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진짜 인간일 수 있는 이유
올 한 해 독서 인플루언서들이 가장 많이 추천한 도서, 『경험의 멸종』. 드디어 읽었다. 살 때는 당장이라도 읽을 것처럼 설레며 집으로 들이지만, 매번 이미 더 이상 꽂을 자리도 없는 책장에 힘겹게 올려두는 걸로 끝이다. 책장 앞을 오갈 때마다 얼른 읽어야 할 텐데 하는 애절한 눈길을 보내지만 특별한 계기가 없으면 곧 독서목록에서 제외되고 만다. 그러던 중 이 책이 내가 속한 새벽 기상 모임, ‘삼삼아씨’에서 매월 목요일 오후 8시에 줌으로 만나는 <목요북클럽>의 11월에 함께 읽을 책으로 선정되었다.
목차 상 총 7장으로 이루어진 362페이지 분량의 도서를 매주 한 장(章)씩 회원들과 함께 읽었다. 매주 해당 분량을 완독하고 참석하지는 못했지만 될 수 있으면 다 읽고 참여하려고 애썼다. 다 읽으며 순간순간 드는 질문에 스스로 답을 찾으며 나의 경험과 엮어 풀어내야 그나마 독서 부분을 이야기할 거리가 생기기 때문이다. 어느 건강보조제 광고처럼, 책을 읽은 날과 안 읽은 날의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이런 차원에서 독서도 본문에서 말하는 ‘경험’에 해당하는 게 아닐까?
이 책은 주장하는 성격의 글이니, 제대로 분량의 책을 읽지 않고 독서 모임에 참여하면, 저자의 설득 논리와 근거로 삼은 사례들을 살펴보고 이해하기에 급급하다. 진짜 중요한 건 내 '경험'인데 말이다.
저자는 전통적인 교감 방식에 대해 온라인 만남과 대면 만남, 두 그룹으로 나뉜 연인의 교감하는 방식에 따른 '대화의 질'의 차이, 즉 매끄러운 사회적 교류를 비교했다. 이와 관련한 16세기 수필가 미셸드 몽테뉴의 말을 소개한다. "연인들은 싸우고, 다시 화해하고, 부탁하고, 감사하고, 비밀스러운 만남의 자리를 마련하고, 모든 이야기를 한다. 눈으로 말이다." 눈뿐만이 아니다. 손, 머리, 어'Æ, 심지어 눈썹까지 이야기를 전한다. "움직임 하나하나가 빠짐없이 의미 있는 언어, 배울 필요가 없고 우리 모두에게 공통된 언어를 사용해 이야기를 전한다."(p.62)라고.
그렇다. 흔히들 아주 가깝고 친밀한 관계를 일컬어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이"라는 말을 하지 않나. 눈은 대상을 바라봄으로써 우선 외형을 판단할 수 있고, 시선을 교차하며 서로에게 진지하게 집중하고 있는지를 알아차릴 수 있다. 심지어 이 '눈 맞춤'이 인간의 사회성 발달 정도를 측정하는 대표적 요소다.
3장의 주제는 '손으로 써야만 배울 수 있는 것'이다. 인공지능(AI) 시대에 손글씨라니, 시대에 뒤떨어진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다른 건 몰라도 손으로 끄적이는 걸 좋아하는 내게는 참 반가운 주제였다. 여중 시절 같은 반 모범생 친구가 글씨를 너무 동글동글 예쁘게 잘 써서 그 친구 글씨체를 흉내 내며 쓰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나도 좀 더 둥글둥글 잘 쓰려고 좋은 필기구에도 관심을 두게 되었다.
시대가 바뀌어 이제는 디지털 매체로 입력하는 행위로 거의 모든 업무 처리를 하는 방식이 대세다. 그럼에도 나는 아직도 손으로 노트에 글씨를 쓰면서 생각도 정리하고 평소 독서 후 서평 쓰기를 할 때도 초안은 늘 노트에 연필로 메모해야 생각이 정리되고 술술 써진다. 이 책에도 비슷한 맥락의 구절이 쓰여 있어서 공감되었다.
p.98 명확한 손 글씨는 의사소통만 돕는 것이 아니라 인지적 혜택도 준다. 인디애나대학교 블루밍턴의 신경과학자 카린 제임스는 글을 모르는 소그룹의 5세 아동을 대상으로 학습 스타일을 비교하는 연구를 진행했다. 실험 대상자들에게 타자, 덧쓰기, 손 글씨로 글자와 도형을 가르친 연구진은 훈련 전후에 MRI 스캔을 했다. 그 결과, 뇌의 "읽기 회로가 글자 인식에 동원된 것은 손 글씨를 이용했을 때뿐"이었다.
제임스는 "발달 초기인 아이의 경우 손 글씨가 읽기의 기초가 되는 뇌 영역의 문자 처리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라고 결론짓고 "손 글씨는 아이의 읽기 능력 습득을 촉진한다."라고 덧붙였다. 글자를 덧쓰거나 타자하는 것과는 달리 손 글씨는 읽기 학습을 위해 뇌를 준비시키는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학창 시절 친구들과 손 편지를 수시로 주고받았다. 말로 하기엔 쑥스럽거나 오해를 풀고 싶을 때 편지를 주고받으며 마음을 나누었다. 코로나 대유행 시기에 사춘기를 맞은 아들에게도 진심을 전하려고 스프링 노트에 일 년 정도 일기처럼 편지를 써서 한 권을 다 채운 후 건넸었다. 아이에게 중간에 들키긴 했지만 내심 엄마가 계속 잘 쓰고 있는지 궁금해하더니, 다 쓴 노트 한 권 건넸더니 나름 좋아하는 반응을 보였다. 그 이후에는 규칙적인 손글씨를 잊고 있었는데, 이제 배우자에게도 한 번 노트 한 권 채워보려 한다. 키보드로 입력하는 대신 지우면 흔적이 남는 노트에 깔끔하게 쓰려면 아무래도 생각을 정리하며 써야 하니, 생각 정리 습관 형성을 위해서라도 규칙적 손글씨 행위를 실천해 봐야겠다.
신체적 불편을 극도로 회피하다 보니 더 밀도 있는 사고력이 쇠퇴하는 듯하다. 나도 살이 찔수록 자꾸 산만해지고 집중력이 흐트러지곤 한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매일 도서관에 가서 최소 집중 시간'을 확보 해야겠다.
이번 4장에서는 저자가 기다림과 지루함도 인생에서 '나를 알기 위한 시간'으로 삼으면 좋겠다는 조언을 건넨다. 기다림의 예로, 디즈니월드의 놀이기구를 타기 위한 긴 줄을 들었다. 이 기다림을 줄이기 위해 '패스트 패스 시스템'이 도입되었다고 한다. 기다림이 지루한 사람들은 기꺼이 비용을 더 내고서라도 패스트 패스를 사용하여 지루함의 경험을 잃는 것을 택한다는 것.
이 부분을 읽으며, 나는 몇 년 전 에버랜드의 '아마존' 놀이기구를 타기 위해 기다려야 하는 고객들을 위해 '소울리스좌'라 불리는 젊은 여직원의 해당 놀이기구 탑승 시 고려할 사항에 관해 속사포 랩으로 설명하는 유튜브 영상이 조회수가 폭발한 사례가 떠올랐다. 오랜만에 다시 영상을 찾아보니 당시나 지금이나 숨도 안 쉬고 내뱉는 말을 들으며, 그녀의 대단한 재능에 새삼 놀랐다.
과거 디지털 기기가 없던 시절 기다림은 지루하지만, 즐거운 순간을 위해 기대를 했던 경험이 될 수 있지만, 현대에 있어서는 '유휴시간'으로 인식되는 듯하고 이야기하고 있다. 인상적인 구절이 몇 군데 있어서 공유한다.
p.134 설명되지 않은 기다림은 설명된 기다림보다 길게 느껴지고 불확실한 기다림은 확실한 기다림보다 길게 느껴진다. => 예) 병원에서 검사 결과를 듣기 위한 10분이 식료품점에서 기다린 10분보다 더 길게 느껴지는 것.
p.169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서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세상과 사람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파악하려면 시간, 인내, 지루함, 백일몽, 발견에 대한 기대가 필요하다. 이것들이 없다면 우리는 그저 시간을 죽이고 있는 것이다.
하루는 누구에게나 24시간이 주어진다. 시간대별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실행하는 사람들은 성과 달성의 뿌듯함에 대한 기대로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지만, 나는 스스로 즐기는 글쓰기 시간조차 인내하지 못한다. 미완의 지루함을 못 견뎌하며 시간을 죽이고 있는 게 아닌가 반성하게 되었다.
5장에서는, '디지털 기술에 종속된 감정'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밈'과 '이모티콘'이 모두 감정을 표현하는 일종의 구두점이라고 한다. '공감'에 관한 설명도 흥미롭다. "공감은 상상력과 의지가 필요한 행위다.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려고 노력해야 한다. 공감은 물리적 신체를 통해 다른 사람의 움직임과 표정을 관찰해야 가능하다."(p.187)라고 하여, 진정한 공감을 위한 태도를 설명한다.
"코넬대학교의 제프 행콕 교수는 '특정 행동을 연습하는 것이 실생활로 이어진다는 사회 학습 이론 적용 여부'를 실험했는데, 그는 피험자들을 둘로 나누어 자신이 외향적인 것처럼 글을 쓰되 한 집단은 외부에 공개되지 않을 워드 문서를, 다른 집단은 외부에 공개되는 블로그를 사용하도록 했다. 블로그를 사용한 쪽이 더 외향적이다."(p.189)라고 했다.
역시 SNS 활성화에는 블로그가 답인 건가? 하는 뜬금없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남들 블로그에 흔하게 달리는 광고(애드포스트)조차 나는 매일 콘텐츠를 올리지 못하다 보니, 여러 번 도전했음에도 끝내 심사 탈락 통보를 받았다. 꾸준함이 심사 기준의 전제조건인 듯하다.
우리가 흔히 '폭력적 게임을 보면 폭력적 행동을 저지른다'라는 편견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지만, 실제로 '공감 능력 저하'는 나타난다고 한다. 폭력적 영상의 반복적 시청은 되도록 자제해야 하는 이유다.
214쪽의 “많은 신기술과 소프트웨어 플랫폼이 감정보다 감각을, 참을성 있는 숙고보다 즉각적인 반응을 우선한다. 정확히 이런 것이 필요할 때가 있다. 심한 폭풍 상황을 실시간으로 블로그에 게시하거나 잔인한 집단 괴롭힘을 재빨리 온라인에 올리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때라면 기술의 사용이 감정을 증강하기보다는 대체하는 것처럼, 관계를 맺고 공감을 표현하기보다는 확인과 편리함을 찾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모든 것에 "좋아요"로 반응하지만 그 무엇과도 감정적으로 연결되지 않는 세상에 사는 것은 어색한 악수가 따뜻한 포옹을 대체하는 세상에 사는 것이다.”라는 구절이 이번 5장의 결론에 해당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위 구절 중, "어색한 악수가 따뜻한 포옹을 대체하는 세상에 사는 것"이라는 문학적 표현이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어서 생각해 볼 문장이어서 좋았다.
이번 6장, ‘기술로 매개된 쾌락’은 중간중간 공감하기 힘든 부분이 있었다. 개인의 고유한 사유 영역이니 굳이 옳고 그름을 가릴 필요는 없다. 다만, 저자는 기술 발전으로 아날로그적 감성과 경험이 소모적으로 여겨지는 상황에 거부감이 심한 걸로 느꼈다. 그럼에도 몇몇 구절은 인상적이기도 해서 소개하겠다.
“새로운 장소를 이해하려면 그곳의 냄새를 맡아야 한다. 여행의 큰 즐거움 중 하나는 낯선 땅의 기묘한 냄새와 새로운 소리를 경험하는 것이다. 낯선 도시의 수돗물에서 나는 톡 쏘는 냄새, 이상하게 들리는 전화벨 소리, 음정이 맞지 않는 듯한 불규칙한 경찰 사이렌, 혀에 느껴지는 유난히 진한 커피의 질감, 사소한 감각적 경험조차도 장기 기억을 만들어낸다.”(p.227)
그렇다. 부산에서 10년을 살았음에도 부산역에 내리면 특유의 비릿한 냄새가 올라온다. 어쩌면 자갈치수산시장이 그리 멀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고, 역이 부산항 근처에 있어서 그런 것 같다. 개인적 경험의 영역이니 혹시 부산 출신이시거나 해안 도시를 고향으로 둔 분들은 오해 없으셨으면 좋겠다.
“관광객은 예측 가능성과 편리함을 원한다. 여행자는 불안이 음악의 꾸밈음처럼 여행의 작지만 중요한 부분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일상에서 벗어나는 것이 바로 여행의 액심이라는 것을 이해한다. 소설가이자 여행 작가인 폴 서로는 <<여행자의 책>>에서 "최고의 여행에는 단절이 필수다. 사람들이 당신이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해야 찾을 수 있는지 모르는 것은 행운이다"라고 말했다.”(p.229)라는 부분도 인상적인 구절이다.
'폴 서로'의 말에 공감이 된다는 게 아니라, 저자가 '관광객'과 '여행자'를 대비시켜 설명한 방식에 공감한다는 것. 아무래도 관광객은 유명 관광지로 구성된 '필수 여행코스'를 돌며 사진 찍고, SNS에 수시로 올리는 행동을, 오감을 사용하여 풍광과 분위기를 누리는 여행자의 정서와 대비되는 쾌락적으로 파악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 장인 7장, ‘소멸화된 장소, 개인화된 장소’는 제가 경험하고 있는 온, 오프라인 커뮤니티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해서 공감이 많이 되었다. 저자는 경험이라 부를 수 있는 직접적인 행동양식이나 정서가 사라져 감을 아쉬워한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었다.
“장소 place들이 공간 space으로 대체되고 있다. 그 둘 사이에는 무시할 수 없는 차이가 있다. 지리학자 이-푸 투안이 지적했듯이 "공간은 정의와 의미를 얻을 때 장소로 변한다." 공간은 "경계가 생기고 인적 요소가 가미"될 때 장소가 된다. 사이버 공간은 있지만 사이버 장소는 없고, 페이스북 이전 시대의 지배적인 소셜 네트워크가 마이플레이스가 아닌 마이스페이스였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작가 제임스 조이스는 1939년 작품인 <<피네간의 경야>>에서 "아이스페이스 ispace"라는 단어를 만들어냈다. 아이스페이스는 공간이 시간에 의해 방해받을 수 있음을 표현하는 (표의적이고 예지적인) 단어인 동시에 장소에는 한계가 있지만 공간에는 제한이 없음을 인정하는 말이기도 했다.”(pp.278-279)라는 구절이 인상적이다.
장소와 공간의 우열을 가릴 수는 없겠지만, 아무래도 장소가 더 넓은 의미라고 생각되는데, 위 본문 내용은 공간이 더 광범위한 개념으로 사용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다. 공간은 발화자가 의미를 부여할 때 장소가 된다는 것으로 이해했다.
“온라인 커뮤니티가 매력적인 것은 당연하다. 온라인 커뮤니티는 조금만 헌신해도 소속감을 제공하며, 참여자들은 언제든 빠져나오거나 사라질 수 있다(실제 커뮤니티의 경우 항상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온라인 커뮤니티는 전통적인 커뮤니티를 대체하지도 전통적인 커뮤니티보다 낫지도 않다.”(pp. 300-301)라는 구절이 특히 공감되었다.
나도 이 수도권 오지에 살고 있다 보니 온라인 모임이나 만남이 물리적으로는 훨씬 편하다. 그럼에도 오프라인 만남에서 서로의 온기와 열정을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건 독보적인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내 경우에도 아직은 e북이나 오디오북보다 종이책을 좋아할 만큼 아날로그 문화를 선호한다.
길을 가면서도 고개를 들지 않고 스마트폰을 보며 걷는 사람들을 일컬어 '스몸비(Smombie)족'이라고 한다. 나도 종종 그럴 때가 있어서 많이 찔린다. 꼭 유쾌한 경험만이 우리를 성장시키는 건 아니다. 끔찍한 경험이 아니라면, 다소 힘들거나 곤란했던 경험도 상황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대응력을 높여줄 수 있다. 이러한 디지털과 AI에 익숙해져야 하는 시대이지만, 인간 사이의 진정한 교류와 소통을 위해 적절한 '경험'을 더하면 참 좋겠다.
*배경사진 출처 : '픽사베이' 무료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