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각공간 - 시간, 공간, 인간, 행간
인간만이 사랑을 가진 자이기에
자기가 품었던 꿈이 다른 사람의 손으로
자기가 불렀던 노래가 다른 사람의 입술로
자기가 걸었던 길이 다른 사람의 길로
자기의 사랑마저 다른 사람의 팔로 성취되고
자기가 뿌렸던 씨를 다른 사람들이
따게 하도록 사람들은 죽음까지도 불사한다
인간만이 내일을 위해 사는 것이다
자기의 몸을 완전히 잊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길이다
인간이란 스스로 기꺼이 나아가는 자이다
다른 사람들이 자기의 술을 마시도록
인간은 언제나 그 몸을 내미는 혼이다
스스로 자기 자신을 극복하는 자가
또 자기 몸의 피를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이다
그 고통의 보상 따위는 추호도 구하지 않고
그리고 왔을 때처럼 빈 몸으로 나가는 것이다
인간은 분골쇄신 힘을 다하고
목표로 했던 만큼 자기를 넘어 나아간다
자기가 이르렀던 하늘에 만족하지 않고
자기가 만들었던 불에 자기를 태우면서
와야 할 아침에 자리를 내주는 밤처럼
사라져가는 자기에게는 마음도 쓰지 않고
자기의 운명과 그 심연 위에
열려진 문을 향해 기뻐하면서
탄광 속에서 또는 조선소 속에서
인간은 오직 미래를 꿈꾸고 있다
..
살고 살리는 것 중에서 인간만이
미래를 생각해낸다
..
인간만이 자기의 그림자를 내려다보며
멀리 전방을 내다보는 한 그루의 나무이다
..
우리들은 모든 방식을 바꾸리라
..
낡은 세계의 모든 것이 바뀔 것이다
_루이 아라공,詩「미래의 노래」중
김남주 번역 시집『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
그래, '인간만이 내일을 위해 사는 것'.
마흔다섯 해, 이제까지는 자신을 드러내고 세우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만을 떠올렸다면
앞으로는 '자기의 몸을 완전히 잊는.. 인간의 길'을 고민하며 걸어보자.
인정하자, 내가 아니어도 된다.
침착하자, 목전의 성과나 당장의 수확에 일희일비 말자.
'고통의 보상 따위는 추호도 구하지 않고 / 그리고 왔을 때처럼 빈 몸으로 나가는'
사람의 생애를 나의 여생으로 삼자.
그저 바람직하다 여기는 바 그 의義에 기대어 마땅히 감당하면 그만, 이로써 족한 줄로 알자.
'사라져가는 자기에게는 마음도 쓰지 않고 / 자기의 운명과 그 심연 위에 / 열려진 문을 향해 기뻐하면서'
나를 중심에 두고 무언가를 이루고자 하는 바에 집중할 시기는 이미 지난 것.
이제라도 집중할 것은 내가 붙잡아 내 안에 들인 갖가지 욕망의 무거운 짐에서 헤어나는 것.
욕망의 거처인 이 '나'라는 영토를 경게지은 울타리부터 걷어내기.
'갈래갈래 갈린 길이어도 내게 바이 갈 길은 하나 없'*음을 선언, 먼저 선을 그어두고
마치 여러 갈래로 갈린 것처럼 보이는 입신양명 서사와는 조금은 다른, 서사를 그려보자.
'인간만이 사랑을 지닌 자이'니.
*김소월,詩「길」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