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없음의 즐거움에 대하여
어쩌면 우리 모두는 '노상관찰자'이다:
쓸모없음의 즐거움에 대하여
최근 『노상관찰학 입문』이라는 책을 접했다. 1986년 일본에서 처음 출간되어 '노상관찰학(路上観察学)'이라는 개념을 세상에 알린 책이다. 낯선 단어였지만, 책을 읽으며 필자는 기시감과 함께 스스로의 행동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길 위의 기록자
나는 언제부턴가 무용한 것들에 마음이 끌렸다. 목적지 없이 걷는 산책을 즐겼고, 경제적 가치와는 거리가 먼 풍경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한때는 동네 구석구석 길고양이들을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기도 했다. 그 열정은 '야옹파파라치'라는 스타벅스 닉네임으로 남았다. 최근에는 관심사가 길 위나 담벼락에 붙은 '주차 금지', '쓰레기 무단 투기 금지' 같은 경고문들로 옮겨갔다. 몇 년 전에는 카페에 앉아 특정 패션(모나미룩, 베이지 트렌치코트)을 입은 사람이 몇 명이나 지나가는지 세어보기도 했다.
이러한 행동들이 '노상관찰학'이라는 이름으로 불릴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스스로 '노상관찰자'라고 칭하는 이들은 도시 길거리에서 발견되는, 실용성이나 생산성과는 무관한 사물과 현상들을 오직 재미와 호기심으로 관찰하고 기록한다. 책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초예술 토마슨(超芸術トマソン)'은 그들의 핵심 관찰 대상인데, 건물에 기능 없이 남겨진 계단이나 문처럼 본래 용도를 상실한 채 존재하는 불가해한 흔적들을 의미한다.
고현학과 노상관찰학
책은 노상관찰학의 뿌리가 곤 와지로(今和次郎)가 창시한 '고현학(考現学)'에 있다고 설명한다. '옛것을 연구하는' 고고학(考古学)과는 달리, 고현학은 '현재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곤 와지로는 1923년 간토대지진으로 폐허가 된 도쿄 거리에서, 사람들이 임시방편으로 만들어낸 간판, 옷차림 등 살아있는 현재의 모습을 스케치하고 기록하며 고현학을 시작했다.
하지만 『노상관찰학 입문』의 저자들은 1980년대에 이르러 '고현학'이라는 말이 상업적으로 오염되었다고 비판했다. 잡지 등에서 가볍게 사용되는 것을 경계하며, 곤 와지로의 초기 정신, 즉 어떤 '욕구'나 '쓸모'를 배제하고 사물 자체의 재미를 순수하게 관찰했던 자세로 돌아가고자 '노상관찰'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했다
그들은 예술이나 학문의 기존 질서에서도 벗어나고자 했다. 예술이 작가의 '의도'를 '감상'하는 것이라면, 노상관찰은 의도 없이 존재하는 '물건'을 '관찰'한다. 전문화되고 세분된 학문의 틀을 거부하고, 소비지상주의('소비제국')와도 싸우며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했다.
쓸모없음의 미학
책에서 특히 흥미로웠던 부분은 노상관찰자들이 어떻게 이 '쓸모없는 짓'에 빠져들게 되었는지 밝히는 대담이었다 전위예술가, 건축사가, 편집자, 일러스트레이터, 치과의사 등 다양한 배경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면면을 보면 각자의 분야에서 누구보다 '유용한' 삶을 살았을 법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무용한 것'에 대한 열망이, 역설적으로 너무나 '유용한' 인간으로 살아가던 이들의 반작용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용한 것만이 가치 있다고 여겨지는 세상은 모든 것을 '유용성'이라는 잣대로 획일화한다. 시간 사용 방식부터 미래 설계까지, 사회가 권장하는 좁은 길 안에서 움직이도록 압박한다. 그러다 문득 "왜 나는 꼭 유용한 일만 해야 하지?" 하는 반발심과 함께, 기꺼이 '무용한 것'을 찾아 나서는 시간이 온다. 쓸모없음의 추구는 때로 유용성 일색인 세상에 대한 비판 의식에서 비롯될 수 있다.
책 속 구절처럼, "세상 사람들이 보았을 때 가치가 없는 것에 자기가 직접 가치를 매기는 일은 정말 용기가 필요하다." 이는 사회가 만든 획일적인 가치 기준에 도전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노상관찰자들은 바로 그 용기를 내어, 맨홀 뚜껑에서 우주를 보고(하야시 조지), 철거되는 건물의 파편에서 역사의 숨결을 느끼며(이치키 쓰토무), 길 위의 모든 것을 스승 삼아 걷는 법(하야시 조지)을 배운다.
다시, 길 위에서
최근 여러 활동으로 분주해지면서 소중한 산책 시간이 줄어들었다. 노상관찰이라는 이름이 아니어도 좋았다. 그저 걷고, 보고,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사소한 것들에서 예기치 못한 즐거움을 발견하던 시간이었다. 잠시 잊고 지낸 그 '쓸모없는' 시간의 소중함을 이 책을 통해 다시금 떠올렸다.
이제 다시 카메라를 들고 길 위로 나서야겠다. 오늘은 또 어떤 '초예술 토마슨'이, 어떤 무용한 아름다움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어쩌면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는 이름 모를 노상관찰자 한 명쯤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