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두연두한, 우면산

2021. 4. 18. 일

by 김남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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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거리 트레킹을 다녀오면 아무래도 체력을 과하게 써서 집중하는데 필요한 체력이 돌아오는 데 이삼일 정도 걸린다. 초집중력이 필요한 일을 이 달말까지 끝내야해서 주말 트레킹을 포기한 채 두 주를 보내고 있다. 책상에 앉아 햇빛 받아 반짝거리는 연두연두한 세상을 창밖으로만 보고 있으려니, 이건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시인이 4월에 집에 앉아서 보내는 것은 인생의 직무유기라고 했다. 봄이야 매년 오지만 오늘은 한 번뿐이니까. 점심 먹고 오후에 가까운 우면산에 처음으로 혼자 갔다. 혼산이지만 작년에 뒷산인 서달산에 혼자 여러 번 올라서 엄밀히 말하면 처음 혼산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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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둘레길 4코스 일부인 우면산 시작 지점. 정확히말하면 역방향이다. 순방향은 양재시민의 숲에서 사당역쪽이다. 역방향이면 어떻고 순방향이면 어떤가. 아파트 숲과 차량 행렬과 단절된 연두연두한 세상이 펼쳐진다. 조금만 올라오면 도심의 각종 소음과 혼잡함에서 벗어난 고요한 세상이 있다는 게 늘 신기하다. 부지런하기만 하면 서울 살이에서도 자연을 느끼는 건 어렵지 않다. 트레킹을 하기 전에는 몰랐던 세상을 알게 되어 삶이 풍부해졌다. 연두연두한 숲을 보면서 늘 혹사당하는 눈이 시원해진다. 말 그대로 안구가 정화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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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무의 꽃이 진 자리에 잎이 다 돋았고, 키 작은 나무들도 벌써 잎이 무성해서 근사한 오솔길이 내내 이어진다. 두 주 전만 해도 이파리들이 듬성듬성했는데. 봄에 식물 자라는 속도를 보면 놀랍다. 비 한 번씩 올 때마다 쑥쑥 자라는 잎들. 키 큰 나무는 아직 잎들이 애기애기하다. 어린잎들의 색감과 부드러운 질감은 꽃보다 더 예쁘고 곱다.


철쭉 철이라 철쭉이 곳곳에 피었다. 철쭉은 원색적이라 멀리서도 눈에 띄지만 그게 다이다. 분위기 없는 꽃이라 참 정이 안 간다. 우리 아파트 옆 아파트 단지 화단에 다홍색, 흰색, 진분홍색 등 색색의 철쭉이 있다. 철쭉이 단지 전체를 두르고 있는데 좀 징그럽다. 색색의 철쭉이 서로 자기 좀 봐 달라고 소리치고 있는 것 같아 시끄럽게 보인다. 산에 있는 철쭉은 그래도 좀 덜 시끄러워 보인다. 철쭉처럼 안 예쁜 꽃이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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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산의 등산로는 좁고 거리도 짧고, 사람이 많아서 주말이면 줄 서서 가야할 정도이다. 우면산은 뒷산보다 규모가 크고, 등산로도 널찍하고, 무엇보다 흙산이다. 거리도 사당에서 양재시민의 숲까지 대략 9km. 사당에서 시작할 때는 왕복하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트레킹 친구들 없이 혼자 걸으려니 두 다리가 천근만근이라 완만한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는 길에서도 발걸음이 자꾸 엉켰다. 친구들과 함께 걸을 때는 거뜬한 거리였는데 걸어도 걸어도 멀기만 했다. 곁에서 함께 속도를 맞추며 도란도란 이야기할 친구가 없으니 겨우 두 시간 걸었는데 집에 올 때 기진맥진했다. 우면동에서 버스를 탔다. 한산한 구간이어서 승객이 나밖에 없고 빈 빈 버스는 거칠게 이리저리 기울었다. 버스기사가 거칠게 핸들을 돌릴 때마다 버스는 심하게 출렁거렸다. 버스가 기울어질 때마다 내 몸도 중심을 잃고 이리저리 흔들렸다. 앉아 있는데도 엉덩이가 들릴 정도여서 넘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요즘 모든 일을 혼자 생각하고 결정하는 삶이, 문득 힘겹게 다가왔다.엉엉. 너무 지쳐서 이런 생각이 들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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