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
여덟 시쯤 돼서 숙소 입구로 나가니 검정색 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벤 안은 꽤 넓고 깨끗하다. 에어컨도 빵빵해서 쾌적하다. 구글맵에서는 차로 12분 정도라고 찍히는데 차가 막힌 건지 최단경로로 안간 건지 25분쯤 걸려서 도착했다.
대륙의 스케일처럼 큼직큼직한 간판들이 인상적이다. 태국어도 많지만 한자들도 많이 보인다. 이국적이다. 태국은 이제 익숙해져서 인지 이국적인 느낌은 안 든다. 거리는 온통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아 오늘 금요일 밤이구나.
큰 도로 옆으로 온통 먹을거리 천지다. 식당도 많고 길거리 음식점도 넘쳐난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처음보는 음식들도 많이 보인다.
“저기 봐봐. 악어 고기 꼬치구이야. 어때?”
배고픈 여섯 남자의 호기심을 끌기에 충분한 비주얼이다. 각자 하나씩 주문했다. 신기한 음식을 보고 흥분한 외국인 여섯 명을 보고 재미있는지 인상 좋은 사장님은 연신 웃으신다. 꼬치를 구우시면서 특제 소스를 바르는데 물어보니 그냥 스파이시 소스란다.
꼬치가 다 구워 지고 각자 한입씩 베어 물었다.
“오 생각보다 괜찮은데?”
다들 똑 같은 반응이다. 호주에서 먹었던 질겨서 버리고 싶었던 악어고기와는 다르다. 매콤하기도 했고 식당마다 뿜어져 나오는 열기에 다들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세븐 일레븐으로 들어가 각자 시원한 맥주 한캔씩 사서 마시면서 걸었다. 브록만 스미노프를 사서 다들 의아해한다.
“브록, 맥주 안좋아해?”
“어 나는 맥주는 안 마셔”
“신기하네 맥주 싫어하는 호주 사람 처음 봐”
호주에 살 때 호주 친구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맥주에 미쳐있었다. 나도 신기하다.
“일단 이쪽 도로 끝까지 걸어서 구경하고 길 건너서 반대쪽까지 구경하고 밥 먹으러 들어가자”
도로 끝으로 가기 조금 전 길거리 음식점에 줄이 엄청 서 있다. 저건 뭐지하고 봤더니 동그란 빵을 튀기는 가게다. 자세히 보니 천막에 미쉘린 스티커가 붙어있다. 노점상에 미쉘린 스티커가 붙어 있는 건 처음 본다. 지나칠 수 없다. 먹어봐야 한다. 친구들도 다 호기심 넘치는 표정이다. 메인 음식도 먹어야 하니 작은 거 두개 시켜서 나눠 먹기로 했다.
음 뭐랄까 사람들이 좋아하는 겉은 바삭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전형적인 맛있는 빵이다. 한국에 있는 도나스 빵 같은 건데 왜 미쉘린 스티커가 붙어 있는지는 모르겠다. 다른 친구들도 그렇게 느꼈는지 몇 개 먹고 더 이상 입을 대지 않는다. 버리기는 아까워 숙소에 가서 다른 친구들에게 나눠주려고 차이나타운에 있는 내내 비닐봉지를 댕글댕글 들고 다녔다. 도로 끝까지 갔다가 다시 길을 건너 반대편으로 걷기 시작하는데 이제 슬슬 덥고 지치고 배도 고프다. 브록이 알고 있다는 또 다른 미쉘린 고급 맛집은 인터넷에 찾아보니 오늘은 휴일이란다. 그냥 걷다 각자 이것저것 마음에 드는 길거리 음식을 사서 먹기로 했다.
현지인들은 다 마스크를 쓰고 걷고 있고 관광객들은 다 마스크를 벗고 걷고 있다. 이렇게 더운데 뭐가 즐거운지 다들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웃고 있다. 화려한 네온 사인과 습한 방콕의 공기는 슬슬 우리를 지치게 만든다. 딜런이 발견한 연어절임이 맛있어 보이는 반찬 가게 앞에서 서서 다 같이 몇 가지 음식을 샀다. 족발튀김과 구운 오징어도 있다. 간단히 앉아 먹을 수 있게 간이 테이블과 의자도 있어 근처 편의점에서 맥주만 좀 사와서 다 같이 앉았다. 땀 흘리며 맛있게 먹는 우리 모습이 재미있는지 옆에 앉아 있던 태국 젊은 사람들이 건배도 하고 먹던 구운 땅콩도 나눠주고 간다.
다행히 우리가 우버 택시에서 내린 곳에는 택시가 많이 다닌다. 택시 두개를 잡아 나눠 타고 다시 카오산으로 돌아왔다.
“넬리! 지금 친구들이랑 카오산에서 한잔하고 있어. 차이나타운 갔다가 오면 연락해”
태국 친구 비에게서 디엠이 와 있다. 택시에서 내린 브록과 다른 친구들은 숙소로 가서 샤워하고 옷 갈아입고 다시 카오산으로 돌아온다고 한다. 나는 많이 걸어서 시원한 맥주가 간절했다. 바로 비와 친구들이 있는 펍으로 갔다. 펍에는 비와 다른 친구 둘이서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미쉘린 빵이 든 봉지를 건네고 두 손을 모아 인사했다.
“싸와디캅!”
또 다시 파티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