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미국에서 아르메니아인이 가장 많이 사는 도시다. 글렌데일 사람들은 전체적으로 느긋하고 여유가 넘친다. 큰 도시처럼 차가 붐비는 일도 거의 없다. 2013년 '올해의 LA 동네'로 선정된 적도 있고, 현지 언론이 꼽은 "은퇴하기 좋은 동네 탑 10"에 들기도 한, 살기 좋은 곳이다.
글렌데일은 외국에서 처음으로 위안부 평화의 소녀상을 세운 도시다. 일본계 미국인도 많은 캘리포니아에서 일본 측의 반대와 방해 운동에도 불구하고 소녀상이 세워질 수 있었다. 아르메니아 학살을 겪은 지역 주민들이 한국의 아픔을 이해하고 공감했기 때문이다.
글렌데일은 한국인에게 역사적으로 중요한 곳이지만 관광지가 아니어서 낯설기도 하다.
글렌데일의 첫인상은 ‘평범함’이었다. 단조롭고 별다른 볼거리가 없는 도시라는 것이 아니다. 만약 내가 미국에 산다면, 이런 평범함 모습이 나의 일상이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 평범함이 주는 안정감이 크게 다가왔다. 이곳에서의 시간이 어쩐지 편안하게 느껴졌다.
글렌데일에 있는 아메리카나 앳 브랜드에 도착한 순간, 마치 작은 도시의 한 거리를 걷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대형 쇼핑몰이라고는 하지만, 이곳은 단순한 상업 시설 이상의 공간이었다. 여유롭고 활기찬 에너지가 가득한 이곳에서 나는 천천히 거닐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조금 걷다 보니 중앙에 자리한 넓은 잔디밭과 그 한가운데에서 춤추듯 물을 뿜어내는 분수가 눈에 들어왔다. 아이들은 자유롭게 뛰어놀고, 어른들은 잔디에 누워 여유를 만끽하는 모습이 너무나 평화로웠다. 사람들의 밝은 표정과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풍경을 바라보며 나는 이곳에서의 작은 일상들이 얼마나 행복한지 새삼 느꼈다.
잔디밭에서는 시간이 맞으면 라이브 공연도 열린다. 담요를 깔고 그 위에 누워 공연을 즐기는 사람들, 그 장면은 마치 영화 속 한 장면 같았다. 나도 잠시 잔디밭에 앉아 공연을 감상하며 그들처럼 여유를 즐겼다.
공연을 보고 난 후, 나는 주변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서점으로 향했다.
이 서점에 들어섰을 때 작은 진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책을 품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고, 바닥에 앉아 편안하게 책을 읽고 있는 모습들이 눈에 들어왔다. 어린아이부터 나이 지긋한 어른들까지 바닥에 주저앉아 책을 읽는 광경이 곳곳에 펼쳐졌다.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집중하는 사람들, 편안한 자세로 허리를 기대고 책장을 넘기는 손길이 이곳저곳에서 눈에 띄었다. 마치 각자의 세계 속으로 스며들어 가는 것처럼, 이 바닥에 앉은 풍경은 정적이면서도 평화로웠다.
이곳에 앉아 책을 읽는 사람들의 모습은 어떤 이야기보다 더 깊은 여운을 남겼다. 평범한 서점의 바닥이 작은 도서관으로, 또 어쩌면 누구에겐 피난처로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서점에서 펼쳐지는 풍경 하나하나가 작은 위로처럼 다가왔다.
나도 서점에서 책을 한 권 고르고, 커피 한 잔을 산 후 테라스에 자리를 잡았다. 산뜻하게 불어오는 바람과 따뜻한 커피 향, 그리고 잔디밭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웃음소리까지 모든 것이 완벽했다. 그렇게 나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책을 읽으며 평범하지만 소중한, 진정 자유롭고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평범한 일상일지 모른다. 지루하고 별다를 것 없는 하루, 그저 스쳐 지나갈 순간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 무엇보다 소중한 힐링이자 마음의 위안이었다.
잔디밭에 누워 쉬는 사람들, 아이들의 웃음소리, 커피 한 잔을 들고 책을 읽으며 느낀 여유. 그 모든 순간이 내겐 특별했다. 잔잔한 평화로움 속에서 나는 삶의 소중함을 새삼 되새겼고, 일상의 작지만 깊은 행복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이곳에서 보낸 시간은 나에게 단순한 하루 이상의 의미를 남겼다.
내게 이 여정은 새로운 세상과 마주하는 과정이었고, 미지의 세계에 한 걸음씩 다가가며 나 자신을 발견해 가는 시간이기도 했다. 이제 여행의 끝에 서서 지나온 순간들을 하나하나 떠올려보니, 그저 스쳐 지나간 장면들이 아닌, 내 삶에 깊이 새겨진 기억들로 남았다.
미국에서의 마지막 장소에 서서, 나는 이 나라가 가진 다채로운 색과 향기를 마음 깊이 느끼고 있었다. 높은 빌딩들이 가득한 도심에서 사람들의 생동감 넘치는 에너지를 느꼈고, 광활한 자연 속에서는 시간이 멈춘 듯한 고요와 평화로움을 만났다.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마주한 이 모든 경험이 나에게는 새로운 눈을 뜨게 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