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도 울고 갈 슈퍼우먼을 꿈꾸는 엄마 작가 이야기
좋은 제목을 뽑는 안목을 가진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럼에도 나의 첫 책 출간을 꿈꾸며 멘토님과 출간기획논의 때 잡았던 '가제'와도 비슷해서 놀랐다. 그것도 이미 2018년 출간 이후 2022년에 이미 5쇄를 기록한 나름 인기 도서였던 책의 존재조차 몰랐다니. 어디 가서 '다독자'라는 허풍은 그만 떨어야겠다.
'현재진행형, 엄마의 자리를 묻다'라는 부제에서 모든 걸 말해주고 있는 이 책은, 모든 걸 완벽하게 해내고 싶은 커리어 우먼인 정아은 작가의 아내, 엄마로서의 역할에 대한 회의와 자책을 모든 페이지에 잘 녹여낸 인문분야 도서다. 사실 나는 '서평에세이'라고 분류하고 싶었지만, 내가 출판업계 종사자도 아니고, 세부 분류는 '독서/글쓰기'란다. 출판사 서평에는 '정아은 작가의 첫 에세이다'라고 하였으니, 그럼 내 마음속에는 '서평에세이'라고 분류하련다.
가끔 만나기도 하지만 추천사가 맨 마지막장에 나와 있다는 점이 특이했고, '《엄마의 독서》와 함께한 책들'이라는 이름으로 부록처럼 소개돼 있어 유용했다.
판권 페이지를 제외한 277쪽 분량의 이 책은 총 9장으로 나뉜 목차에서 작가의 성장 이야기를 들려준다. 결혼 전 사회생활부터 결혼, 육아과정을 거쳐 친정엄마의 딸이기도 한 엄마로 마무리된다.
책날개의 화려한 이력만 봐도 같은 엄마인 나를 주눅 들게 했다. 심지어 같은 제목으로 책을 출간할 뻔했던 엄마로서 작가의 필력에 절로 기운이 빠졌다. 그때부터였을까. 그간 어떻게든 새벽까지 힘을 쏟아 써 내려가던 초고를 한 줄조차 쓰기가 힘들었다. 저자는 책 속에서 불완전한 엄마라며 끊임없이 자책하고 있었다. 번역일을 열심히 하는 커리어 우먼이기도 한 유능한 엄마로 보였다.
아이가 한 명이어서 취학 전부터 일을 시작하고 싶었지만, 아이가 영유아 검진할 때부터 평균 개월 수에 비해 발달속도가 조금씩 느렸다. 신체적 발달은 물론 언어지연도 있었다. 결국 만 4세가 지날 무렵 각각 다른 병원에서 '경도 자폐'진단부터 '감각통합장애'라는 진단까지 받았다. 아이의 증상을 알기 전부터 결혼 이후 예상치 못한 배우자나 시월드 변수로 아내와 며느리 자리만으로도 몹시 힘들었던 나는, 아이에게 '자폐'라는 청천벽력 같은 진단을 내렸던 병원에서 '심각한 우울 상태여서 당장 약을 먹어야 한다'는 진지한 조언을 들었다. 하지만 약을 먹는 순간 아무리 무해한 약물이라고 해도 먹다 보면 내성이 생길 것을 알았다.
결혼 후 알게 된 지인도 조울증으로 장기 약물 복용으로 인한 부작용인지 비만을 초래했고, 이에 약 복용을 잠시 중단하자 끔찍한 자살 시도 행위가 있었다. 고층에서 낙상으로 극적으로 목숨은 건졌으나, 중증 장애를 남겼다. 생각만 해도 두려웠다. 나라고 그러지 말라는 법이 없을 테니.
작가는 두 아이를 양육하는 일도 남편을 위해 내조도 나름 잘 해내고 있었다. 그럼에도 늘 불안해하며 자책했다. 책을 읽을수록 어쩌면 나도 남들이 봤을 때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분명 제삼자가 들여다볼 때는 자기 일도 야무지게 해내며 가사노동, 양육, 내조도 잘 해내는 슈퍼우먼처럼 보였는데 정작 본인은 늘 자신은 어설프고 부족하기 짝이 없다고 자책하는 일.
그래서 작가의 여러 공감 가는 구절 중, 이 땅의 모든 엄마들과 나누고 싶은 구절이 있어 소개한다.
pp. 262-263 정말 좋은 엄마가 되려면 '좋은 엄마'가 되려는 마음을 내려놓아야 한다. 세상에 '좋은 엄마'는 없다. 30여 년 동안 엄마가 아닌 상태로 살아오고, 그에 따라 자기 고유의 성향과 습속과 역사가 형성돼 있고, 행복과 -성과와 명예를 추구하고 싶은 한 인간이 자신의 여러 역할 중 하나로 '엄마'를 받아들인 상태가 있을 뿐이다. 엄마가 아이와 맺는 관계는 엄마가 다른 많은 사람들과 맺는 관계의 일부분이다. 다른 관계보다 더 가깝고 영향력이 클 뿐이다. 엄마가 자신을 둘러싼 우주와 연계를 끊어버리고 오직 엄마로만 기능하려고 하면, 아이와 우주의 관계도 끊어진다. 성장이란 아이가 주위 어른이 우주와 관계를 맺는 모습을 보면서 이를 모방하고 변형시키며 마침내 자신만의 방법을 개발해 나가는 과정이다.
그렇다. 돌아보면 남편도 아이도 다 내 탓인 것 같다. 다만, 시월드 문제는 내 탓이 아니다. 가만히 있으니 가마니로 보고, 말씀을 따랐을 뿐인데 원망을 들을 때도 있었다. 결혼 당시부터 이런 상황을 예상할 수 있었다면, 심미안(審美眼)으로 결혼식 전날까지도 내 손 붙잡고 결혼을 반대하던 친정엄마의 말씀에 전적으로 따랐을 것이다. 누군가 '사람이 미래를 내다볼 수 없으니 살 수 있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미 지나온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고 다가올 날을 준비하면 될 일이다. 세상에 완벽한 엄마가 있을까. 나도 아이의 심신회복을 위해 10년 살던 광역시를 떠나 서울을 거쳐 읍면지역으로까지 과감히 이사했다. 이 정도면 맹자 어머니도 내 등을 토닥여주지 않을까. "자네도 고생 많구먼. 이제 너무 애쓰지 말고 자신도 돌보시게."라고.
K장녀이자, 아내, 엄마, 며느리로 사는 이 땅의 한국 여성들이여, 힘내시라. 태어날 때부터 엄마도 아니었고, 아내도 며느리도 아니었다. 그냥 엄마의 딸로서 착하게 자라줬으니, 영혼까지 털리지는 마시고 최선을 다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힘내자, 우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