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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y Favorite Thing Jul 03. 2016

핀테크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은행의 초기 개념은 십자군 전쟁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당시에는 요즘처럼 교통편이 발달하지 않아 여행을 하려면 최소한 몇 달의 기간이 걸렸다. 이때도 유럽에서 예루살렘으로 '성지순례'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가는 여정에서 강도를 만나 돈을 빼앗기거나 목숨을 잃는 일도 허다하게 생겼다. 성지 순례자들은 여행경비로 만국 공통화폐인 '금'이나 '은'을 소지하고 다녔기에 강도들이나 산적들의 표적이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이들의 보디가드로서 기사들이 돈을 받고 여행에 참가했는데, 시간이 거듭되면서 중간중간에 기사단이 운영하는 숙소가 생겨나게 되었다. 예루살렘까지 여정 중에 위치한 이 숙소는 처음에 숙박과 음식물을 제공하는 기능에 머물렀으나 점점 발전하면서 여행객들이 금을 소지하지 않아도 여행할 수 있는 편의를 제공하였다. 여정의 출발 전 유럽에서 기사단에게 금을 맡기면 이 금액에 대한 증서를 써주고, 여행객은 중간 숙소에 들러서 이 증서를 보여주면 다음 숙소까지 여행에 필요한 금액을 숙소에서 내주었다. 이렇게 됨으로 여행객은 필요 이상의 금을 소지하지 않아도 되었고, 필요한 만큼만 써야 할 때마다 기사단의 숙소에서 인출하면 되어 여행이 더욱 안전해졌다. 이것이 바로 은행의 시초이자 종이돈의 출발이었다. 말하자면 기사단은 보디가드 사업으로 시작해서, 여행 가이드로 돈을 벌자 부동산을 사고 호텔과 은행을 열었던 것이다.

  

이들이 가장 활발히 돈을 벌었을 시점은 1096년에 시작된 십자군 전쟁 때부터인데, 전쟁이 시작되자 이들이 구축했던 여행업 조직이 용병 조직으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200년간의 십자군 전쟁은 이들을 유럽 최대의 부호로 만들어 주었다. 이들의 몰락은 1307년 10월 13일 금요일에 시작되었는데 프랑스에 살고 있는 템플 기사단원들을 모두 체포하여 하루 동안 1만 5천 명이 쇠사슬에 묶였다. 프랑스 왕인 필리프 4세의 명령에 의한 조치였다. 필리프 4세가 이런 조치를 내린 이유는 바로 돈이었다. 300년 넘게 은행업과 전쟁으로 부와 권력을 쌓은 템플 기사단과 달리 프랑스의 왕실 재정은 이들에게 지불한 전쟁 자금 때문에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템플 기사단 이전에 유태인과 롬바르드인 등의 고리대금업자에게 많은 빛을 지고 있던 필리프 4세는 빚을 갚지 않기 위해 이들의 재산을 몰수하고 국외로 추방했다.

마찬가지로 템플 기사들을 체포, 처형한 후 이들의 막대한 재산을 몰수했다. 템플 기사단은 프랑스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전 유럽에 퍼져있던 글로벌한 세력이었으므로 이들의 보복을 두려워한 필리프 4세는 아비뇽에 볼모로 잡고 있던 교황 클레멘스 5세를 협박하여 유럽 전체에서 템플 기사단을 체포하라는 교서를 내리게 한다. 잉글랜드, 스페인, 독일, 키프로스 등지에서 프랑스와 같은 조치가 이루어졌으며, 1314년 3월 19일 마지막 템플 기사단장인 자끄 드 몰레가 화형 당하면서 템플 기사단은 완전히 역사 속에서 사라진다. 교황은 템플 기사단뿐 아니라 성전기사단 등 유럽에서 활동하는 모든 기사단의 활동을 금지시키고 이들의 재산을 몰수했다.

자끄 드 몰레가 죽으면서 자신이 죽은 뒤 1년 안에 교황과 필리프 4세가 죽을 것이라 예언했는데, 교황은 그가 죽은 지 5주 만에, 필리프 4세는 8개월 만에 사망한다. 죽었으니 예언이 맞긴 했지만 천벌이라기보다는 기사단의 잔존세력에 의한 보복 암살이었을 것이다.

기사단 이전에도 유태인들이 고리대금업을 하면서 금융업을 발전시키기는 했지만, 유태인 고리대금업자들의 사채 사업은 지금의 전당포와 비슷해서 물건이나 부동산을 담보로 잡고 돈을 빌려준 후 고리의 이자를 받거나 못 갚을 시 담보물을 처분하는 수준이었다. 

기사단의 사업이 사채업이 아닌 은행업이었던 이유는 이들이 ‘지급준비율’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금을 보관하고 이에 상당한 종이 증서를 써주었던 기사단이 상당기간을 통해 알아낸 사실은 맡긴 금의 10% 정도만 예금 인출이 일어난다는 것이었다. 즉 예치한 금의 10%만 인출에 대비해 쌓아놓고 나머지는 자신들이 마음대로 운용하여 이자를 받고 돈을 벌었다. 이 개념을 그대로 발전시킨 것이 현재의 은행제도이다.

여러분이 100억 원이 있다고 가정할 때 은행에 저축을 하면, 연리 3% 정도의 이자수익이 발생한다. 100억에 대한 이자로 3억 원(세전)을 버는 것이다. 여러분으로부터 돈을 예치한 은행은 이자로 일 년 동안 얼마를 벌 수 있을까?

100억 원을 받은 은행은 10%인 10억을 지급준비율로 놓고 90억 원을 빌려주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들이 맡긴 100억 원을 10%로 잡고 900억 원을 대출한다. 이걸 여신이라고 부른다. 가상의 900억 원을 대출하고 돈을 버는데, 이에 대한 책임을 한국은행이 보증한다.

은행이 자기자본도 아니고 예금을 유치해 대여할 때의 이자를 5%로 잡으면 1년 동안의 이자수익은 45억 원이다. 똑같은 돈을 굴리는데 은행은 여러분보다 15배를 번다. 은행은 대출 리스크가 있으니 더 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착각이다. 은행은 담보를 잡고 돈을 빌려주는데 만약 대출한 사람이 돈을 못 갚게 되면 빌려준 돈보다 헐값에 잡은 담보를 처분하게 되어 오히려 돈을 더 번다. 은행은 리스크가 전혀 없다. 이론상 은행은 망할 수가 없으며, 그럼에도 망할 위기가 오면 정부에서 세금으로 구제금융을 받는다. 은행이 위기가 오는 것은 위에 설명한 기본적인 업무 외에 고위험 상품인 정크본드 같은 데 손을 대는 탐욕 때문에 그런 것이다.

여러분이 단돈 몇 천 만원 빚을 못 갚으면 집으로 쳐들어오고 난리가 나는데 은행은 수 천억, 수 조 원을 날려도 정부가 대신 갚는 산업이다. IMF 때 한국이 그랬고 2008년에 미국도 그랬다. 이에 대해 전 브라질 대통령인 룰라 대통령은 유명한 말을 남겼다. "왜 부자들을 돕는 것은 '투자'라 하고, 가난한 이들을 돕는 것은 '비용'이라고 말하는가?"



이 말에서 부자가 바로 은행가들을 뜻하는 것이고, 가난한 이들은 은행가 이외의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다. (은행에서 일하는 은행원은 은행가가 아니다.)

이렇게 위험성도 없고 고수익 사업이라면 당연히 경쟁이 치열해야 한다. 하지만 은행업은 각종 법률을 이용해 다른 산업분야에서 은행업 사업을 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다. 대표적인 법이 '금산분리법'이다. 금산분리법은 하나의 법이 아니라 공정거래법, 은행법, 금융지주회사법 등으로 나누어 복잡하고 철저하게 산업자본의 은행업 진출을 막고 있다. 모든 산업분야에서 철저하게 경쟁의 논리로 생존하고 있는데, 유일하게 은행업만 법에 의해 이런 경쟁상황에서 배제되어 있다. 이런 상황은 한국뿐 아니라 미국이나 기타 외국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이렇게 이야기하는데 대해 은행가들은 필자에게 금융업의 특수성이나 공공성 등을 이해 못하니 저렇게 말한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특수성이나 공공성은 어디까지나 은행가들이 주장하는 (그들을 독점을 위한) 특성일 뿐이다.

이제 핀테크 이야기로 넘어가 보자. 핀테크는 Finace + Technology의 합성어이다. 핀테크는 주로 모바일을 통한 결제, 송금, 자산관리, 크라우드 펀딩 등 금융과 IT가 융합된 산업을 의미한다. 스마트폰 이후 모바일 결제라는 형식이 추가되었을 뿐 결제, 송금, 자산관리, 크라우드 펀딩 등은 이전에도 이미 웹상으로 해오던 업무이며 크게 다르지 않다. 이미 90년대 말에 한국에서도 SKT의 모네타 서비스가 지금의 모바일 결제나 아키텍처상으로 크게 다르지 않은 (단말기는 차이가 있지만) 상용서비스를 했었다. 지문으로 결제를 승인한다던지 스마트폰을 이용한다던가, 페이팔 같은 결제 시스템을 이용하는 문제는 지엽적인 문제이다. 기술이 못 미쳐서 모바일 송금이나 결제가 안 되는 게 아니다.

중요한 점은 기술이 아니라 법과 제도, 정책, 스테이크 홀더인 은행, 카드사, 보험사, 이통사. 결제회사들 간에 누가 헤게모니를 쥘 것인가에 대한 문제이며, 이들 간의 이익구조에 대한 합의가 되지 않으면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기술만으로는 결론이 나지 않는다. 더구나 한국 내에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 글로벌한 차원에서 해결되어야 할 문제이다. 금융에서 기술은 이미 충분히 발전했다. 지금의 핀테크 논의는 결국 기술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스테이크 홀더를 등에 업은 기술이 표준을 차지할 것인가가 관건이다. 핀테크는 기술이 중심이 아니라 법과 제도, 정책, 헤게모니가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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