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많은데 사람이 없다..

사각공간 - 시간, 공간, 인간, 행간

by 사각공간
사람은 많은데 사람이 없다.
_레닌, 『무엇을 할 것인가』
('레닌'이 이른 말은 아니다)


정말이지.. 사람은 많은데 이토록 무수한 사람들 가운데 정작 필요한 한 사람 좀처럼 눈에 띄질 않는다.

시간의 풀무질을 견디지 못하고 녹아 없어지는─이를테면 해를 더할수록 옅어지는 이념의 색채처럼(담론의 축대 위에 쌓아올려지는 건 캐피탈리즘 상부구조의 거울상이어서 차라리 무너지는 편이 나을지 모르겠다. 그래야 비로소 사람이 보이니. 어쩌면 하루키 같은 작가는 이를 일찌감치 간파한 게 아닐지)─것들이 있는가 하면 정금으로 화하여 뼈에 새긴 바 되는 표현이 있으니 인용문이 꼭 그러하다.

그래, 정말 그렇다. 많은 이들 가운데 정작 그 한 사람이 찾기가 이렇게나 어렵다. 누구 다른 사람의 문제라기보다 우선 내가 그렇다는 얘기. 이 속에 들어앉은 무수한 '나' 가운데 당장 절실한 그이는 모습을 감추었다. 아니 내가 가리웠다. '보이지 않는 손' 뒤에 숨겼다. 아, 정말이지 사람은 많은데 사람이 없구나. 실감한다. 정말 드물다.


인심人心 내겠다고 제 곳간 먼저 채우려 드는 이들로 차고 넘친다. 하지만 당초 여러 인심의 합일이야말로 곳간 형성의 본질이자 정체임을 아는 이는 드물다, 정말 드물다. 우선 내가 그렇다. 자주 잊는다. 개중 팔 할은 고의다.


'빌어온 것이니 다시 돌려놓을 뿐'*이라고.. 깨달은 그대로 실천하는 이들은 정작 '토씨 하나 찾'겠다고 '천지를 떠도'는 가난한 시인이거나 승려들뿐. 그러나 이 적은 수의 사람들조차 지상에 머문 시간은 길지 않으니 이정표로 삼을 만한 사표師表는 죄다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나 다시 만날밖에 ─ 시인 '진이정'은 자신의 시가 누군가에게 읽히는 순간, 꼭 그러한 때에 '사라진 다리'가 복원됨을 알고 있던 것 같다. 시인은, 육성肉聲은 그 '다리'를 건너온다. 마치 내면에 심기운 의義의 씨알, 그 싹을 틔우는 복음福音과도 같이. 한편 '백석' 또한 세상 가장 낮은 데로 고이게 마련인 '가난과 외로움, 그리고 쓸쓸함' 속에 자리하는 '하늘의 뜻'을 알아챈 게 아닐까. 그래서 그 '높은' 뜻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길 바라며 노래하였으리라.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스 쨈과 도연명과 라이넬 마리아 릴케가 그러하듯이
_백석,詩 「흰 바람벽이 있어」 중


다행이라면 다행인 것은 뚯이, 말글로 새겨진 바 남아서 전해지고 있다는 것(심지어 남기지 않으려던 그네들 일부의 의도를 벗어나!). 책이라고 모두 귀하게 여길 수만은 없으니 귀해할 수 있는 건,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성찰 돕는 경우에 국한될지도 모를 일. 모두 필요하니 쓰이겠지만 오래 남겨지고 전해지는 바는 모두 이러하지 않을까.


이 말글 통해, 숙고로 빚은 이 형언形言에 기대어, 세계는 물론이거니와 '나'라고 여기는 이 물건의 정체, 그 안팎의 갖가지 감정과 사정 그리고 형편 등등을 그나마 겨우 가늠할 수 있음이니. 동시에 '나' 외外 타자의, 저간의 사정까지 짐작하고 공감 등을 표할 수 있게 된 만큼 이 모두가 고스란히 빚이다. 힘입은 바 크니 이 말글에 진 빚 또한 나름 '값 없이' 돌려주어야 마땅할 것.


사회/조직, 사람에 휘둘리니 또한 사람

그러나

이를 가꾸고 바꾸는 이 또한 사람이다.


따라서 앞서 인용한 내용을 새로이 새기면,

(당장) 사람이 없어 보여도 (결국) 사람은 제 안에서 그 한 사람을 찾아 밖으로 드러내기 마련.

이렇게 믿고 싶다. 아니 믿자. '겨자씨만한 이 믿음'이야말로 '시크릿', '바라는 것들의 실상을', '불가능한 꿈을 가슴에 품고' 현실을 살아내는 것이지. 이것이야말로 '리얼리스트'의 덕목 가운데 으뜸이겠지. 정말이지 '리얼리스트가 되'어야지.


그래, 당초의 불가능성을 견지하며 불모不毛의 대지를 다만 걸을 뿐. 묵묵히. 그러다 보면 소승小乘의 거처를 박차고 나서서 대승大乘의 수레바퀴-되기를 주저 않는, (자기 안에) '자루 빠진(여읜) 도끼'와도 마주하게 될지 모를 일.


그러니 혐오와 염증이 이루는 균형을 무너뜨리며 세기를 종단/세계를 횡단, 진일보進一步 할 따름.

내게 주어진 사막을 건널 뿐. 오직 한 걸음, 다만 걸을 뿐이다.



*문태준 시인의 시집 『가재미』 표4

"..새와 아내와 한 척의 배와 내 눈앞의 꽃과 낙엽과 작은 길과 앓는 사람과 상여와 사랑과 맑은 샘과 비릿한 저녁과 나무 의자와 아이와 계절과 목탁과 낮은 집은 내가 바깥서 가까스로 '얻어온' 것들이다. 빌려온 것이다. 해서 돌려주어야 할 것들이다. 홀로 있는 시간에 이 결말을 생각하느니 슬픈 일이다. 낮과 밤과 새벽에 쓴 시(도 그대들에게서 '얻어온' 것이다. 본래 있던 곳을 잘 기억하고 있다. 궁극에는 돌려보내야 할 것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