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 왕조 프레임

사각공간 - 시간, 공간, 인간, 행간

by 사각공간

재벌 총수 1세대 부고에 스민 온정주의의 민낯



불성佛性에 남북南北 없고, 하하인下下人도 상상지上上知 낼 수 있다고 혜능 이른지 이미 오래건만. 그런 혜능이기에 6조 이었으리란 생각 자리해 이 내 견성見性 훼방하는 고로 유불성有佛性의 중생衆生으로 하나 되지[一切] 못하니 층위/위계/계급/계층의 담쌓고 구별짓는 이 다름 아닌 나. 정말이지 오롯한 내 탓이로소이다;;


같은 궤에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 올려두고 보니 이 또한, 인간種으로 일물一物이어서 상호 간 갈등/차별/혐오/배제야말로 본래무本來無여야 하건만 식識이 들어서선 낳으니 구별. 정말이지 말 그대로 식자우환識字憂患 아닐 수 없구먼 -_-;; 이처럼 차별의 바탕이래봐야 무근본無根本 인위적 구별이 전부이니 부끄러움 이는 게 당연지사. 한편 이 내면의 빈곤, 초라한 마음 가리려는 위선 동시에 들어서니 식識의 쌍생아랄지;;


이러한 때 식識은, 개신교 성경에 기록된 선악과善惡果 비유와 짝하는 듯.

1. 벌거벗은 제 모양새를 의식意識

2. 부끄러움 느끼는 동시에 가리고자 취하는 액션

에덴에서 축출된 인류란, 기실 이 구별 낳는 식識 그 perspective를 탐하는 데서 비롯한 자발적 탈脫-영토화 서사일지도. 욕망이 실권 장악 시뮬라시옹 거듭하니 시뮬라크르로서의 허상虛像이 압도하는 현실임은 두말해 무엇. 부정한 땅에서 육체에 수감된 채로 죽는 날까지 수고. 이 지옥地獄의 수인囚人으로 죄다 서글픈 인생 아닐 수 없네그려~~;


한편 이 압도된 현실, 직시보다 회피하며 가늠하니 각자도생. 하여 견성은 더더욱 요원. 따라서 '네게 불성이 있다니, 그럼 나는 불성을 포기하리라'*는 역설逆說을 여권 삼아 시詩의 영토로 망명할밖에. 불성설不成說임이 마땅한 말[語]들이 외려 성일설成一說 아니 유일설唯一說로 화化하여, 현실서 위세(소위 '힘의 논리'. 자연의 道이든 인간의 義이든 어느 편과도 짝하지 않고 저 혼자만 몸집을 키우는 데 힘을 다하는 돈에 '논리'를 이르는 자체가 어불성설이겠다) 부리는 형편이니 거기 설자리 없기 때문.




루스 렌들의 다른 소설 <손들의 나무> (…) 이 소설은 우리가 기괴하고 병적인 상황을 점차 친숙하게 받아들이도록 준비되는 방식을 보여준다. (…) 여기에도 역시 라캉의 심오한 교훈이 있다. 즉 어떤 대상이든 사물 the Thing의 빈자리를 점유할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대상이 언제나 이미 거기에 있었던 것이라는, 즉 우리가 그 대상을 거기에 위치시킨 것이 아니라 거기서 "실재의 응답"으로서 발견된 것이었다는 환영 illusion을 수단으로 해서만 빈자리를 점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 그것이 주는 매혹의 힘이 그 직접적인 속성에서가 아니라 구조 속에서 그것이 점유하는 장소에서 나온 것인 한 말이다.

이러한 구조적 필연성은 인간 대 인간의 관계들 속에서 '물신숭배적 전도'의 논리에 대한 고전적인 파스칼-맑스적 설명에 새로운 관점perspective으로 접근할 수 있게 해준다. 주체들은 어떤 한 개인이 이미 본질적으로 왕이기 때문에 그를 왕으로 대우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는 주체들이 이 사람을 왕으로 대우하는 한에서만 그가 왕인데도 말이다. (…) 핵심적인 점은 왕의 카리스마가 바로 사람인 왕의 직접적인 속성으로 경험되는 것이 수행적 효과가 발생하기 위한 명백하고도 필수적인 조건이라는 인식하는 순간 그 효과 자체가 없어진다. 다시 말해 우리가 물신숭배적 전도를 '빼버리고' 그 수행적 효과를 직접 목격하려 한다면 수행능력은 사라져버릴 것이다.

_슬라보예 지젝, 『삐딱하게 보기』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지만(심지어 그 자리 또한 사람 여럿이 만들어! 주는!! 것임에도) 한편에선 그에 어울리는! 왕후장상王侯將相의 씨[種子]!! 따로 있지 않겠는가 하는 믿음 또한 굳세니 이야말로 이율배반. 이 '기괴하고 병적인 상황'을 '친숙하게 받아들이'는 방식. 간절한 바람 끝에 온 우주가 도왔다는 식의 뻔한 시크릿. 빈자리, 비어있는 좌석을 점하는 어떤 대상에 대해 이미 그 자리에 적합하게 난[出生] 자者라는, 적자適者라는 식으로의 전도顚倒. 그러나 실상은 이런 따위의 '환영을 수단으로 해서만 빈자리를 점유할 수 있'는 것임에도. 기실 이런 환영을 "실재의 응답"으로 치환하는 건 다름 아닌, 앞서 언급한 대로의 (맹목적) 믿음. 매혹이 힘을 갖고 영향을 끼치는 바탕에 자리한 이 믿음.


이 믿음이 우리가 함께 이룬 구조/위계 안에서 위력 작동케 하는 것. 선출 권력이란 표현이야말로 이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게 아닌지. 선출選出로써 대의代議를 제도화 함에 따라 민주民主에서 비롯하는 권력權力을 조건부 이양移讓하는 것뿐. 이에 따르게 마련인 책임/의무를 저버리는 순간 위반/위약이니 탄핵/소환에 이르기까지 모두 당연하겠고. 문제는 과신을 넘은 맹신. 이 맹신이야말로 단지 '대상이 점유하는 장소'(자리, 위치)에서 비롯할 뿐인 힘에 굴종하고 이를 당연 시 하는 토대. 그야말로 '물신숭배적 전도'.


'주체들은 어떤 한 개인이 이미 본질적으로 왕이기 때문에 그를 왕으로 대우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는 주체들이 이 사람을 왕으로 대우하는 한에서만 그가 왕인데도'. 앉힌 건 다름 아닌 우리임에도 인물중심구도/왕조 프레임에 묶인 바 되는 건 한심하잖나?!


기업 또한 마찬가지. 창업/소유주 1인 내지 일가一家의 노력만으로 이룰 수 없는 바. 권리 누리는 데에는 수장이자 정점으로 앞장서면서 저지른 과오 앞에선 따르는 책임조차 면피/회피 일삼는 치들. 민民이, 민으로서 민의 뜻에 의하지 않고 반反하여 오히려 제 1인/일가/가신家臣 만을 위하는 식을 감히 경영이라 이르며 서슴없이 저지르는 데에 마땅히 제동/견제 있어야겠지. 장치 부재 상태에서 족벌/재벌 이룬 작자들로 인해 안은 피해를 고통분담 명목 아래 다수가 뒤집어썼건만 대마大馬랍시고 공적자금 운운하며 혈세 쏟아 불사不死의 신화를 제조하는 한편, 분담하자던 고통은 세금 낸 유리지갑마다 미래를 차압당한 채 독박으로 고스란히 짊어진 마당이니 방만한 경영 책임도 안 지고 혈세 기반으로 대대손손 떵떵거리는 한편에서 '허삼관'으로 전락한 다수는 '매혈'이라도 해야 할 판에 내몰리지 않았나.


적산敵産 불하 및 국외 원조 원천으로, 저임 노동력을 근간으로, SOC(사회간접자본) 이용하며, 수출 시장 개척 미명 아래 저가 공급에 따르는 부담을 내수에 전가하며 수익 보전, 이조차 개도국 자국의 산업보호정책 직잔접 세재 혜택 누려 장려/보조받고 더하여 관치금융 바탕으로 정경유착 무분별 차입(이 때문에 은행의 'BIS 지급준비율'을 더 따지게 된 것!)에 상호출자(때문에 '출자총액제한'하는 것!!)로 코딱지만큼의 보유분으로 전 계열사 지배하는 형태로 몸집 불려 이룬 것이 다름 아닌 이 나라의 재벌. 원화가 기축 통화여도 불가능에 가까운, 생산성 담보되지 않는 무분별 차입 한계야 명약관화. 그럼에도 분식회계 꾸밈 노동으로 공시자료 왜곡 앞장서선 주주까지 피해 입혀(IMF 구제금융 신청은 무모한 차입의 원천으로 기능했던 외채를 비로소 실감하게 된 사건. 일제 강점기에도 친일로 득세하던 무리의 기생 역사는 이날까지 이어진 바이니, 자본시장 개방부터 기업/금융 업계의 구조조정조차 자력보다 외세에 의해 이뤄지게끔 만든 세력의 근본 아니던가?! 당초 친일 청산 우선하고 확실히 했으면 계속해서 침탈 당하다시피 하는 경험 더는 하지 않았을 것). 방만 경영 일삼던 창업/소유주야말로 책임의 일선!이건만 '보이지 않는 손' 뒤로 후퇴 거듭하며 경영 세습 골몰하는 한편에서 전-두환민국 '평화의 댐' 조성 때처럼 금 모아 내놓는 민民의 순진함을 비웃듯 구조조정/외주화(다운사이징/아웃소싱)로 벼랑으로 내몰았으니 다수 국민의 실질가처분소득 하염없이 줄어, 혈세 바탕으로 공공 서비스 제공하는 영역까지 민영화 휩쓸고(물론 이 영역 또한 방만은 바로잡아야 마땅하지만 그 부담을 누가 지는지 살피면 계속해서 乙대乙 구도를 형성하는 형태 곧 책상물림 윗선 조직이 쥐어서 챙기는 몫은 비대하여지는 데 반해 일반 직원 수 줄이니 단위 시간당 노동강도 강해지는 편에서 공공서비스 질의 하락이야 두말할 것 없겠고. 공공영역이 이러하니 하물며 민간기업 비정규 체제 확장 굳히기엔 더할 나위 없었지) 간 대한민국. 더듬어 살피지 않아도 어렵지 않게 마주하게 되는 기억. 과거로 국한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오늘 아니 미래까지 영향 미친 바이니 정작 책임져야 마땅한 이들에게 찬양 조 일색이라니!! 어디 성군聖君이라도 붕어崩御하시었나??

이 판국에 '자본 왕조 프레임', 기도 안 차 혀만 차게 됨.


부정에 가담하는 협잡 통해 트리클-다운 기대하는 것 아니라면 이러면 안 되는 것 아닌지. 브랜드니 뭐니 호들갑 떠는데 기업의 사명社名 등의 명칭에 깃드는 전통과 상징성은 당초 창업/소유주 일개의 노력만으로 일궈진 게 아님. (임)직원의 피땀은 물론 찾는 소비자의 관심과 사랑이 어우러지는 속에서 가꾸어지는 것. 이를 제 몫으로만 여기는 자체가 주접. 이것이야말로 전근대적 가부장제의 잔재 아닌가? 이의 청산은커녕 부富를 쫓아 발밑에 엎드리길 주저 않는 이상 독립獨立이 가당키나 할지. (자본) 왕조 프레임부터 청산하고 이제 그만 독립하십시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