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듣고 삶을 말하다
삶을 듣고, 삶을 말하다 — 『우리들의 드라마』 북토크 후기
전태일기념관에서 열린 『우리들의 드라마』 북토크에 다녀왔다. 행사장이 꽉 찰 만큼 사람들이 모였다. 객석은 60석뿐이었지만 신청자가 100명이 넘었다고 한다.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한 책을 두고 이렇게 많은 이들이 모였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이 책이 가진 힘을 증명하는 듯했다. 내 인생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책 『우리들의 드라마』는 구술생애사 강좌에서 시작된 작은 모임에서 출발했다. 전문 작가도, 연구자도 아닌 평범한 사람들이 모여 각자 마음에 두었던 이들의 삶을 기록했다. 그중에서 나는 김인자 선생님과 인연이 닿아, 세 명이 팀을 이루어 한 사람의 삶을 기록하게 되었다. 흔치 않은 방식이었다. 대부분 1인 기록이었기에, 세 명이 함께 붙들고 다투고 고민한 우리의 과정은 책 속 글만큼이나 특별했다.
기록되지 못한 사람들의 역사
사회는 이선주 작가님이 맡았다. 작가님이 아니었다면 이렇게까지 오지도 못했을 것이다. 오프닝에서 “역사는 늘 기득권자의 기록으로 채워져 왔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자기 삶의 주인이다. 『우리들의 드라마』는 그 사실을 확인하는 자리”라고 말했다. 구술생애사 강좌에서 시작된 작은 배움이 이렇게 한 권의 책이 되고, 다시 사람들 앞에서 낭독되고 토론되는 과정을 듣자니 가슴이 뜨거워졌다.
장소도 각별했다. 전태일 열사의 정신을 기리는 전태일기념관. ‘6411 버스’를 언급하며 노동자·서민의 삶을 끊임없이 환기했던 노회찬 의원의 뜻이 오버랩되었다. “투명인간의 삶을 손에 잡히게 만들자”는 그의 말이, 이번 책의 주인공들에게도 그대로 닿아 있었다.
1부: 삶을 증언하는 사람들
행사는 두 개의 파트로 나뉘었다. 1부는 구술자와 기록자가 함께 무대에 올라 각자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었다.
첫 번째 주인공, 정양언님과 딸 정연빈 님
연빈님의 이야기를 처음 접했을 때 굉장히 놀라웠다. 실제로 부녀는 닮은 얼굴만큼이나 분위기도 비슷했다. 정양언 님은 1970년대 학생운동, 전교조 활동, 민주노총 지역 의장까지 치열한 삶을 살아온 사회운동가였다. 그러나 지금은 아내를 돌보는 일을 “마지막 운동”으로 삼고 있다. “세상을 바꾸는 운동만큼, 자신을 변화시키는 운동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의 삶을 기록한 이는 딸, 정영빈 님이었다. 어릴 적부터 집회 현장과 투쟁의 노래 속에서 자랐다는 연빈님은 “사건 단편은 많이 알았지만, 생애 전체를 꿰어 보니 아버지가 상황마다 어떻게 방향을 잡아왔는지가 보였다. 새로웠다”고 했다. 가까운 가족이 기록자이기에 오히려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려 노력했다는 말이 깊이 와닿았다. 정양언 님은 “딸에게 인정받는 것만큼 영광스러운 일이 없다”며 웃었다. 간병을 ‘마지막 운동’이라 부른 그의 말은, 돌봄을 사회적 의무이자 삶의 가치로 확장해 보여주었다.
두 번째 주인공, 김인자 님과 기록팀 세 명
두 번째 무대는 나에게 특별했다. 『우리들의 드라마』 작업에서 한 명의 구술자와 세 명의 기록자가 함께 붙들었던 유일한 사례가 바로 김인자 선생님이었기 때문이다. 나 또한 그 기록자 중 한 명으로 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김인자 선생님은 달동네에서 성장해 지역 활동, 해고 투쟁, 그리고 요양보호사 노동 현장까지 온몸으로 겪어낸 인물이다. 북토크 현장에서 선생님은 단호히 말씀하셨다.
“요양병원과 요양원은 다릅니다. 요양보호사는 즐겁게 일해야 돌봄 받는 이도 즐겁습니다. 그러나 지금 제도는 이를 지탱하지 못합니다.” 선생님의 삶을 꿰뚫는 단어는 단연 ‘연대’였다.
세 명이 함께 기록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너무나 파란만장한 생애라 자료 조사만 몇 달이 걸렸고, 단어 하나에도 의견이 달려 긴 토론이 이어지곤 했다. 그러나 바로 그 과정이 있었기에 끝까지 완주할 수 있었다. 혼자였다면 버티지 못했을 벅찬 순간들을, 함께였기에 지나올 수 있었다. 지금 돌아보면 우리의 팀워크 자체가 하나의 연대였고, 그 속에서 나는 김인자 선생님의 삶을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었다.
세 번째 주인공, 故 이한빛 PD의 부모님
마지막으로 무대에 오른 이는 고(故) 이한빛 PD의 부모님이었다. 드라마 <혼술남녀> 연출을 맡았던 그는 방송사 제작 환경의 갑질과 과로 속에서 세상을 떠났다.
구술자는 아버지 이용관 님, 기록자는 어머니 김혜영 님. 독특한 조합이었다. 부부가 함께 아들의 죽음을 이야기하는 건 처음이었다고 한다.
“9년 동안 한빛 이야기를 하려 하면 서로 딱 끊어버렸다. 이번 구술 작업을 계기로 처음 정직하게 말할 수 있었다.”
“속내를 다 털어놓고 허전하기도, 시원하기도 했다. 무기력도 찾아왔지만 결국은 가벼워졌다.”
이 기록은 단순히 한 가족의 애도가 아니었다. ‘애도의 기록’이 곧 사회적 증언이 되고, 또 다른 유가족에게 위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2부
2부에서는 기록자 다섯 명과 멘토 최현숙 선생님이 무대에 올랐다.
최현숙 선생님은 “전문가가 아닌 사람들이 쓴 글이라 날 것 그대로의 힘이 있다. 구술생애사는 ‘나 같은 사람이 나 같은 사람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정치’다”라고 말했다. 이어 “다음에는 더 낙인 짙은 삶, 홈리스·성노동자·발달장애인 등의 이야기를 기록해야 한다”며 과제를 제시했다.
기록자들은 입을 모아 “녹취 90쪽을 10쪽으로 줄이는 게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 원고를 여러 차례 외부에 보여주며 피드백을 받고 다듬는 과정에서, 스스로도 삶의 의미를 다시 새길 수 있었다.
책이 세상에 나오자 주변 반응도 다양했다. “언제 이런 걸 다 했냐”는 놀라움부터, “노동자라는 호칭의 무게를 이제야 알겠다”는 깨달음까지. 기록자들은 자신을 ‘주인공을 빛내는 조연’이라 불렀다.
구술자들도 소감을 밝혔다.
“처음으로 내 인생을 정리해 털어놓았다."
“누구에게도 기대지 못했는데, 기록자가 들어줘 가능했다."
“찌질한 삶이라 생각했지만, 누군가 들어주자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질의와 응답
관객 질문도 이어졌다. 정양언 님의 아내이자 연빈님 어머님인, 소설가 이정연님의 작품 제목이 소개되었고(『그녀들의 자리는 없다』, 『여름의 여름』), 발달장애인 구술 방법에 대한 질문도 나왔다. 최현숙 선생님은 이렇게 답했다. “시간과 친밀감이 중요하다. 밥 먹고 수다 떨며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한다. 일목요연하지 않아도 괜찮다. 불완전함 자체가 기록될 수 있어야 한다.”
마무리 — 삶을 듣고, 삶을 말하다
2시간이 훌쩍 넘는 시간이었지만, 누구도 자리를 뜨지 않았다. 사회자는 “누군가의 삶을 경청하는 것이 우선이고, 그것이 곧 연대”라고 북토크의 부제를 다시 확인했다.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우리들의 드라마』는 구술자들의 드라마인 동시에 기록자들의 드라마이기도 하다라는 말을 떠올려ㅆ다. 김인자 선생님의 삶을 쓰는 동안, 나는 나 자신의 삶을 돌아보았다. 기록은 누군가의 이야기를 남기는 동시에, 나에게 질문을 돌려준다. “너는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어떤 연대를 만들어가고 있는가?”
삶을 듣고, 삶을 말한다는 것. 인터뷰나 글쓰기를 넘어, 서로를 인간으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행위였다. 이번 북토크는 그 사실을 온몸으로 확인하는 자리였다. 기록자로서의 첫 발자국, 떨림과 감동 속에서 나는 조금 더 단단해졌다. 얼마 쓰지도 않았지만 너무나도 과분한 결과물을 받았다. 노회찬재단 분들, 박규님 실장님, 이선주 작가님, 후마니타스 출판사 분들, 그동안 함께 했던 모든 분들께 감사하다.
북토크에서 미처 다 하지 못한 말
북토크 무대에서는 시간의 한계로 다 전하지 못했지만, 사실 나는 이런 답변들을 준비해 갔다. 이제라도 그 기록을 이곳에 남기고 싶다.
기록자의 발견
기록을 하며 새롭게 본 건, 김인자 선생님이 강인하면서도 동시에 따뜻하고 섬세한 분이라는 점이었다. 어린 시절 친구들을 떠올리며 마음 아파하실 때, 요양 현장에서 어르신들을 향한 깊은 연민을 이야기하실 때, 나는 그 강단 속의 부드러움을 보았다. 자료조사를 하며 선생님의 SNS를 처음부터 살펴보았는데, 삶의 이면마다 다채로운 경험과 감정이 켜켜이 쌓여 있음을 발견했다. 세 명이 각자 다른 시선으로 바라본 조각들이 퍼즐처럼 맞춰져, 선생님의 생애는 입체적인 초상으로 다가왔다.
협업의 어려움
세 명이 함께 하다 보니 단어 하나, 조사 하나에도 의견이 달랐다. 같은 장면을 두고도 해석이 엇갈려 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하지만 그 과정이 오히려 선생님의 삶을 더 깊이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한 사람의 이야기를 세 갈래로 보고 다시 하나로 엮는 일은 쉽지 않았지만, 그래서 혼자였다면 감당하기 어려웠을 기록이 더 풍성해질 수 있었다고 믿는다.
생애의 빛깔과 기록의 무게
최종 원고에는 담기지 못했지만, 선생님의 지난 세월은 곧 한국 근현대사이자 노동사였다. 처음 이야기를 들을 때는 ‘이 모든 것이 실제일까’ 싶을 정도였다. 노동 현장, 투쟁의 현장, 굵직한 사회적 장면마다 선생님이 계셨다. 한 개인의 삶이 이렇게 많은 무게를 짊어질 수 있음을 곁에서 확인하는 일은 기록자로서도 벅찼다. 때로는 글을 쓰는 내 손이 무거워 멈추기도 했다.
인상 깊은 순간과 메시지
가장 마음에 남은 장면은 쌍용차 투쟁 이야기였다. 같은 노동자들이 서로에게 돌을 던져야 했던 비극을 떠올리며, 선생님은 단호히 말씀하셨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그 순간 나는 ‘연대’의 의미를 새삼 되새겼다.
결국 이 책이 전하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고통 속에서도 서로를 지켜내려는 마음, 바로 그 연대가 우리를 버티게 한다는 것. 독자로서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으며도 같은 울림을 느꼈다. 첫 문단 손석희 교수님의 추천사에서 말한 “안 가져도 될 부끄러움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표현과, 마지막 장에 담긴 기록자 김혜영 선생님의 “떳떳하게 살고 싶다”는 선언이 서로 맞닿아 있었다. 대부분의 구술자와 기록자들은 부끄러움과 떳떳함 사이에서 흔들리며 살았다. 그 사이에서 우리는 결국 어떤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가를 이 책은 묻고 있었다. 『우리들의 드라마』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삶의 증언이었다.
팀 작업의 조언
세 명이 함께 한 기록 경험은 내게 큰 배움이었다.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역할과 일정을 분명히 정했고, 회의 때는 ‘누가 옳으냐’보다는 ‘어떤 표현이 독자에게 더 잘 닿을까’를 기준으로 의견을 모았다. 무엇보다도 늘 김인자 선생님을 중심에 두었다. 작업자끼리의 차이를 인정하는 것, 그 차이가 기록을 더 풍성하게 만든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 운 좋게도 나는 멋진 두 분 동료를 만나 많이 의지할 수 있었고, 함께라서 버틸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