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의 시종으로서의 노동, 이것이 인간 행위의 정체"

사각공간 - 시간, 공간, 인간, 행간

by 사각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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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인드 페이지. 30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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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인드 페이지. 32일차

【블라인드 페이지】- 30,1,2일차


주체성이 그것의 유출을 저지당하여 한 특별한 인물 속에 갇혀있는 것을 본다. 다이모니온은 소크라테스에게는 충분한 것이었다. 그는 그것으로 자신을 도울 수가 있었다. 하지만 (…) 소크라테스의 데몬을 유령으로서 파악하는 데리다의 읽기는 이런 키르케고르적 해석과의 긴장관게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여기에서는 변증법에 대한 저항의 방법이 다르다. 데리다적 유령은 오히려 소크라테스를 확산시키기 때문이다. (…) 어떤 하나의 불가능한 것, 나도 아마 그것에 대해 정하고 있는 그런 것의 주위를 맴돌면서 그 '나'가 저항의 형식 그 자체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동일성이 고해질 때마다, 하나의 귀속관계가 나를 국한시킬 때마다, 말하자면 누군가가 혹은 무엇인가가 외치는 것입니다. 정신을 차려라, 함정이다, 빠져있구나. 떼어놓아라, 몸을 떼어놓아라. 네가 몸을 들이밀 장소는 다른 곳에 있다. (…) "명명할 수 없는 한 언어에 대한 이 가깝고 소원한, 그리고 고유하게 비고유적인 이 경험 앞에서는 사고가능한 사고하는 나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하나의 문화나 언어 속에 있는 것, 즉 동일성이 동일성으로 주어지는 것, 그 순간에는 이미 유령(에크리튀르)이 침입하고 있다. 데리다는 자신이 지금의 데리다가 되어 있는 그 우연성을 잊을 수 없는 것이다. 그 망각 이후 비로소 자신이 알제리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유대인이기 때문이라는 문文의 접속, 즉 문화의 '배치'에 대해 말할 수 있다.

_30일차 블라인드 페이지 본문 일부

할머니는 아무것도 믿는 게 없었던 것이다. 다만 회의주의(懷疑主義) 때문에 무신론자까지는 되지 않고 있을 뿐이었다. 어머니는 그런 문제에 참견하기를 삼갔다. 자기 나름대로의 신을 가지고 있었고, 남몰래 위로해 줄 것 말고는 신에게 바라는 게 별로 없는 여자였다. 줄어들기는 했어도 내 머릿속에서는 여전히 갈등이 계속되었다. 또 하나의 나, 말하자면 나의 음흉한 분신은 모든 신앙 조항에 거역했지만 그 태도는 우유부단한 것이었다. 나는 가톨릭인 동시에 프로테스탄트였고, 복종하는 정신과 비판하는 정신을 함께 지니고 있었다. 결국 그 모든 것이 성가시기 짝이 없었다. 나는 교리상의 갈등 때문이 아니라 조부모의 무관심 때문에 무신앙으로 끌려갔다. 그러면서도 나는 믿고 있었다.

_31일차 블라인드 페이지 본문 일부

어느 시간이 정말 시간인가?
時計가 가리키는 시간과 位置가 빚어내는 시간. 이 두개의 시간 사이에 가로놓여 있는 빈터. 그것이 얼마나 한 출혈을 강요하단. 우리는 이러한 빈터에서 놀 때 自由를 느낀다.
우리에게 두 개의 시간을 품게 한 이러한 빈터가 결국은 '나'를 두 개의 나로 쪼개버린 실마리였는지도 모른다.
공간 속을 시간이 흐르는 것인지, 시간의 흐름을 따라 공간이 분비되어 나오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지붕 위에 앉게 된 해를 보고 있노라면 時間은 空間에 갇혀 있는 것 같다. 이 관계 위에 現在의 秩序는 자리 잡은 것 같다.

(…) 그것이 깨어지는 날에는 내가 서 있는 이 세계가 깨어져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야합한 것이다. 두려워하는 내 마음을 누가 벌써 내통해주었던 것이다.
이러한 내통 위에, 달걀은 그저 쥐기만으로는 깨어지지 않는다, 라는 '말'이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까지 있는 모든 힘을 내어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못 내게 되어 있다. 공기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은 '말' 속에 살고 있다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처음에만 '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있는 것은 '말' 뿐이었다. 人間은 그 입에 지나지 않았다. 입의 侍從으로서의 勞動, 이것이 인간 行爲의 正體였다.

_32일차 블라인드 페이지 본문 일부


☞ 부동不同인 입이 화친和親이다.

☞☞ 하면, 입끼리 불화不和면 시종끼린 화친和親

☞☞☞ 하면 안 되나? 그럼 되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