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대체할까?
1811년 홍경래의 난이 일어난 조선 순조 11년에 지구 반대편인 영국 노팅엄에서는 밤마다 복면을 한 사람들이 무장을 하고 돌아다니면서 공장을 파괴하는 일이 일어났다. 이 조직의 구성원은 누구인지 알려지지 않았으며 철저히 비밀을 지키는 비밀결사조직이었다.
1700년대 중반 시작된 산업혁명으로 당시 영국은 세계에서 가장 산업이 발달한 선진국이었으나 나폴레옹 전쟁의 영향으로 경제 불황에 빠져 고용감소와 실업이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 원인을 공장의 기계화로 돌리고 기계들을 파괴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노팅엄에 위치한 직물공장에서 시작한 기계 파괴는 랭커셔-체셔-요크셔 등 영국 북부를 중심으로 번져나갔으며 이를 두려워한 자본가들에 의해 무력으로 진압되었다. 이 운동이 바로 러다이트 운동(Luddite Movement)이다. 이 이름은 이 운동의 지도자라고 불리던 N. 러드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고 알려져 있으나 N. 러드는 실존한 인물이 아니고 이 조직을 치안당국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가공된 인물이었다. 이 운동은 최초로 노동과 기계의 대체에 대한 갈등이 표면화된 사건이었다. (실제로는 인간과 기계의 대립이라기보다 고용인(Employee)과 매판 자본주의자들의 갈등이었다. 이 사건은 후에 워쇼스키 자매의 영화 브이 포 벤데타(V for Vendetta)에 모티브를 제공한 것 같다. 마스크를 쓴 것도 그렇고 메인 테마곡이 차이코프스키의 1812 서곡인데, 이 해는 러다이트 운동이 한창이었던 때이다.)
기계화와 자동화 그리고 로봇, 이 세 가지 단어는 인간의 노동과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다. 언뜻 유사해 보이는 이 세 단어는 다음과 같이 구별할 수 있다. 기계화는 산업혁명 당시처럼 수작업을 통해 이루어진 작업이 증기기관이나 모터와 같은 동력이 결합된 기계로 대체된 것을 말하며, 자동화는 단위 기계의 자동화가 아니라 공장의 전체적인 공정제어를 통한 생산을 의미한다. 자동화가 잘된 공장들은 공장(Factory)보다는 대규모 플랜트(Plant)이며 정유공장 같은 곳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현재까지 로봇을 통한 생산의 의미는 자동화에 일부 포함되어 있는 산업용 로봇으로 자동차 생산라인에서 용접 등 단순 반복적인 업무를 표준화하여 생산속도와 효율을 높이는 것을 말해왔다. 근래 로봇공학, 인공지능, 빅데이터 기술의 발전으로 로봇에 의한 노동의 대체에 대해 관심들이 높아졌다. 언젠가는 영화 터미네이터나 AI에 나오는 사람과 구분할 수 없을 정도의 놀라운 수준을 가진 로봇이 등장하여 사람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날이 오겠지만, 현재 회사원들이나 학생들이 그런 로봇들에게 일자리를 내주는 일이 일어나기는 요원해 보인다. 아무리 IBM의 왓슨이 나왔더라도 인공지능이 인간의 수준에 이르기에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이런 이유로 창의, 지식, 서비스 분야에서 로봇이 인간을 대체하는 문제는 이 칼럼에서 다루지 않는다. (만일 정말 인간을 뛰어넘는 인공지능이 나와, 자아도 있고 인간과 마찬가지로 사고한다면 로봇 역시 인간처럼 일을 안 하려고 할지도 모른다.)
몇십 년 내에 제한된 상황과 기능적인 측면에서 인간의 일자리를 일부 대체할 가능성은 있다. 로봇공학이 빠른 시간 동안 발전을 하게 되면 우선은 인간의 움직임을 그대로 반복 재현할 수 있는 로봇부터 나오게 된다. 이미 이런 기술들은 상당히 발전해 있으며, 꽤 자연스러운 걸음걸이와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엔지니어링 측면에서 보면 기능적으로 인간의 움직임을 그대로 따라 할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이 공장에서 하는 생산업무를 그대로 할 수 있다고 주장할 것이다. 맞는 말이다. 사람이 직접 하기에 위험한 방사능 관련 업무 같은 것부터 로봇이 대체하게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생산라인에 로봇들이 모든 생산을 도맡아 하고 인간은 일자리를 빼앗기는 일은 생기기 어렵다. 그 이유는 로봇공학의 기술 구현 여부가 아니라 경제적인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다.
19세기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난 이후 산업의 중심은 유럽이었고, 1차,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유럽 전체가 혼란에 빠지자 산업의 중심이 미국으로 이동한다. 1차 세계대전 때까지만 해도 미국은 농업을 기반으로 하는 농업국가였다.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미국은 강력한 산업국가로 탈바꿈하였고 1970년대까지 산업의 중심지였다. 80년대에 들어서면서 산업의 중심지는 일본, 한국, 대만 등 동북아시아로 바뀐다. 90년대 중국이 개방을 하면서부터는 줄곳 생산의 중심지는 지금껏 중국이다. 어떤 이는 이를 두고 세계의 중심이 서쪽으로 이동한다고 표현했는데 현상만 보면 결과적으로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산업 중심이 이동하는 이유는 방향 때문이라기보다는 철저하게 돈의 논리를 따라서이다. 70~80년대 미국에서 공장자동화가 시작되면서 사람들은 지금처럼 일자리가 없어지는 것을 걱정했지만 자본주의자들은 자동화에 거금을 투자하기보다는 인건비가 싼 지역으로 공장을 이전했다. 그곳이 일본이었고 일본의 인건비가 비싸지자 한국이나 대만, 홍콩 등 인건비가 더 싼 곳으로 옮겨갔다. 비싼 기계를 들여놓고 자동화하는 것보다 인건비가 싼 곳으로 이전하는 것이 훨씬 손쉽고 비용이 적게 들어갔기 때문이다. 미국이 일자리가 없어진 것은 공장 자동화가 원인이 아니라 공장의 해외이전 때문이었고, 현재의 한국 역시 마찬가지이다. 한국에서 이전한 중국 공장 역시 처음에는 대도시 인근에서 생산을 하다가 대도시의 임금이 높아지면서 중국 내 시골로 이동하고 있으며, 발 빠른 일부는 파키스탄이나 캄보디아, 베트남 같이 중국보다 인건비가 더 싼 나라에 하청을 주고 있다. 중국의 인구가 많아 중국 전체의 인건비 상승이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한동안 중국이 생산의 중심을 담당하겠지만 언젠가는 중국도 인건비가 높아져 인근의 저임금 국가로 생산시설들이 이전할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로봇이 인류의 노동을 대체하는 시점은 전 세계의 임금이 동일한 수준까지 오르고 동시에 로봇 자체의 생산단가가 매우 싸져야 가능해진다. 그전까지 생산자본들은 중국에서 인도와 동남아로, 유럽의 경우 지리적 이점이 있는 러시아와 아프리카로, 북미는 남미에서 인건비가 싼 나라를 찾아 헤멜 것이다. 그래서 브릭스(BRIC)라는 단어도 나왔다. 남미의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이 뜰 수밖에 없는 이유고, 브릭스 이후 종국에는 아프리카와 남미의 저개발국가로 가게 된다.
전 세계 인건비가 동일해진다는 의미는 단순히 손에 쥐는 월급이 같아진다는 말이 아니다. 아프리카나 남미의 최빈국들이 정치적으로 안정되고 문화나 생활수준도 최소한 현재 한국 수준과 비슷해져야 가능하다.
그렇게 되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기에 로봇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기까지 기술적인 문제보다는 정치, 경제, 사회적인 측면에서 전 지구적으로 풀어야 할 숙제들이 너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