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각공간 - 시간, 공간, 인간, 행간
그럼 How-To, 대체 어떻게 해야 욕망의 시종으로 복무하길 그칠 수 있나.
어찌하면, 투표로 참정參政이 제한된 노예 신분을 벗을까.
소비/공급 일면 만을 때에 따라 취하며 하루에도 몇 번씩 윤회하는 이 자기 소외의 굴레,
이 고리에 메울 수 없는 구멍으로 거듭나는 Know-How는 무엇일까.
이탈한 유령으로 배회하는 건 정말이지 지겹다.
이제 그만 나의 유체에 시침질을, 난 그저 사람이고 싶을 뿐인데;;
철학을 한다는 것은, 현재의 예술은 물론 과거의 예술과도 공명하고 간섭하면서 개념들을 제작하는 일 철학은 "생각되지 않은 것"이라는 이 기묘한 지대로 텀벙 빠져드는 예술이며, 그 지대는 클리셰와 기성 관념들을 불안정하게 한다.
_『들뢰즈 커넥션』 中
그러니까 요는 달음질. 영혼 없는~ 상태를 조장하고 그 같은 분리를 촉구하는 제도권 관념의 그물에서 벗어나란 말씀인가. 사로잡히는가 싶으면 미끄덩~ 빠져나가는. 그렇군, 확실히 '자유롭다'는 표현은 이 과정에 끊김이 없는, 곧 지속 가능한 상태를 가리킬 때에만 참다운 것일지도. 달걀 세웠다던 콜럼버스의 일화를 창업/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에 빗대곤 하는데, 이에 인용부를 겹치어 살피니 자기개발 범주를 넘은, 과정이자 방편으로 조금 더 분명하고 선명한 형태로 다가오니 납득할 수 있다. 이를테면 미지未知의 영토를 제 앎의 영역으로 들이는 개척 과정으로(물론 이는 '신대륙 발견'과 같은 폭력을 앞세운 정복과는 무관). 왜냐하면 '알'을 세우자면 우선 껍데기 밑둥을 부숴야 하는 파격破格을, 다음으로 노른자 기성旣成 그러니까 중핵의 기득권을 흘려버려야만 하니까.
천천히 축구공이 하늘로 떠올랐다.
그때 사람들은 꽉 찬 관중석을 보았다.
고독하게 시인은 골대 앞에 서 있었고,
심판은 호각을 불었다.
오프사이드.
_귄터 그라스,詩 「밤의 경기장 」, 2002 한·일 월드컵 개막식에서의 낭송
layer.1에 겹쳐 살피니, 시인이야말로 예술의 전위(avant-garde). off-side를 지속하는 이네들이 나의 모범. 정처定處를 얻지 못한 그야말로 난처難處인 채로 부유할 뿐이었으니(어디 나만 이럴까, 도처到處에 '내'가 있다). 직접 정주할 공간을 찾아 구축하면 그만임을 보여준 바이니.
애벌레는 잠재적으로 나비. 애벌레 안에는 장차 나비가 되었을 때의 세포 하나 하나의 무늬, 색깔, 냄새까지 다 들어 있다. 애벌레는 나비로 데포르마시옹(Deformation)하기 위해 존재한다..애벌레의 내부 어딘가에는 날고자 하는 욕망이..시는 그 욕망을 영감으로 삼는다.
_김혜순,시집 『달력 공장 공장장님 보세요』, 표4
그러니까 '이렇게 닫힌 몸 속에.. 변용을 가능케 하는 어떤 공장이 있다'는 말씀. '보이진 않지만.. 현실을 꿈으로.. 아버지의 공장들을 무화시키..는 공장이' 있단다 이 내 안에. 그렇군. 당연한 얘기겠지만 시인도 사람 나도 사람 same same이니. 그래, 그러니까Design, 아니 DeSign 아, De(formation)-Sign이란 얘기. 기명記名된 이 formation을 De-form하는 것. 나비의 잠재태인 애벌레의 포텐셜을 발화시키는 데에 집중. 가부장이든 꼰대이든 그늘조차 내면화한 지금, '비밀한 출구'를 두드리자. 그럼 열린다니. 어차피 마주하는 현실은 늘 견고하다. 어쩔 수 없지. 다만 그래도 어찌할 수 있는 바를 계속 해야지. 의미 주무르길 지속하는 것.
과연 이것이야말로 노-하우. '이상'이 그랬지 '발명보다 발견'이라고.
보고도 모르는 것을 폭로爆露하라! 그것은 발명發明보다 발견發見! 거기에도 노력努力은 필요하다_이상李箱
인류가 남긴(현재진행형임은 물론이다) 위대한 유산, 이 DB에 끊임없이 접속하는 이유. 책을 가까이 하지 않을 수가 없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