고 연안부두의 주변을 비교해 보면 쉬울 듯하다. 문제는 내가 더블린의 길 사정에 대해서는 전혀 무지하다는 점이었다. 가급적 오후 시간대의 이동만큼은 어떻게든 피하려고 하는 게 이런 이유에서다. 어두운 밤에는 길 찾는 게 몇 배는 더 어렵다. 유럽의 도시들이 비슷비슷해 보여도 또 나라별로, 가끔은 도시별로도 이런저런 체계들에 차이가 있는 경우들도 많고. 어디로 어떻게 가야할지 조차 몰라서 그냥 눈에 보이는 버스에 올라탔다. '시내'에 가냐고 물어보니, 그렇다고 하길래 일단 그럼 그곳까지 가서 호스텔로 가는 나머지 방편을 생각해보자 싶었다. 버스에서 내려 구글맵 내비게이션 기능을 작동해보니, 호스텔은 차로 15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그래도 다행히 강을 따라서 주욱 걷기만 하면 되었고, 한 번에 숙소를 발견했다. 도심과 아주 멀리 떨어지지는 않은 것 같아 안심이 됐다. 엄밀히 말하면 도심 내부긴 하다. 특히 시내까지 버스를 20분 타야했던 지난 리버풀의 숙소와 비교했을 땐 더더욱.

다 비슷한 것 같지만 그래도 감상해보자.
더블린 항구에서의 수속
그리고 더블린

짐을 대충 풀고, 이 곳의 대략적인 물가를 확인하러 근처 마트에 갔다. '물가'는 말 그대로 물의 가격이다. 생필품 중의 생핌품인 물의 가격을 지난 방문지들과 비교해보면서, 여기서는 예산이 얼마나 뜯길지 예측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물이 비쌌다. 이건 불안한 징조다. 비록 여기서는 아직 한 끼도 먹어보지 않았지만, 꽤나 험난할 거라는 걸 대충 예상해볼 수 있다. 높은 물가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호스텔로 돌아왔다. 열흘 이상을 혼자서만 지내다 호스텔로 돌아오니 이 북적북적함이 적응이 되질 않는다. 그래도 사람 소리가 그리 짜증나지는 않는 걸 보니, 나도 점점 '여행자스러워'지고 있는 듯하다. 같은 방에 총 다섯 명의 사람들이 있는데, 나를 제외한 넷은 모두 유럽 국가 출신이고, 그 중 셋은 또 프랑스 사람이며, 그 와중에 한 여자는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자기는 태권도를 좋아한다며 한국을 아주 잘 안다고 한다. 격파 시범을 보고 큰 감동도 받았다고. 오, 우리의 K 순방단이 정말 효과가 있었던 건가. 이건 좀 의외인데. 네 사람 모두 아일랜드에는 인턴십이나 취업 등의 목적으로 방문했다. 어쩐지 나만 인생을 탱자탱자 놀고 먹겠다는 것 같아서 이건 좀 글로벌적으로 불안한 느낌이다. 특히 이 프랑스 여성. 영어도 잘하고, 프랑스어는 당연히 잘 할 테고, 한국 문화까지 제법 알고 있는 이 사람이 나중에 한국에서 취업한다고 바다 건너 찾아오는 불상사는 없기를 바란다. 어서 빨리 나도 '취업의 항해'를 하는 데 필요한 강인한 용기와 인내가 생겨야 할텐데. 아차, 그런 조급함 같은 건 비워내자고 떠나온 여행이었지. 오늘의 플레이리스트는 로코베리의 '항해'다. 바다 한복판에서 바다를 바라보았던 그 순간을 기억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