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오지심, [in]visible, [人]visible

사각공간 - 시간, 공간, 인간, 행간

by 사각공간

'수오지심羞惡之心',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니고 있을 본성의 씨알 네 가지(사단四端, 『맹자孟子』) 가운데 하나. 남보다 자신을 앞세우는 자기중심적 사고와 이에서 이는 갖가지 욕망을 스스로도 부끄러이 여기며 미워함으로써 이에서 멀어지고자 애를 쓰는 형편에서야 사람은 겨우 사람다울 수 있다는 말이겠지. 이에 비추어 보면 인간이란 표현 또한 人/間으로 구분, 예의 그 사람다움[人]에 이르는 여정 사이[間]의 존재로 여겨도 무방하지 싶고. 그렇다면 저 아닌 바깥 타자로 향하는 미움, 다른 이를 미워하는 데에 거리낌이 없는 상태야말로 다름 아닌 교만일지 모르겠다. 왜냐하면 사람다움이란, 제 안쪽의 사정을 먼저 살펴 부끄러움을 제 몫으로 여기는 데에서 비롯하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아닌 이의 흠결에만 눈이 밝아 미움을 앞세우는 형편, 이에 멎지 않고 제 과오를 변명하며 부끄러움조차 들키지 않으려 감추는 데에만 힘을 쏟으니 그야말로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자기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개신교 성경 『마태복음』 7장 3절)는 형국. 정말이지 이 눈[目] 가운데 자리한 들보란 얼마나 큰 것이냐. 보통 사이즈를 넘는 大들보가 지탱하는 시선이라니. 편견, 멋대로의 아집으로 지은 집 속에 거하는 줄 모르고 함부로 재단한 끝에 미워하는 마음을 내었으니 어리석다 할밖에. 깨달음은, 이 모습의 그릇됨을 직시하고 돌이킴일진대 보고 느낀 바를 행行으로 옮기지 못하였으니 실상은 무지요, 몰지각. 사람다운 사람에 이르지 못한 형편임을 자인함이니 부끄럽기 그지없는 일. 더하여 이에 머무른 상태를 개의치 않는, 관성에 안주하려 하였으니 문제. 더 큰 문제는 이것이 나의 영역으로 국한되지 않고 넘어선 타他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겠지.


성찰에 끊임이 없을 때에나 겨우 사람다운 사람의 모습으로 순간을 채워갈 수 있음인데. 제 잘못에는 한없이 너그러운 나머지 부끄러운[羞] 면이라면 서둘러 감추고 이에 무뎌지는 뻔뻔함. 반면 나 아닌 다른 이의 흠결에는 조금도 물러섬 없는 편벽.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내고 있음 아닌가. 이쯤 되면 '인간 실격'보다 '인간 폐업'을 고민해보아야 하지 않을지;;


인생이라는 타임라인, 이를 구성하는 매 순간 곧 연속된 프레임/찰나를 점占하는 면면面面을 택할 수 있는 존재로서의 인간. 어찌할 수 없을 것 같은 속에서 어찌할 바를 선택할 수 있는 존재에 있어서 처지處地란, 지地의 조건에 좌우된다기보다 처處하려는 의지에 달려 있지 않나. 전자가 매인 바여서 종속이자 예속이라면 후자야말로 주체로 우뚝 선 채로 비로소 살아있다, 살아간다 할 수 있을 것. 그렇다면 과연 나라는 인간은 이제까지 어떤 모습을 취하며, 어떤 면면을 택하며 매 순간을 채워왔던가. 나라는 일엽편주는 어떠한 궤적을 그리며 오늘에 이르렀는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주체를 열망한다면서도 자본 '광장'에서의 밥벌이, 그 힘겨움을 호소하는 한편 화폐 뒤로 숨는 자발적 소외를 당연 시 하는 편리에 숱하게 기대지 않았는지. 자기 성찰조차 잇속으로 셈하고 손익을 타산하는 속에서 나는 참 옹졸한 나만의 '밀실'을 꾸리지나 않았는지.


어쩌면 갑을甲乙을 위시한 계급/계층 등 위계는, 이 밀실이 고스란히 반영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로 인하여 더욱 공고하게 자리 잡은 서열이라니 비할 데 없는 협잡, 이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이니 또한 부끄럽다. 이 모습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서서 '돌아가다 생각하니.. 가엾'게 여기며 반복 일삼으니 남루한 '자화상'*이 아닐 수 없다. 주체의 일면을 고수/일관하지 못하는 '사나이'의 모습이 '추억'으로 윤회를 거듭하니, 누비陋鄙한 삶을 삶이라 여기며 꾸리는 짓이라면 이제 그만.


惡를 앞세운 편벽으로 자기 바깥 타자를 가늠하는 동시에 나의 부끄러운[羞] 면면을 감추는 관대함으로 自/他를 구별 지으며 자신을 지키려 드는 일의 무익함과 부질없음을 이제 그만 인정하자. 밖을 향하는 惡와 안으로 감추려는 羞를 뒤집어 惡를 안으로 들이고 밖으로 드러나는 나의 부끄러운[羞] 면면을 감추려 들지 않기. 부끄러운[羞] 면면을, 드러남을 제대로 살피면서 惡의 잣대를 가까이 두어 해당하는 면면에서 멀어지고자 애를 쓰자.


[in]visble, 감출 수도 있고 드러낼 수도 있다. 소외 또한 편리에 따라 자발적으로 택하는 지경에 이른 바 [人]visible, 사람다운 사람을 지향하는 면면을 일관되게 고수할 것인지 이를 off 하고 흐름에 편승할지도 나의 선택지.


*윤동주,詩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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