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떠서 멍하게 앉아있다 배고파서 숙소를 나섰다. 여기와서 내내 노느라 못 먹었던 것들을 먹어보기로 했다. 후보는 3개다. 쌈쎈에 있는 아저씨 소고기국수, 끈적이국수 그리고 해물국수다. 밖에 나온 김에 제일 먼 곳으로 가기로 했다. 쌈쎈으로 간다. 옛날에 방콕에서 머물 때는 쌈쎈에 있어서 자주 건너던 쌈쎈 다리를 이번에 처음 건넌다. 다른 곳은 다 바뀌어도 여기는 항상 그대로인 것 같다. 여전히 구정물인 다리 밑의 하천과 원래는 흰색이었을 다리색깔이 때가 타서 누렇다.
쌈쎈 쏘이 2번으로 들어가니 익숙한 세븐일레븐과 누오보 호텔이 보인다. 왼쪽으로 꺾어 올라가 쏘이 4번 구석에 있어야 할 아저씨국수집이 없다. 조그만 슈퍼가 생겼다. 아저씨는 어디로 이사간 걸까. 나이쏘이보다 100배 넘게 맛있는데. 허탈 해져서 다시 터벅터벅 걸어서 파수멘으로 갔다. 어제 갔던 선착장보다 조금 더 걸어야 한다. 다행이다. 연두색 문이 보인다. 여기는 그대로 있다. 사장님도 그대로다. 익숙한 메뉴를 시켰다.
“라지 사이즈, 계란 추가요”
여기 사장님은 게이다. 잘 생긴 남자한테 더 친절하다. 내가 수염 없을 때 왔을 때 더 나에게 잘해줬던 걸로 기억한다. 이번에는 쳐다보지도 않는다. 괜히 서운하다.
그리웠던 끈적이 국수가 나왔다. 외국인인 걸 아는지 알아서 고수를 안 넣었다. 넣어도 상관없는데 말이다. 맛은 그대로다. 엄청난 조미료 맛과 감칠맛 그 자체에 끈적끈적한 면발도 그대로다. 거기다 다른 국수보다 훨씬 뜨거워서 천천히 먹어야 한다. 전날 먹은 술이 땀으로 다 나온다. 해장에는 이만한 것이 없다.
기분 좋게 걸어오다 액세서리 가게가 보여 팔찌 4개를 샀다. 하나에 50바트다. 옛날 같았으면 4개 사니까 깎아 달라고 했겠지만 그냥 행복하게 나왔다. 그래봤자 4개에 만원도 안 한다. 쌈센 다리 가기 전 사거리에 길거리에 옷을 판다. 원숭이가 그려진 셔츠가 맘에 든다. 얼마냐고 물어보니 100바트란다. 이번에도 그냥 행복하게 사왔다. 그리고 숙소로 들어가기 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샀다. 숙소에 들어가서 시원한 커피를 마시고 있으니 브록이 들어온다.
“브록 굿모닝. 아침부터 어디 갔다 와?”
“아니 어제 나가서 이제 들어오는 거야”
시계를 보니 벌써 1시가 다 되어 간다. 어제 택시가 안 잡혀서 비네서 자고 왔단다. 비는 태국 친구다.
“나나는 어땠어?”
“쇼는 진짜 장난 아니었는데 딱 한 번만 보면 될 거 같아. 두 번은 별로야. 그리고 거기 ATM 머신 있거든? 거기 할아버지들 줄이 어마어마하게 서 있는 거야. 알고 보니까 할아버지들이 여자들한테 돈 줄려고 돈 뽑는 거 기다리는 거래. 미친 거 아니야?”
역시 안 가길 잘했다. 딱 한번만 봐도 될 쇼를 안 봐도 되었고 택시 안 잡혀서 피곤하게 서 있는 거도 별로다. 무엇보다 어제 혼자 나가서 누구보다 즐겁게 놀았다.
한낮의 방콕의 열기가 점점 뜨거워진다. 가만히 앉아있어도 땀이 줄줄 흐른다. 어젯밤의 광기가 꿈이었던 것처럼 낮의 숙소는 조용하다. 에어컨이 있는 방으로 잠시 들어가서 쉬었다. 두 세시간쯤 쉬고 다시 내려왔더니 햇볕은 아직 내리쬐지만 공기는 꽤 부드러워졌다. 1층에는 나같이 할 일 없는 여행자들 몇몇이 각자의 방식으로 쉬고 있다. 맥주 한 병을 시켰다. 브록을 포함해서 낯익은 친구들이 하나둘씩 내려온다.
“브록, 오늘은 뭐해?”
“오늘은 차이나타운 갈려고. 내가 방콕에서 제일 좋아하는 곳이야. 맛있는 게 너무 많아서 고르다가 기절할 정도야. 분위기도 좋고”
“혹시 나도 가도 돼?”
“넬리 너랑 같이 가자고 이렇게 설명한거자나. 아직은 좀 이르고 저녁에 일곱시? 여덟시? 대충 이때 출발하자”
친구들과 맥주 한잔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조금씩 어둠이 내려앉으면서 화려한 조명은 켜지고 음악 소리가 커진다. 어느새 모여든 사람들로 시끌벅적하다. 브록과 함께 빨래를 모아서 동전으로 바꿔서 세탁기에 넣고 시간이 될 때까지 사람들과 이야기하며 시간을 때웠다.
“넬리, 저기 영국 친구들 셋도 간대. 같이 가자. 나도 이름은 까먹었어. 저기 키 큰 친구랑 옆에 안경 낀 친구랑 그 옆에 나이 좀 있는 친구까지”
키 큰 친구 이름은 테위. 그 옆에 있는 안경 낀 친구는 딜런. 둘이 대학교 친구라 같이 여행 왔단다. 그 옆에 있는 나이 좀 있는 친구는 아담. 셋 다 눈인사와 몇마디 정도 나눠본 친구들이다. 테위가 말한다.
“아 그리고 우리 방에 포르투갈 친구 페드로도 가고 싶다는데 괜찮아?”
그렇게 차이나타운 멤버가 여섯 명이 되었다.
“여섯 명이면 택시 두 대로 나눠서 가는 게 낫나?”
“아냐 내가 그렙으로 벤 부를께. 여섯명이서 돈 쉐어하면 그게 나을거야”
그렇게 여행자 미니벤도 아닌 개인 벤을 처음 타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