싯달타, 아는 데 그치지 않고 생활로 구현한 이는 어디

사각공간 - 시간, 공간, 인간, 행간

by 사각공간
싯다르타의 마음 속에는 불만이 일기 시작하였다.

그는 알게 되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도, 친구 고빈다의 사랑도 이젠 영원히 그를 행복하게 하거나 아늑하게 하거나 흡족하게 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그는 깨닫기 시작했다.
존경하는 아버지와 스승들과 지혜로운 바라문 승려들은 이미 그들이 지닌 바 가장 위대한 것을 다 그에게 넘겨 주었다는 사실을.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모든 것을 자기의 그릇에 부어 넣었으나 그릇이 채워지기는커녕 오히려 불안과 불만 속에서 영혼이 목말라 하는 것을..몸을 씻어주는 것은 단순한 물..은 죄를 씻어 주지 못하고 마음의 갈증을 축여 주지 못하여 불안을 해소시키지 못했다.

_헤세, 싯다르타(삼성판 세계문학전집)


문득 한 생각. 어쩌면 자녀가 잘 되기를, 잘 살기를 바라는 부/모 시선이라면 헤세의 글조차 얼마간은 불온하게 비칠지 모르겠다(겉으로 내비치진 않겠지만 말이다). 좋은 내용인 듯싶지만 볼수록 가난과 짝하기 딱 좋은 것 같으니. 화폐경제의 중심을 향해 치열하게 덤벼도 모자랄 판에 이러면 뜬구름 잡는 소리로 비칠 수 있겠다 싶어서. 그래서 이에 혹할까보아 그저 노심초사, '우선 지녀! 가지라고!! 취할 것을 먼저 취하고 그러고 나서 생활이 안정되거든 그 이후에나 덜고 비우도록 해, (마음만)' 라고 할 것도 같다. 그렇다고 단정하는 건 아니고 내가 그렇다는 얘기. 나라면 어떨까 하니 당장 내 속에서 이와 같은 생각 먼저 이는 형편. 만일 내게도 아이가 있다면, 내 아이라면 가정해보니 다르지 않았을성 싶다. 벌써부터 자음과 모음을 주워 입고서 말로 꾸며진 생각이 입밖으로 뛰쳐 나가는 게 보이는 듯도 하고.


그런데 이런 나부터 아니 이런 나조차 그의 글을 빚으로 내어 살아냈음을 부정할 수도 없건만. 『데미안』등을 읽음으로 해서 겨우 오늘에까지 이른 것인데. 무성하게 자란 온갖 의구심들로 숲을 이루던 사춘기를 그래도 무사히 건너 여기에 닿은 셈인데. 빚을 갚긴커녕 물 건넜으니 볼일 없고 내 보따리 내놓으라는 식이니 계면쩍기 그지 없다. 깨보리라던 다짐은 해를 더할수록 무색해지는 한편 '알'은 더욱 단단해지니 이거야 원. 아뿔싸 물러터진 건 다름 아닌 나였으니 지난 세월 그야말로 '무를수도 없는 참혹'¹을 어찌하면 좋을지. 새가 되어 날지도 못하고 돋지 못한 날개의 흔적 찾아 겨드랑이만 긁는 오늘.


변명하자면, 나라고 자존自尊을 지탱하는 힘을 내면에서 길어내고 싶지 않았을까 만은. 막상 마주한 현실에서 먼저 눈에 드는 건 하나같이 가시적이어서 구체적인 것들로(당연한 얘기지만) 이를테면 저 건물과 은행 등에 저축된 돈, 돈이더란 말씀. 재물과 지위로 무장한 갑甲 앞에서 을乙의 자존이란 얼마나 하찮으냐. 배 밖으로 낸 간덩이 집에 두고 다니노라던 별주부전 토끼 마냥 좀 그렇게 당당하면 좋으련만. 번번히 벌거벗고 맞서는 기분을 견디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정도가 심해지고 횟수가 빈번해질수록 그런 경험에서 멀어지고자 애를 쓰는 나약함도 어쨌거나 나라는 인간을 이루는 구성요소. 그러니 안팎으로 가난한 무산자無産者로 소위 경제의 신자 되어 그 '구체성의 신, 일상성의 보살만을 믿'²는 것 말고는 딱히 고를 선택지도 더 없어 보였고. 아이러니한 건 멀어지고자 애를 쓰는 과정에서 구기고 뭉개며 팽개친 것이 다름 아닌, 내가 구하려던 그 자존이었으니 오호 통재痛哉라. 등 뒤에 도돌이표라도 붙은 것처럼 출근과 퇴근 사이를 왕복하다 정신차려보니 벌써 백세시대의 절반 가까운 세월을 거침, 오호 애재哀哉라. 이렇게 반생이 코앞에 닥쳐서야 겨우 깨달은 바


'아, 이건 아닌데.'


그래 정말이지 이건 아니다. 이렇게 살다 가도 나쁘지 않다 여길 수야 있겠지만. 뭐랄까 억울하다기보다는 중요한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는 느낌을 벗을 길 없으니 답답하다.


그런데 이 심오한 지식을 다만 아는 것이 아니라 실제 생활 속에서 체험한 바라문이나 승려들은 어디 있으며 현자나 참회자들은 어디 있는가? 아트만 속에 잠자고 있는 것을 깨우쳐 생활로 끌어내고 언행으로 구현시킨 해탈자는 어디에 있는가?

_헤세, 싯다르타(삼성판 세계문학전집)

그러게.. 정말이지 어디 계세요, 다들.


¹ 허수경,詩 「혼자 가는 먼 집」

² 진이정,詩 「아트만의 나날들」, 시인은 물신이 점령한 일상을 거꾸로 세워 사람 속에 거하는 신을 복원하려 들었는데 나는 그 물신조차 분명히 직시도 못하고 다만 고개만 연신 조아린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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