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울이 죽었다는 소식이 기브아에 도착한 것은 길보아 전투 다음 날 정오였다.
전령의 옷이 찢어져 있었고, 머리에 흙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패전의 전령이 하는 관례. 전령이 궁정 뜰에 무릎을 꿇고 말했다. '사울왕과 요나단 왕자가 길보아에서 전사하셨나이다. 이스라엘 군이 궤멸하였나이다.'
궁정이 얼어붙었다. 신하들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서기관의 손에서 양피지가 떨어졌다. 호위병의 칼손이 풀렸다.
아히노암은 밀실에 있었다.
전령의 보고를 시녀 므히다가 전했을 때, 아히노암의 얼굴에 떠오른 것은 슬픔이 아니었다. 공포였다. 남편이 죽었다는 데 대한 슬픔이 아니라, 자기가 살아야 한다는 공포. 아히노암의 머리가 슬픔보다 빠르게 계산을 시작하고 있었다.
사울이 죽으면 왕비는 — 전 왕비가 된다. 전 왕비에게는 권력이 없다. 권력이 없으면 보호가 없다. 보호가 없으면 — 놉의 학살, 법궤 장신구, 토지 강탈, 제사장 매매, 그 모든 죄가 고스란히 아히노암의 목에 걸린다.
"므히다, 아버지한테 사람을 보내. 지금 당장. 이 궁정을 떠나야 해."
아히노암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히스테리의 다섯 번째 단계 — 목소리가 떨리는 단계. 이 단계에 이르면 아히노암의 머리와 몸이 따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머리는 도주를 계산하고, 몸은 공포에 떨고.
아히마아스에게 전갈이 갔다. 아히마아스의 답은 빨랐다.
"블레셋 땅으로 넘어가야 한다. 가드나 가자까지 가면 다윗의 손이 닿지 않는다. 은은 준비되어 있다. 지금 당장 출발하자."
아히마아스는 노인이었으나, 돈 앞에서는 젊었다. 은 궤 세 개와 금붙이 보따리 둘을 나귀에 실었다. 아히노암은 왕비의 예복을 벗고 평민의 옷으로 갈아입었다. 금장신구를 풀고, 머리를 천으로 감싸고, 시녀 므히다와 함께 궁정을 빠져나왔다.
기브아 남문을 나선 것은 해가 기울 무렵이었다. 아히노암, 아히마아스, 므히다, 그리고 아히마아스의 하인 셋. 여섯 명의 도주 행렬이 남쪽으로 향했다. 블레셋 경계를 향해.
* * *
도주는 사흘째에 막혔다.
기브아에서 블레셋 경계까지는 나흘 걸이었다. 사흘째, 일행은 유다 지파의 영토인 아둘람 근처에 도달해 있었다. 블레셋 경계까지 하루만 더 가면 되는 거리였다.
그런데 아히노암이 멈추었다.
"힘들어. 하루만 쉬고 가자."
아히마아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노인은 아히노암보다 스무 살이 더 많았으나, 아히노암보다 먼저 지치지 않았다. 돈이 걸려 있을 때 아히마아스의 다리는 청년의 다리보다 튼튼했다.
"쉬면 안 된다. 하루가 목숨이다. 다윗이 우리를 찾고 있을 것이다. 하루만 늦으면 끝이야."
"아버지, 다리가 안 움직여요. 발바닥에 물집이 잡혔어요. 반나절만 쉬면 — "
"반나절이면 다윗의 병사가 이 길목을 막는다!"
아히마아스가 목소리를 높였다. 평생 딸에게 목소리를 높여본 적이 없는 노인이었으나, 목숨이 걸리면 평생의 습관도 깨지는 법이었다.
아히노암은 길가의 바위에 주저앉았다. 왕비의 발에는 왕비의 발바닥이 붙어 있었다. 궁정의 대리석을 밟던 발바닥이 유다 광야의 자갈길을 사흘 걸었으니, 물집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아히마아스에게 물집은 변명이 아니라 재앙이었다.
"하루만. 아버지, 하루만 쉬면 다시 걸을 수 있어요."
아히노암의 목소리에 히스테리가 아니라, 처음으로 약한 것이 섞여 있었다. 밀실의 아히노암, 궁정의 아히노암, 시장 앞에서 '닥쳐!'를 외쳤던 아히노암이 아니라 — 발이 아파서 주저앉은 여자의 목소리.
아히마아스는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딸의 발바닥을 보았다. 물집이 터져 진물이 나고 있었다. 노인의 이마에 깊은 주름이 잡혔다.
"……반나절이다. 반나절만 쉬고 출발한다."
반나절이 하루가 되었다. 아히노암의 발이 아침이 되어도 낫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히마아스는 초조하게 길을 내다보며 이를 갈았으나, 딸을 버리고 갈 수는 없었다. 은 궤를 버리면 가벼워지겠으나, 은 궤를 버리는 것은 아히마아스에게 딸을 버리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 * *
일행이 쉬고 있던 곳은 아둘람 근처의 작은 마을이었다. 도르라는 이름의, 열다섯 가구가 사는 마을. 아히마아스의 하인이 이 마을에 아는 집이 있다고 했다. 나귀에 물을 주고 쉴 수 있는 집이라고.
그 집의 주인은 히엘이라는 소작농이었다.
히엘. 이 이름이 아히마아스의 귀에 닿았을 때, 노인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졌어야 했다. 그러나 아히마아스는 이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다. 히엘은 에브라임 산지 기슭의 밀밭을 아히노암에게 은 다섯 세겔에 빼앗긴 소작농이었다 — 시세 스무 세겔짜리 밭을. 장로회에 토지 강탈을 접수한 열두 명의 피해자 중 첫 번째 증인이 바로 히엘이었다.
아히마아스가 기억하지 못한 것은 당연했다. 히엘 같은 사람이 수십, 수백이었으니까. 아히마아스에게 히엘은 장부의 한 줄이었고, 은 다섯 세겔은 먼지 같은 액수였다. 그러나 히엘에게 아히마아스는 삼대째 경작하던 밀밭을 빼앗아 간 사람이었고, 은 다섯 세겔은 가족의 생계가 무너지는 값이었다.
히엘의 집에 들어선 것은 아히마아스의 하인이었다. 히엘의 아내가 문을 열었을 때, 하인은 나귀에 물을 달라고 했다. 히엘의 아내는 밖에 서 있는 일행을 보았다. 평민의 옷을 입었으나, 옷감이 좋았고, 나귀에 실린 궤가 무거워 보였다. 보통 행인이 아니었다.
히엘의 아내가 남편에게 말했다. 히엘이 밖으로 나와 일행을 보았다. 그리고 아히노암의 얼굴을 보았다.
히엘은 아히노암의 얼굴을 알고 있었다. 밀밭을 빼앗길 때, 아히마아스의 하인이 '왕비마마의 뜻'이라며 매도를 종용했고, 히엘은 기브아에 올라가 왕비를 만나려 했으나 만나지 못했고, 대신 궁정 앞에서 왕비의 얼굴을 멀리서 본 적이 있었다. 잊을 수 없는 얼굴이었다. 밀밭을 빼앗은 사람의 얼굴은 죽을 때까지 잊히지 않는 법이었다.
히엘은 마을을 빠져나가 아둘람의 다윗 진영으로 달려갔다.
다윗의 부하 서른 명이 도르 마을에 도착한 것은 그날 저녁이었다.
* * *
아히노암은 바위에 앉아 발바닥에 천을 감고 있었다.
발소리가 들렸다. 많은 발소리. 아히노암이 고개를 들었을 때, 마을 입구에 무장한 병사들이 서 있었다.
아히마아스가 먼저 알아챘다. 노인의 눈이 커졌다. 은 궤 위에 올려놓았던 손이 멈추었다.
"다윗의 병사들이다."
아히마아스의 목소리가 스러졌다. 목소리가 스러진다는 것은 희망이 스러진다는 뜻이었다. 블레셋 경계까지 하루 거리. 하루. 아히노암이 '하루만 쉬고 가자'고 한 그 하루가 — 모든 것을 결정한 하루가 되었다.
병사들이 일행을 에워쌌다. 아히마아스의 하인 셋이 도주를 시도했으나, 세 걸음 만에 붙잡혔다. 므히다는 주저앉아 울었다. 아히마아스는 은 궤를 붙잡고 놓지 않았다 — 병사가 팔을 비틀어 떼어놓을 때까지.
아히노암은 바위에 앉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발바닥에 감던 천이 반쯤 풀려 있었다. 병사들이 다가왔을 때, 아히노암은 고개를 들어 그들을 보았다. 검은 눈이 빛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 마지막으로.
"블레셋까지 하루였는데."
아히노암이 혼잣말했다.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 자기에게 하는 것인지, 야훼에게 하는 것인지, 아무에게도 하지 않는 것인지 — 알 수 없었다.
"하루만 더 걸었으면 됐는데."
* * *
재판은 예루살렘 광장에서 열렸다.
다윗이 헤브론에서 유다의 왕이 된 직후였다. 아직 이스라엘 전체의 왕은 아니었으나, 사울 왕조의 잔재를 심판할 권한은 백성이 부여한 것이었다. 예루살렘의 광장에 임시 재판석이 설치되었다. 돌 위에 나무를 깔고, 나무 위에 천을 씌운 간이 법정.
장로 열두 명이 재판관으로 앉았다. 각 지파에서 한 명씩. 다윗은 재판관이 아니라, 광장 한쪽에서 지켜보는 위치에 있었다. 심판은 장로들이 하되, 집행은 다윗이 하는 구조.
증거물이 법정 앞에 놓였다.
첫째, 금칠한 법궤 조각. 아히야 제사장이 만들어 아히노암에게 바친 목걸이. 금판 아래에 아카시아 나무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금세공인 헤셀이 나무의 결을 확인하고, 법궤의 나무와 동일하다고 증언했다.
둘째, 토지 강탈 장부. 아히마아스의 저택에서 압수된 양피지 묶음. 히엘을 포함한 열두 건의 토지 매입 기록. 시세의 삼분의 일에 매입하고, 한두 달 뒤 두 배로 매도한 내역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아히마아스의 필체가 확인되었다.
셋째, 제사장 매매 명부. 아히노암의 밀실에서 발견된 작은 양피지. 관직과 그 대가가 적혀 있었다. '아히야 — 기브아 수석 제사장 — 은 오십 세겔, 자주천 스무 필.' '벤소헬 — 에리코 지방관 — (도로 종점 해명에 대한 보상).' 아히노암의 필체였다. 코를 풀다가 묻힌 듯한 얼룩이 양피지 한쪽에 번져 있었다.
증거물이 광장의 돌바닥 위에 놓였을 때, 백성들의 웅성거림이 파도처럼 일었다. 금칠한 법궤 조각이 햇빛에 번뜩였다. 야훼의 궤가 왕비의 목걸이가 된 물증. 그 번뜩임이 광장의 모든 눈에 박혔다.
* * *
아히노암이 법정 앞에 섰다.
평민의 옷을 입고 있었으나, 서는 자세는 여전히 왕비의 것이었다. 등이 곧고, 턱이 들려 있었다. 검은 눈이 장로 열두 명을 훑었다. 장로들의 눈을 한 사람씩 마주치며 — 기름등 아래에서 뇌물을 흥정하던 그 눈으로.
수석 장로가 심문을 시작했다.
"아히노암, 기브아의 전 왕비. 그대에게 묻겠소. 이 금장신구가 법궤의 나무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고 받았소?"
아히노암은 대답하지 않았다. 입을 다문 채 장로를 보고 있었다.
"토지 강탈의 지시가 그대에게서 나왔소?"
침묵.
"제사장 자리를 은으로 팔았소?"
침묵.
장로들이 서로를 보았다. 침묵은 묵비권이었으나, 동시에 부정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했다. 증거가 눈앞에 있고, 증인이 줄지어 있고, 피고인이 침묵하면 — 결론은 하나였다.
"아히노암, 마지막으로 말할 것이 있으면 말하시오."
수석 장로의 말에, 아히노암의 입이 열렸다.
처음에는 왕비의 목소리였다. 절제되고, 또렷하고, 가면을 쓴 목소리.
"저는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이지만 이 나라를 위해 일한 것입니다."
광장이 조용해졌다. 아히노암의 목소리가 돌담에 부딪혀 울렸다.
"사울이 왕이 되기 전에, 사울은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키만 크고, 주먹만 세고, 머리는 텅 빈 베냐민의 청년이었습니다. 그 청년을 왕으로 만든 게 누군데요?"
그 소리를 듣자 군중은 다시 아히노암을 향해 비난을 소리를 질러대기 시작했다.
다시 군중의 야유를 들은 아히노암의 가면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목소리의 결이 달라지고 있었다. 왕비의 절제가 벗겨지고, 그 아래에서 다른 것이 올라오고 있었다.
"사무엘을 속여서 기름 부음을 받게 한 것도 나예요. 나귀를 풀어놓고 찾는 연극을 짠 것도 나예요. 암몬 전쟁에서 이기고 나서 민심을 잡는 전략을 세운 것도 나예요. 사울이 한 게 뭐가 있어요? 어퍼컷? 주먹질? 그게 전부예요!"
광장의 백성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아히노암의 가면이 완전히 벗겨지고 있었다. 고결한 왕비의 가면 뒤에서 — 마담 율리아가 나오고 있었다. 기브아 뒷골목에서 상인들의 멱살을 잡던 여자. 영리하고, 날카롭고,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여자.
"멍청한 사울을 왕으로 만든 게 누군데!"
아히노암이 외쳤다. 목소리가 찢어졌다. 히스테리의 마지막 단계 — 목소리가 찢어지는 단계를 넘어, 사람이 찢어지는 단계.
"내가 만들었어! 내가! 아히마아스의 돈으로, 내 머리로, 내 손으로! 사울은 내 인형이었어! 내가 줄을 당기면 주먹을 날리고, 내가 줄을 놓으면 주저앉는 인형! 그 인형을 왕으로 만들어준 게 내 죄라고? 그러면 나를 왕으로 만들어줬어야지! 인형 말고 인형사를!"
광장은 분노로 가득 찼다. 백성들은 아히노암을 향해 죽이라 소리쳤다.
사울은 장님 무사였고, 아히노암은 앉은뱅이 주술사였다 — 요나단의 유언이 이 순간 증명되었다. 요나단이 죽으며 남긴 말이 아히노암 자신의 입에서 확인된 것이다. 어머니가 모든 것을 조종했다는 것을.
* * *
아히노암 옆에서 아히마아스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노인은 딸처럼 외치지 않았다. 아히마아스의 생존 방식은 소리가 아니라 침묵이었다. 소리를 지르면 적이 생기고, 침묵하면 기회가 온다 — 평생의 원칙.
그러나 이번에는 침묵이 기회를 주지 않았다.
토지 강탈 장부의 필체가 아히마아스의 것이었다. 은의 출처가 아히마아스의 창고였다. 전리품 회수팀의 자금이 아히마아스의 금고에서 나갔다. 도로 종점이 아히마아스의 올리브 동산으로 꺾인 것의 수혜자가 아히마아스였다. 모든 돈의 실이 이 노인에게로 수렴되었다.
수석 장로가 물었다.
"아히마아스, 이 토지 강탈 장부가 당신의 필체임을 인정하시오?"
아히마아스는 고개를 들지 않은 채 대답했다.
"……인정하오."
더 이상의 말은 없었다. 아히마아스의 입은 닫혔고, 노인의 어깨가 처음으로 축 처져 있었다. 평생 곧게 세웠던 어깨가 — 은 궤의 무게가 아니라 죄의 무게에 꺾인 것이었다.
* * *
장로 열두 명의 논의는 길지 않았다.
증거가 명확했다. 증인이 확실했다. 피고인의 자백이 있었다 — 아히노암은 자백이 아니라 자랑을 했으나, 법정에서는 같은 것이었다.
수석 장로가 일어섰다. 광장이 숨을 죽였다.
"아히노암과 아히마아스에 대한 판결을 선고하겠소."
"하나, 야훼의 법궤를 훼손하여 장신구로 만든 신성모독의 죄. 둘, 백성의 토지를 강탈하여 사리를 취한 죄. 셋, 제사장의 직위를 은으로 사고팔아 야훼의 직분을 더럽힌 죄. 넷, 왕의 권한을 사사로이 행사하여 공공의 사업을 사익에 이용한 죄. 다섯, 놉의 제사장 학살과 길갈의 번제 찬탈과 지성소 파괴에 직간접으로 관여한 죄."
수석 장로의 목소리가 광장을 채웠다. 하나의 죄를 읽을 때마다 백성들의 웅성거림이 파도처럼 일었다 빠졌다 했다.
"이에 장로회는 아히노암과 아히마아스에게 — 최고형이 마땅하다 판결하노라."
최고형.
사형이었다.
광장에서 함성이 터졌다. 환호가 아니었다. 울분이 터지는 소리였다. 빼앗긴 밀밭의 울분, 매매된 관직의 울분, 학살당한 제사장의 울분, 파괴된 지성소의 울분, 장신구가 된 법궤의 울분 — 그 모든 울분이 '최고형'이라는 두 글자에 실려 터져 나온 것이었다.
아히노암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졌다. 마지막 히스테리도, 마지막 절규도 나오지 않았다. 소리를 지를 힘이 빠진 것이 아니라, 소리를 지를 의미가 빠진 것이었다. 끝이었다. 진짜 끝.
* * *
처형대는 광장 한쪽에 세워져 있었다.
나무 기둥 두 개. 그 사이에 가로대 하나. 아히노암과 아히마아스가 처형대를 향해 걸어갔다. 병사 넷이 양쪽에서 호위했다. 호위라 쓰고 감시라 읽는.
아히노암의 발걸음이 느렸다. 물집 때문이 아니었다. 다리에 힘이 빠진 것이었다. 한 걸음을 옮기는 데 평소의 세 배 시간이 걸렸다. 아히마아스는 그보다 느렸다. 노인의 다리가 땅에 붙은 듯 움직이지 않았다. 은의 무게를 세던 다리가 죽음의 무게 앞에서 멈춘 것이었다.
처형대까지의 거리는 스무 걸음이었다. 그 스무 걸음 동안, 광장의 백성들은 아히노암을 지켜보았다.
기도하는 이가 없었다.
이스라엘에서 사형수가 처형대로 향할 때, 관례가 있었다. 누군가가 야훼에게 기도를 올리는 것. 사형수의 영혼이 야훼 앞에 설 수 있도록, 마지막 중보 기도를 드리는 것. 죄인이라 해도 야훼의 피조물이었으므로, 마지막 기도만큼은 받아야 한다는 것이 관례였다.
그러나 아히노암과 아히마아스가 처형대로 향할 때, 광장의 천 명 중 — 기도하는 이가 한 명도 없었다.
입술을 움직이는 자가 없었다. 고개를 숙이는 자가 없었다. 눈을 감는 자가 없었다. 천 명의 눈이 뜨인 채 아히노암의 등을 보고 있었다. 놉의 팔십오 명을 위한 기도는 있었다. 길보아의 전사자를 위한 기도는 있었다. 그러나 아히노암을 위한 기도는 없었다.
기도의 부재가 가장 무거운 심판이었다.
야훼 앞에 세워줄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것. 마지막 순간에 '이 영혼을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말해줄 사람이 없다는 것. 은으로 사고, 토지를 빼앗고, 관직을 팔고, 법궤를 장신구로 만든 여자에게 — 야훼의 자비를 구해줄 사람이 이스라엘 전체에 한 명도 남아 있지 않다는 것.
아히노암은 걸었다. 기도 없는 스무 걸음을.
* * *
다윗의 부하들은 바쁘게 움직였다. 사울의 잔재를 잡아들이기 위해서였다. 사랑의 조회 두목인 강후니아스과 도엑 그리고 길갈의 쿠데타 세력은 바로 체포되었고, 아히노암과 아히마아스와 같이 사형에 처해졌다. 그러나 북쪽에서는 다른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아브넬은 길보아에서 살아남았다. 총사령관은 전장에서 도주하지 않았으나, 사울이 칼 위에 쓰러진 뒤 전장을 이탈했다. 살아남은 것이다. 살아남은 뒤, 아브넬은 북쪽으로 갔다.
마하나임. 요르단 동편의 작은 성읍. 아브넬은 이곳에서 사울의 넷째 아들 이스보셋을 왕으로 세웠다. 이스보셋은 사울의 아들이라는 것 외에는 아무런 자질이 없는 청년이었다. 칼을 쥘 줄 모르고, 말을 탈 줄 모르고, 결정을 내릴 줄 몰랐다. 아브넬에게는 완벽한 왕이었다 — 아무것도 하지 않는 왕.
아브넬이 진짜 왕이었다. 마하나임에서 아브넬은 사울의 잔존 세력을 규합하고, 북쪽 지파들을 묶어 다윗과 대치했다. 사울의 왕조는 죽지 않았다. 뿌리가 잘렸으나 줄기가 남아 있었고, 줄기에서 새 가지가 나오려 하고 있었다.
사울의 독초는 뿌리 깊게 남아 있었다.
* * *
예루살렘 광장의 처형이 끝났다.
백성들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저녁 해가 광장 위에 비스듬히 내려와 있었다. 처형대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져 있었다. 그림자 위로 사람들이 걸어 지나갔다. 누구도 그림자를 피하지 않았다. 그림자는 이미 힘을 잃은 것이었으므로.
광장 한쪽에, 다윗이 서 있었다.
유다의 왕. 사무엘이 기름을 부은 자. 요나단이 '이 나라가 아버지와 함께 죽지 않게 해달라'고 부탁한 자. 아비아달이 증인으로 따라온 자. 야훼가 사울보다 나은 자로 선택한 자.
다윗은 처형대를 지켜보았다. 아히노암이 마지막 걸음을 옮기는 것을. 아히마아스의 어깨가 꺾이는 것을. 기도 없는 처형을. 끝까지 지켜보았다.
다윗의 손이 칼자루 위에 있었다. 습관이었다. 광야에서 도망 다니던 시절부터, 다윗의 손은 칼자루 위에 얹혀 있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그런데 오늘, 그 손에 들어간 힘이 평소와 달랐다.
칼자루를 쥔 것이 아니라, 움켜쥔 것이었다.
다윗의 눈이 광장 너머를 보고 있었다. 처형대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처형대 너머의 무언가를 — 예루살렘의 성벽을, 그 성벽 안의 왕좌를, 왕좌 위에 앉을 자신을 보고 있었다.
그 눈에 정의감이 있었다. 사울의 죄가 심판받는 것을 본 자의 정의감. 야훼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확인한 자의 경건함.
그러나 정의감보다 뜨거운 것이 그 눈에 있었다.
야망.
사울이 무너진 자리에 자기가 서겠다는 야망. 사울이 가지지 못한 것을 자기가 가지겠다는 욕망. 야훼의 선택을 받았다는 확신 아래에서 타오르는, 왕이 되겠다는 불길.
다윗은 아직 유다의 왕이었다. 이스라엘 전체의 왕이 아니었다. 북쪽에는 아브넬과 이스보셋이 있었고, 사울의 잔재가 남아 있었다. 그것을 넘어야 했다. 넘어서야 했다.
다윗의 손이 칼자루 위에서 꿈틀거렸다. 정의의 칼인지, 야망의 칼인지는 — 다윗 자신도 아직 구분하지 못하고 있었다.
* * *
사울 왕조는 무너졌다.
기름 부음을 사고, 전리품을 빼돌리고, 제사장을 도륙하고, 번제를 찬탈하고, 지성소를 파괴하고, 법궤를 장신구로 만든 — 사울과 아히노암의 시대가 끝났다.
그러나 사울의 독초는 뿌리 깊게 남아 있었다.
아브넬이 마하나임에서 이스보셋을 세워 잔존 카르텔을 구축하고 있었고, 사울의 충성 지지자들이 각지에 흩어져 새로운 거미줄을 짜고 있었다. 독초는 뿌리가 남으면 다시 자라는 법이었다.
그리고 새 시대의 왕 역시 — 또 다른 욕망을 품고 있었다.
다윗의 눈에 비친 야망의 불길은, 사울의 어퍼컷만큼이나 뜨거웠다. 형태가 달랐을 뿐. 사울은 주먹으로 세상을 때렸고, 다윗은 수금으로 세상을 울렸다. 그러나 주먹이든 수금이든, 권력을 향해 뻗는 손은 같은 손이었다.
예루살렘 광장에서 처형대의 그림자가 지워지고 있었다. 저녁 해가 졌다. 어둠이 왔다. 내일이면 새로운 해가 뜰 것이었다.
새 시대의 해.
그 해가 밝히는 것이 정의인지, 또 다른 야망인지는 — 아직 아무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