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스토리에 벌인 무혈 복수전

by 레알

“여행에세이를 준비 중이에요.”

한 공공기관에서 소식지를 만드는 강의를 수강한 첫날, 자기소개를 하면서 강사님께 당당하게 말했다. 아무 준비도 하지 않고 있는데 말이다. 나는 허풍쟁이일까?


2020년 코로나로 엄격한 거리 두기를 할 때였다. 오랫동안 했던 일을 접고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있었다. 할 줄 아는 일이라고는 취미인 읽고 쓰기였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고, 은퇴하기에는 너무 젊었다. 노후 준비도 안 된 상태이다. 나는 뱉은 말에 대한 책임을 지는 편이라 허무맹랑한 계획을 충동적으로 질렀다. 허튼소리를 한 사람이 되지 않으려면 약간의 구속이 필요했다.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 지인이 브런치북 공모전 이야기를 했다. 머릿속에서 경광등이 세차게 울렸다.


웨---에--엥, 비빌 언덕이 나타났다!!


마침 독일에 다녀온 직후라 여행 사진을 정리하면서 신나게 여행기를 썼다. 매일 아침 집 앞 스터디카페로 출근해서 글을 쓰고 점심 때쯤 퇴근하면 보람찼다. 가끔 조회수가 폭발(그래봤자 100회)하면 다정한 연인을 만난 것처럼 웃음이 배어났다.


계속 글을 써도 시야는 짙은 안개로 덮였다. 그대로 허풍쟁이가 될 무렵 브런치북 공모전 소식을 접했다. 세상의 중심축을 나로 설정해야 도움될 때가 있다. 로또를 살 때 ‘이번 주에는 당첨될지도 몰라’하며 산다. 로또를 사는 것은 1등이 안 되면 2등이라도 되겠지, 근거 없는 낙관을 품은 희망을 사는 것이다. 브런치북 공모전은 로또였다.


브런치에 둥지를 튼 몇 개월 동안 여러 소식을 접했다. 한 작가님 글은 메인에 일주일 이상 노출되어 조회수와 구독자 수가 폭발하기도 했다. 한 작가님은 브런치스토리에 입성한 지 한 달 만에 달랑 3편을 쓰고는 출판사의 러브콜을 받은 소식을 알리기도 했다. 구독자도 한 달 만에 무려 7천 명이 넘었다. 내 몫이 아닌 기쁨을 아련하게 바라보고 의기소침해지곤 했다.


브런치는 나에게 가끔 ‘깜짝 당근’을 준비해 두곤 했다. 아침이면 조회수가 미미하지만 유의미하게 늘었다. 노출된 흔적이었다. 모두 깊은 잠에 빠진 한밤중에 잠 못 들고 뒤척이는 이들만 볼 수 있도록. 조회수, 좋아요 수, 구독자 수 등 숫자의 포로가 되면 글을 계속 쓰기 힘들다. 자기 만족적 글쓰기도 한계에 부딪친다. 나는 ‘힘을 모아’ 체념했다.


조회수 0으로 수렴하는 내 집은 자연스럽게 거미줄이 쳐진 적막하고 외딴 오두막이 되었다. 브런치스토리에서 나는 유배자였다. 어느 날 거미줄을 걷어낸 귀인이 나타났다. E 작가님이 내 글에 정성이 담뿍 담긴 댓글을 놓아두었다. ‘댓글이 큰 힘이 됩니다’란 말을 체감했다. 냉큼 답방을 갔다. 그곳은 ‘신세계’였다. 글마다 댓글이 탐스러운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달렸다. 작가님은 활발하게 소통하며 양지바른 세상을 꾸렸다. 작가님이 책을 쓰게 된 이유와 첫 책을 투고한 과정을 푼 글을 읽었다.


‘나도 투고해 볼까?’


나에겐 원고가 있었다. 집중해서 내 글을 읽고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퇴고도 안 한 비문들이 막춤을 추었다. 기본기도 안 갖춘 글을 공모전에 제출하고 대상을 꿈꾸다니. 헛웃음이 났다. 원고와 기획서를 다시 다듬고, 다듬고, 다듬으면서 투고할 출판사를 틈틈이 찾았다.


출판사 찾는 일이 제일 어려웠다. 간신히 10곳 정도 찾았다. 여행에세이를 다루며 최근 1년 이내에 책 출판이 활발한 출판사(마지막 책 출판이 1년이 넘는 출판사도 많았다), 출판사 블로그나 인스타그램을 찾아서 책 출간 후 홍보는 하는 방법도 살폈다. 자비 출판사처럼 보이면 걸렀더니 5곳이 남았다.


준비 완료! 이 개척자(?) 정신의 기세를 몰아 메일 보내기 버튼을 힘차게 눌렀다.


활시위를 당길 때 과녁에 한 번에 멋지게 맞추겠다는 다짐은 안 한다. 내 허술한 기질 탓에 못 맞출 걸 알기 때문이다. 대신 일단 활시위를 당기고 화살이 과녁을 빗나가면 숨을 고른 후 바닥에 떨어진 화살을 주웠다. 그러고는 다시 활시위를 당기며 살았다. 활을 쏘기 전에는 안 보였던 것이 보이고, 거기서 깨닫는다. 꼼꼼하게 준비해도 한 번에 과녁에 명중시키는 사람은 따로 있다. 바람의 여신이 윙크하며 미소를 보내야하니까.


최악의 결과는 5곳 모두로부터 거절이다. 마음에 스크래치는 남겠지만, 아무에게도 피해를 주진 않는다. 세상이 무너지지도 않는다. 그러면 된 거 아닌가. 작은 상처도 없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바람의 여신은 내 편이었다. 화살이 과녁에 명중했다. 원고를 보낸 바로 다음 날 한 출판사로부터 답장을 받았다. 원고를 단숨에 읽었고, 계약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투고로 정말 책을 출간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니! 믿기지 않았다.


계약서에 서명 후 예상치 못한, 그리고 쓸데없는 고민이 이어졌다. ‘베스트셀러가 되면 어떡하지? 난 유명해지는 거 싫은데. 딱 1만 권 판매 파워만 있으면 되는데.’


투고로 첫 책 <어서 와, 혼자 여행은 처음이지?>가 2021년 세상에 나왔다. 화살을 명중시킨 적이 있으면 다음 번 화살도 명중시키는 노하우가 생긴다. 책 출간을 염두에 두고 브런치북을 썼고, 대폭 수정해서 3권을 출간했다. 가끔 다음 메인에도 글이 게시되었다. 여전히 베스트셀러 작가도 아니고, 1만 권 판매 파워가 내 것일 될 것 같지도 않다.


그럼에도 5번째 책을 준비 중이고, 공공기관에서 글쓰기와 인문학 강의를 하고 있다. 나를 꿋꿋하게 키운 <브런치스토리 작가되기> 강의도 종종 한다. ‘왜 브런치스토리 작가인가?’ 첫 시간 강의 주제이다. 좋아요를 넘치게 받은 글도 없는 ‘생생한 브런치스토리 유배자’ 예시로 ‘나’를 써먹는다. 나처럼 인생 2막을 모색하는 분들과 내 경험을 공유하며 경력설계 강의에도 종종 참여한다.


이쯤 되면 나를 홀대한 브런치에게 조용하게, 그리고 완벽하게 복수한 게 아닐까.


덧. 제 스토리를 단편적으로 여기저기 풀었는데 이 글을 통해 출간작가로 활동(?)하게 된 과정을 적어보았습니다. 활시위는 잘 당기편이라ㅎㅎ 오늘도 활시위를 당기고 과녁에 명중하면 좋지만 명중하지 않아도 몇 년동안의 일을 복기한 것으로도 의미를 얻네요. 그래도 많은 분들이 읽으시고 힘도 얻으시고 공감도 나누면 좋겠습니다! 메인에도 일주일 내내 걸리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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