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
한국과 계절이 정 반대인 호주는 12월이 햇볕 쨍쨍한 여름이다. 호주에서 제일 더운 지역에 속하는 다윈은 더 뜨겁다. 매일 더위에 헥헥거리던 카타르도 12월엔 나름 겨울이라고 아침저녁으로는 쌀쌀했었다. 내 생에 가장 더운 12월이다.
올해 초 방콕에서 잠깐 만난 인연 율리와 가끔씩 연락을 하고 있었다. 내 호주살이 소식을 페이스북에 간간히 올릴 때마다 율리는 메시지를 보내곤 했다.
“오빠, 호주생활 진짜 행복해 보인다. 재밌어?”
나는 그때마다 너무 즐겁고 시간되면 언제 한번 놀러 오라고 했다. 기선이와 마가렛리버에서 포도 따고 있을 때쯤 율리에게서 보이스톡이 왔다. 메시지를 보내거나 댓글을 남기는 사이지 전화를 하는 사이는 아니어서 조금 의외였다.
“오빠 지금 미국으로 어학연수를 갈지, 오빠처럼 호주로 워홀을 갈지 둘 중에 고민이야. 오빠는 캐나다에서 학교 다녔었자나. 둘 다 해본 사람으로써 어떤 게 더 나을까?”
율리는 꽤 진지했다. 시골마을이라 데이터가 잘 안 터져 말이 중간중간에 끊겨서 뭐라고? 다시 한번 말해줘를 계속하며 나도 꽤 진심을 담아 얘기해줬다.
“나는 캐나다에서 어학원도 다니고 대학까지 나와서 그냥 어학연수랑은 달라서 어떨지 잘 모르겠네. 그리고 캐나다랑 미국은 비슷한 것 같지만 꽤 다르거든. 미국은 정확히 뭐라고 말을 못해주겠어. 호주 워홀은 너가 사진에서 본 그대로 너무 즐거워. 그런데 영어가 목적이라면 호주 발음보다는 미국 발음을 배우는 게 나을 수도 있어. 결정은 너가 하는 거지”
그렇게 진짜 율리가 호주로 왔다. 온다온다 하더니 진짜 왔다. 사실 걱정은 좀 했었다. 방콕에서 율리를 처음 본 이미지가 생각났다. 더운 나라 여행자들이 시꺼멓게 그을린 피부를 자랑하며 모여 있는 게스트하우스에서 율리 혼자 새하얀 피부에 숏커트를 하고 아무와도 이야기를 하지 않고 혼자 도도하게 앉아있었다.
‘수영장 딸린 호텔 같은데 있을 애가 여기 왜 있는 거지?’
그게 내 첫인상이었다. 어떻게 하다보니 게스트하우스에 있는 사람들 다같이 밥을 먹게 돼서 몇마디한게 다였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이 다가왔다.
“한국에 몇일날 가세요?”
“저는 모레요”
“엇 저도 모레에요. 몇 시 비행기에요?”
“저는 저녁 8시에요”
“엇 저도요”
같은 날 같은 비행기였다. 그렇게 친해진 인연이었다. 공주 같은 이미지라 이렇게 더운 시골마을에서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 우리집 주소를 보내주고 택시 타고 오라고 했다. 아침 8시쯤이었다. 밖에 나가서 담배 하나 피고 있으니 택시가 앞에 선다. 진짜 율리가 내린다. 예상과는 다르게 배낭 하나 메고 왔다.
“오빠, 짐은 어느 정도 가져가면 돼?”
“여기도 있을 거 다 있어. 나도 배낭 하나 메고 왔어”
진짜 배낭 하나만 달랑 메고 왔다. 그것도 자기 몸만한 배낭을 낑낑거리며 내린다. 반가운 재회의 포옹을 했다.
“진짜 왔네? 잘 지냈어?”
집주인 수잔한테 친구가 온다고 말해놨다. 마침 대만 친구 한 명이 돌아가게 되어서 침대 하나가 남는다. 그렇게 방 세 개가 있는 집에 방 하나에 한국인 한 명씩이 들어가게 되었다.
율리 방에 짐을 대충 놔두고 씻고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고 아침부터 베란다에 앉아서 맥주 한 병씩을 물었다. 예전 태국 이야기를 시작으로 그 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쉴새 없이 떠들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니 기선이가 땀을 뻘뻘 흘리며 일을 마치고 돌아온다.
“기선오빠!”
둘이 실제로 만나는 건 처음이지만 나에게 둘에 대한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어서 아는 사람 같단다. 기선이 성격은 누구나 금방 친구가 되는 서글서글한 성격이지만 율리는 이 곳에서 기댈 곳이 우리 둘밖에 없으니 더 반가워 하는지도 모르겠다.
룸메이트들이 하나둘씩 일을 마치고 들어오고 그때마다 율리를 소개시켜줬다. 율리는 중국 하얼빈에서 대학을 나와서 대만친구들과 중국어 소통이 가능했다. 이제 내가 일을 갈 차례가 되어 율리가 걱정돼서 기선이한테 잘 부탁한다고 신신당부를 하고 일을 최대한 빨리 마치고 돌아오니 둘은 벌써 둘도 없는 친구가 되어 있다.
새로운 멤버가 또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