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기억서점에 가고 싶다

- 『기억서점』(송유정, 놀, 2024)을 읽고

by 네모

이 책은, 같은 제목의 정명섭 작가가 2021년에 출간한 책도 있어서, 식상하다고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그 책에서 '기억서점'은 '책과 기억을 매개로 범인을 기다리는 무대이자, 주인공의 집요한 복수심이 응축된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정 작가의 『기억서점』이 매운맛이라면 이번 송유정 작가의 『기억서점』은 순한 맛이라고 하겠다.

특정 장소와 인물이 주인공을 새로운 세상으로 데려다준다는 점에서 어디선가 본 것 같은 느낌도 받을 수 있다. 그럼에도 삶에서 후회되는 기억의 순간으로 들어가 바꾸어 볼 수 있다는 소재는 궁금증을 유발했다. 엄마를 떠나보낸 지 7년이 지났음에도 죄책감으로 점철된 우울증을 떨쳐내지 못한 주인공에게, 가장 떠올리고 싶던 기억을 소환해 후회스러웠던 상황을 바로잡는 내용이었다. 그동안 서로 다른 시·공간 속 인물이 우연한 기회에 만나, 미래에 일어날 불행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줄거리의 이야기가 꽤 여러 편 있었던 듯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서점을 매개로 해서 벌어지는 일이라니 나도 이런 서점이 있으면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가 겪은 일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나도 혹시 작가처럼...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절로 고개를 가로젓게 되었다. 아직 엄마의 죽음을 상상하기 싫었다. 그 슬픔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을 듯했다. 나도 책 속 주인공처럼 엄마에게 잘못한 일만 떠오를 것 같았다. 그렇게 힘들었을 그 삶을 그저 관객 모드로 관찰자 입장으로 받아들였던 세월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을 거다.


책 속 이야기처럼 나도 아무도 모르게 가장 되돌리고 싶은 기억의 순간으로 들어가 내가 원하는 상황으로 바꿀 수 있다면, 어느 시점으로 가야 할까? 나에게도 가장 후회되는 순간이면서 엄마께는 기쁨일 수 있는 순간을 떠올려보자면, 나의 대학입시시절이지 않을까 싶다. 엄마는 당시 내게 최소한 지방 국립대는 가길 원하셔서 재수를 하라고 하셨었다. 그런 엄마께 나는 우선 대학에 들어간 뒤 편입하겠다고 했었다. 물론 갑자기 자유로워진 대학 생활에 젖어 집안 형편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내 포부만 키워가고 있었다. 헛바람이 잔뜩 든 실속 없는 꿈을 절체절명의 목표인 것처럼.


구체적 실현 계획 없는 목표는 뜬구름 같았다. 책 속 기억처럼 3시간만 나의 수능시험시간으로 돌려 기어이 한 문제만 더 맞춰서 기어이 국립대 합격 점수를 맞는 것. 그랬으면 지금과 많이 다른 삶을 살고 있을까. 확신이 서지는 않지만 우선은 나도 엄마도 만족할 만한 선택이니 후회는 덜하지 않았을까 싶다. 박완서 작가의 <못 가본 길이 아름답다>라는 책처럼, 경험하지 못한 세계는 늘 기대감으로 설렌다.


책 속 내용 중 작가로 살아가는 길이 얼마나 막막한지 토로하는 듯한 구절이 특히 인상적이다. "마감을 앞두고 숨을 쉬기가 어렵다. 애꿎은 글자들을 썼다가 다시 지운다. 내가 지운 글자들은 다 어디로 가는 걸까. 어렵게 쓰이고 쉽게 지워지는 글자들을 모아 한데 묶으면 책 한 권의 분량이 나올 것만 같다. 누가 재촉하는 것도 아닌데 나 혼자만 조급하다. 아니, 사실 나는 언제나 재촉 받고 있다. 글을 쓰고 원고료를 받아야 생활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내가 선택한 직업이다."(p.77) 작가는 어쩌면 작가로서의 삶이 숙명이라고 여기면서도 쉽지 않은 인생임을 주인공의 기록을 통해 드러내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나도 전업 작가로서 살아보겠다는 야심찬 생각을 하고 있지만, 무모한 도전인 것 같기도 하고. 그럼에도 일단 작가로 살겠다고 주변 사람들과 또 방송을 통해서도-EBS 방송 단 2분 남짓 분량이었지만-공언했으니 이왕 내디딘 한 걸음, 좀 더 힘을 실어 보아야겠다.

책을 냈다고 해서 누구나 베스트셀러 작가가 될 수는 없겠지만, 버킷리스트인 '내 이름으로 책 한 권 내어 보기'라는 목표를 이루었으니 우선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잉여인간 같은 기분으로 살던 나를 최소한 가족에게라도 인정받을 수 있지 않을까. 내 스스로도 좀 더 당당해질 수 있을 것 같다. 각자 인생의 속도가 다를 테니, 내가 좀 많이 늦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70세가 넘어서 화가의 길로 들어선 '모지스 할머니'보다는 최소한 20년은 빠르지 않은가. 두렵지만 뚜벅뚜벅 오늘도 이렇게 서평을 기록하며, 불안하고 막연한 작가로서의 삶을 살아보려는 나를 위로한다.


판타지같지만 꼭 일어났으면 하는 많은 사람에게 상상력을 심어줄 수 있는 이 책은, 우울한 사람들에게는 책 속 주인공처럼 직접 그 세계로 돌아가 볼 순 없겠지만 기억 속 장소를 찾아가 그 시절 기억을 떠올려 볼 수 있으니 좋겠다. 아직은 엄마가 살아계신 나와 같은 사람에게는 더 후회하지 않도록 살아계시는 동안 좀 더 잘해드려야겠다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 후회하는 순간을 맞을 텐데, 그럼에도 나처럼 평생 후회의 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이 있는 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전과는 다른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나도 지금과는 달리 멋지고 당당하게 살고 싶었다. 내 생의 어느 지점이 잘못되었기에 이렇게 인생이 꼬이는 건지 들여다볼 수 있었으면 좋을 텐데. 그럼, 잠깐이라도 그 시절로 돌아가 볼 수 있는 이 책, 고민하지 말고 한번 읽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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