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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표 집밥

국방일보 병영칼럼 10

by 이형걸

TV 방송에서 ‘먹방’이 대세다. 인기 연예인이 음식을 한입 가득히 넣고 눈가에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일 때, 그것을 먹지 않고서는 견디기 힘들다. 해외로 나가 하숙이나 푸드트럭에서 우리 음식을 선보이고, 출연자의 집 냉장고 속 음식 재료만을 가지고 요리 경연을 펼치며, 생면부지의 남의 집 초인종을 눌러, 그 집 저녁밥을 같이 먹자고 요청하기도 한다. 시청률이 높은 편은 아니었지만 기억나는 프로그램이 있다. 갈등을 겪고 있는 부부, 연인, 친구들이 등장한다. 서로 꼬여진 관계를 각자의 입장에서 토해내고, 옆에서는 맛있는 요리를 준비하고 있다가, 어느 정도 대화 시간이 지나면 “일단 먹으면서 또 이야기하자”라고 분위기를 유도하는데, 먹다 보니 기분이 전환되면서 서로 화해하는 토크 쇼이다. 함께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더욱 친밀해지며, 돈독해지고, 공감대가 형성되는 좋은 기회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래서 세일즈맨이 상대와 식사 약속을 잡으면 비즈니스의 반은 성공이다. 국가 정상들의 외교에서는 식사 메뉴까지 언론에 공개하며 성공적 회담임을 알린다.

다른 경우도 있다. 오래된 이야기이지만, 새로 부임한 지휘관이 예하 부대를 순시하는데 가는 곳마다 꼬리곰탕이 나왔다. 처음에는 좋아하는 음식을 내놓아 기분이 유쾌했지만, 점점 지겹고 나중엔 짜증이 나더란다. 알고 보니 순시 부대마다 보좌관에게 지휘관 식성을 물어보고 그것을 준비했으니 매번 같은 메뉴를 먹을 수밖에 없었다. 하나 더, 보통 퇴직하고 나면 바깥 생활이 현저히 줄어들어 집에서 식사하는 경우가 많다. 그동안 바깥 생활이 활발해진 아내들은 집에서 세끼를 다 먹는 퇴직 ‘3식이’를 달갑지 않게 여긴다고 한다. 이럴 경우, 관계가 좋아지기는커녕, 오히려 눈총을 받는 사태가 유발된다.


나도 그렇다. 전역을 하고서 세끼를 거의 집에서 먹는데, 여태 보이지 않았던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음식의 ‘생로병사’다. 제철에 나온 신선한 과일,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과 아삭아삭한 김치에 보글보글 찌개, 육즙이 가득한 고기 요리는 ‘새로 태어난’ 음식이다. 음식이 남으면 패킹되어 냉장고로 가거나, 혹은 검정 비닐에 담겨 이 세상을 떠난다. 나는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의 ‘늙거나 김 빠진 음식’을 스스로 먹는다. 하지만 자식이 오는 날은 매번 새로 태어난 음식이 식탁 위에 올라온다. 아내는 손끝에 온 사랑을 모아 정성스럽게 음식을 창제한다. 그 밥이 나에겐 매우 송구하다. 아들도 몸과 마음이 지치면 집으로 와서 ‘엄마 밥’을 먹고 힘을 충전한다. 그래서 엄마 손은~ 약~손 ♬, 엄마 밥은~ 약~밥 ♬ 아니겠는가.


예로부터 귀한 손님에겐 반드시 새 밥을 내놓았다. 그것은 최대의 존중이자 찬양이다. 직장이나 모임에서 대우받지 못하면 ‘찬밥’ 신세라고 했다. 이제 시간에 쫓기고 간편한 식생활을 추구하는 요즘은 외식은 물론, ‘혼밥’이 일상화되었다. 이 시대 ‘엄마표 집밥’은 최고의 셰프 음식이다. 아니, 그 이상 그 무엇이다. 휴가를 받고 영문을 나설 때 엄마가 카톡에 “아들, 뭐 먹고 싶니?”라고 보내면, 우리는 ‘내 아들, 3000만큼 사랑한다’로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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