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크리트 녹색섬'이 던지는 질문: 사라지는 것들의 가치
건축, 사회적 가치를 조명하다
올해로 17회를 맞은 서울국제건축영화제를 찾았다. 평소 로컬리티와 장소성에 기반한 기록을 하고 싶었기에 관련 영화가 있을 것 같아 시간을 내어 방문했다. 기후 위기, 공동체, 지역성 등 우리 사회의 다양한 과제들은 비단 정치나 경제의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 모든 문제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 즉 '건축'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서울국제건축영화제는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하는 듯하다. 단순히 아름다운 건물을 보여주는 것을 넘어, 건축이 지닌 사회적 가치와 의미를 탐구하며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는다.
처음에는 ‘로리 올린의 응시하는 삶’을 보기 위해 갔으나, 프로그램 북을 보고 '콘크리트 녹색섬'(이성민,2024) 을 추가로 예매했다. 이 영화는 재건축이라는 거대한 변화 속에서 잊히고 사라져가는 것들의 가치를 되묻는다. 이성민 감독의 7년간에 걸친 기록은 그 자신이 살았던 개포동 주공아파트의 재건축 과정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감독은 처음에는 홀로 기록을 시작했으나, SNS를 통해 다른 주공아파트 기록자들과 공감대를 형성하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개포동 그곳'이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사람들과 함께 기억을 기록하는 작업을 하였다. 오랫동안 떠나 있었던 고향과 같은 공간이 급변하는 모습을 보며, 단순한 물리적 공간이 아닌 기억과 추억을 담고 있는 공간의 의미를 되새기고 싶었다고 한다. 이러한 개인적인 경험은 곧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는 기록 프로젝트로 확장되었고, 결국 한 편의 다큐멘터리 영화로 탄생했다. 이 영화는 시대와 사람들의 삶, 그리고 그 속에서 함께 숨 쉬던 자연이 어떻게 사라지고 기억되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질문과도 같았다.
사라지는 숲, 남겨진 '녹색섬'
이 영화는 특히 사람들과 함께 숨 쉬던 나무들에 집중한다. 재건축 단지 한가운데 홀로 남겨진 나무들은 영화 속에서 '녹색섬'이라 불린다. 이 '녹색섬'은 재건축 현장의 황량함 속에서도 굳건히 버티는 생명력을 상징한다. 이 나무들은 지하주차장 위 얕은 흙에서 자란 것이 아니라, 단단한 진짜 땅에서 오랫동안 뿌리내려 성장한 것들이다. 감독은 재건축을 앞둔 낡은 아파트와 그곳에 굳건히 서 있던 나무들을 보며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고 했다. 몇 년에 걸쳐 같은 공간을 방문하며 이 나무들을 기록하러 갈 때마다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는 조마조마한 마음을 느꼈다고 한다.
GV(관객과의 대화)를 통해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감독은 재건축 현장에서 나무들이 쓰러지는 모습을 볼 때마다 조마조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고 한다. 심지어 자신과 상관없는 동네의 나무인데도, 나무들이 베어지는 것을 보며 병원에 두고 온 소중한 존재 같다고 느낄 정도로 깊이 공감했다. 감독은 나무가 베어질 때 뿌리까지 흔들리는 엄청난 소리와 함께, 영화에 다 담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하고 황홀한 나무 향기를 경험했다고 했다. 이 경험을 통해 나무가 진정으로 살아있는 존재임을 온몸으로 느꼈다고 한다.
슬프게도, 아파트 건설사들은 새로운 아파트를 홍보할 때 '환경적인 아파트', '나무가 많고 조경이 아름다운 아파트'라고 강조하지만, 막상 재건축 과정에서는 나무들을 보존하는 기준이 결국 '돈'의 문제로 귀결되는 아이러니한 현실을 감독은 지적했다. 조합에서 나무를 옮기는 비용이 몇 백에서 혹은 억까지 달한다는 설명을 들었을 때, 감독은 자신이 했던 일이 무의미한 것은 아닐까 하는 힘든 생각까지 했다고 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알 수 없는 가능성들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고 했다.
작은 시작이 만든 큰 울림
감독은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했다"는 인상 깊은 말을 남겼다. 처음에는 재건축으로 모든 것이 사라지는 상황에서 기록하고 기억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프로젝트가 진행되면서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이들의 질문과 응원에 힘입어 변화의 가능성을 찾게 되었다고 한다. 놀랍게도, 벌목업체 사장님처럼 예상치 못한 이들도 감독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들은 재건축 현장에서 함께 일하는 '연극 배우'처럼 자연스럽게 가까워졌으며, 기록 활동뿐만 아니라 나중에 나무들을 기념하는 데까지도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감독은 세상의 다양한 시각을 이해하고, 작은 움직임이 큰 협력과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재건축, 새로운 시작과 상실의 공존
영화 속에서 시청 공무원이 "왜 그렇게 나무에 집착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장면은 재건축에 대한 일반적인 사회의 시각을 보여준다. 많은 사람이 재건축을 통해 새로운 아파트를 얻고, 도시의 발전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는 재건축이 단지 새로운 시작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영화 상영 후 한 관객은 재건축으로 인해 고향 집이 없어진 경험을 이야기하며, 도시에서도 상실의 아픔이 있음을 공감했다. 또 다른 관객은 영화를 보고 나서 재건축 과정에서 기존 나무들이 사라지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처럼 **'콘크리트 녹색섬'**은 재건축이 가져오는 편리함 이면에 감춰진 상실감과 기억의 중요성에 대해 우리에게 깊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특히 건축물보다는 생명체를 지닌 나무에 주목한 것이 큰 인상을 남겼다고 관객들은 이야기했다.
사라지는 것들의 가치, 우리에게 남겨진 질문
감독은 영화를 통해 기억의 가치와 환경적 가치를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다고 한다. 더 나아가, 재건축 과정에서 발생하는 많은 탄소 배출 문제에 주목하며, 탄소 전 과정 평가에 토양과 식생이 포함되어야 한다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이러한 평가가 포함되면 경제적인 가치 또한 올라갈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고 하니, 정말 희망적인 이야기이다.
감독은 재건축 단지에 있는 오래된 나무들이 환경 평가에 누락되는 문제처럼,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들을 보완할 수 있도록 조례 개정과 같은 노력을 통해 수목 보존의 가능성을 높이고 싶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이 영화는 단순히 과거를 기억하는 것을 넘어,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더불어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우리 모두가 **'콘크리트 녹색섬'**이 던지는 질문에 함께 답하며,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들어가기를 기대한다.
영화가 남긴 힘, 기록의 가치를 깨닫다
'콘크리트 녹색섬'은 관객들에게 재건축 과정에서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노원 상계주공아파트에 거주하는 한 관객은 영화를 본 후, 재건축으로 사라질 주변의 추억들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는 점에 공감하며 기록의 중요성을 깨달았다고 했다. 직접 재건축에 관여할 용기는 없지만, 자신도 기록을 남기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고 전했다.
이러한 고민에 대해 이성민 감독은 자신만의 도구를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카메라, 글 등 스스로에게 가장 익숙한 도구를 선택하라는 것이다. 또한, 나무에 이름을 지어주는 것처럼 오래 기억할 수 있는 '자신만의 아이디어'를 찾는 것이 기록을 지속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감독은 과거 개포동을 기록할 당시 "그만 가라", "미련이 많다", "이제 그만 잊어라"는 주변의 부정적인 시선을 많이 받았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 기록 활동은 "과거를 기억하려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를 위한 것"이라는 확신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나는 이 부분에서 많은 힘을 얻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미래를 위해 기록 활동을 이어가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기록 활동에 대한 더 자세한 정보는 감독이 운영했던 페이스북 페이지 '개포동 그곳'에서 아직까지 찾아볼 수 있다. 영화 콘크리트 녹색섬은 우리 삶의 공간과 기억을 기록하는 주체적인 활동으로 이어지는 의미 있는 움직임을 만들어냈다.
이 영화는 “사라짐을 기록하는 것이 곧 새로운 생태적·사회적 대안을 모색하는 길”임을 보여준다. 기록은 끝내 과거에만 머무르는 일이 아니라, 미래를 향한 실천이 될 수 있다. 건축과 환경, 공동체를 아우르는 이러한 질문들은 서울이라는 도시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로컬’에서 여전히 유효하다. 앞으로도 ‘콘크리트 녹색섬’이 던진 질문이 더 많은 이들의 기록과 실천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무엇보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며, 기록자로서 나 또한 사라지는 것들의 가치를 어떻게 남길 것인가라는 질문을 깊이 새기게 되었다. 누군가에게는 사소하게 보일지라도, 언젠가는 돌이킬 수 없는 상실이 될 순간들을 붙잡아두는 일이야말로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시작일 것이다. 앞으로 나의 기록 또한 단순히 과거를 붙드는 일이 아니라,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발화되는 기억이 되기를 다짐한다.
참고
박관희. (2025, 9월 10일). 서울국제건축영화제, 9월 12~25일 개최…서울 소재 아트하우스 모모서 오프라인 상영. 대한건축사협회 건축사신문. https://www.ancnews.kr/news/articleView.html?idxno=19603 최연하. (2024, 9월 23일). ISSUE 54_ EPA FOCUS _ '콘크리트 녹색섬'을 아시나요?. 숲과나눔 웹진, (54). https://ecophotoarchive.org/webzine/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