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각공간 - 시간, 공간, 인간, 행간
동네서점 아저氏의 소확행 '_'
우리는 때때로 소름 끼치게 이기적이며 오직 자신의 이득만을 고려합니다. 그런가하면 숭고한 전율을 느끼고 고귀한 행동에의 소명을 인식하는 법열의 순간도 있지요. 성별과 계급을 막론하고 누구나 그런 것처럼 보이며, 각각의 결과는 그저 비율 문제인 듯합니다.
역사의 대하드라마를 내려다보는 나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명백한 혼돈과 비극 속에서도 법과 질서의 존재를, 재앙에 굴하지 않는 인간 정신의 거대한 성취를 발견하곤(적어도 그렇게 느끼곤) 합니다. 확실한 것은 세계가 단순히 인간들이 진창 속에서 서로를 짓밟다 죽어 버리는 늪지대는 아니라는 점입니다. 잔혹함과 비극 한가운데서 감동적인 사건들이 일어나며, 이 같은 인류의 흥미로운 유산 중에 가장 고상하고 훌륭한 것들을 널리 퍼뜨리는 일이야말로 지성인에게는 최대의 과제라고 하겠습니다. 설사 우주의 시초에 큰 그림 같은 것은 없었다 해도, 인류는 뚜렷이 존재하는 진리의 파편으로 그 그림을 완성할 수 있습니다. 선한 삶에 대한 인식은 인간에게 분명히 존재하는 철학적 유산이며, 우리는 기술을 통해 자연을 극복하고 전 세계 대중에게 선한 삶의 여건을 제공할 능력을 얻었습니다. 내게는 그 점이 역사라는 드라마의 가장 매력적인 가능성으로 보입니다. 그 가능성에 대한 신뢰야말로 가장 끔찍한 환멸의 순간에도 나를 계속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입니다. 선한 삶, 그 자체로 사랑받고 즐거운 삶이 승리하게 하는 과업과 직결되는 지적 노동 말입니다. 이런 소소한 철학과 생각의 순환 속에서 나는 내 작은 물레방아를 계속 돌리고 있습니다. (찰스 비어드 Charles Austin Beard)
_윌 듀런트, 『내가 왜 계속 살아야 합니까』
책을 읽다보면 자주 실감하는 바 정말이지 '하늘 아래 새것 없'구나. 神이라 이르든 진리라 여기든, 저마다 그의 파편/조각을 지니고 있으니 이를 맞추려 드는 사람의 노력 가운데서 신의 형상은(역시 진리의 상이든) 복원 되는 게 아닌가 하는 마음에서 그리 되리라는 믿음에 이르기까지, 하나 새로운 게 없음을 다시금 확인하게 되니 안심에서 비롯하는 감사가 절로 솟구친다. 이런 상태를 평안이라 이르는 게 아닐지. 아무튼 앞서와 같은 생각을 처음 떠올렸을 때를 생각하면.. 어리기도 했지만 골몰하는 동안 '문득'이라는 이름표를 달아두며 그에 사로잡히어 약간의 뭐랄까 자고自高와도 같은 마음 없지 않았으니, 나이는 둘째 치고 정신 연령 부족을 다시금 확인하는 데서 이는 부끄러움에 몸서리 치게 된다. 이런 게 진정 이불킥 감인 듯 ^^;; 마음 밭에 뿌려진 씨알이 싹을 틔우는 동시에 뿌리 내리며 자라는 과정과 그에서 피어난 생각을 선대의 그것에 대하여 보면서 마치 굴광성屈光性마냥 그러니까 굴'선善'성이랄지 그에 미치는 바는 못 되어도 비슷한 형세로 길 벗어나진 않았구나 하는 안도감은 동일한 방향으로 계속 걸음 내려는 데에는 적잖은 위로와 함께 힘이 된다. 이 자체를 뒷받침 내지 여건으로 읽어들이는 형편인 나로서는 내 깜냥의 '철학/생각의 순환'일지언정 계속해서 '내 작은 물레방아를 계속 돌'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보다 더,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 어디 있단 말인가'라면서 혼자서 感이 動하여선 말이지요 ㅎㅎㅎ
어렸을 때 난 방황을 조금 했지.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고 가치 있어 보이는 것이 나 자신인지 세상인지 알지 못했어. 하지만, 지금은 그게 나 자신이라는 것을 알았네. 그리고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어.
_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물레방앗간의 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