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드라마》 북토크, 서점 그날이 오면에서
기록되지 않으면 사라질 이야기들
— 《우리들의 드라마》 북토크, 서점 그날이 오면에서
1988년 문을 연 그날이 오면은 서울대 앞에서 30년 넘게 인문·사회과학 전문서점으로 버텨왔다. 이곳은 한때 젊은 지성인들의 약속 장소였고, 연락망이었고, 세미나실이었고, 연대의 출발점이었다. “우리 사회에 필요한 지식을 유통하는 통로”라는 자부심으로 자리를 지켜왔고, 공간을 여러 번 옮겼지만 끝내 처음의 자리로 다시 돌아왔다. 이런 공간에서 《우리들의 드라마》 북토크가 열렸다는 사실은 매우 뜻깊다. 이 책이 기록한 것은 위대한 영웅의 전기가 아니라 기록되지 않으면 사라질 뻔했던 ‘보통 사람들의 삶’이기 때문이다. 노동자, 여성, 돌봄 노동자, 봉제 노동자, 그리고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싸우고 살아가는 사람들. 이름 없는 사람들의 생각과 질문, 삶의 궤적이 머무를 자리를 내어주는 일, 책으로 남기고 다시 사람들 사이로 불러내는 일. 우리는 어떤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가, 누구의 삶이 기록되고 누구의 삶이 지워지는가라는 질문에 현재의 목소리로 다시 답하는 자리였다.
김인자 선생님과 배서연 선생님의 이야기는 이 공간의 역사와 정확히 겹쳤다. 가난하고 밀려나고 그러나 끝내 사라지지 않았던 삶들. 우리는 어느 한 날, 한 시에 함께 있었다. 그 삶을 ‘이야기해도 되는 것’으로, ‘들어야 할 이야기’로 만들었다. 지금 이 시대에 이런 서점이 남아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서점에서 여전히 사람들의 삶이 말해지고 있다는 사실은 엄청난 일이다. 《우리들의 드라마》 북토크는 이 서점이 왜 사라지지 않았는지를, 그리고 왜 앞으로도 필요할 수밖에 없는지를 조용히 증명한 밤이었다.
북토크를 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메일을 보내고 나서 서점 그날이 오면의 김동운 대표님에게 답장을 받았을 때, 먼저 든 감정은 감사함이었다. 연말이라 일정 잡기 어려운 시기였고 여러 곳에서 따뜻한 답을 받았지만 바로 진행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런데 대표님은 망설이지 않고 자리를 열어주셨고, 그렇게 한 달 만에 북토크는 ‘호다닥’ 현실이 되었다. 준비하는 내내 고마움과 부담이 동시에 있었다. 진행을 맡아주신 박소현 매니저님께도 진심으로 감사하다.
이번 북토크는 기록자와 구술자가 함께 무대에 서는 형식이 아니었다. 나 역시 아쉬움은 남았다. 구술생애사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했어야 했나 하는 마음, 함께 기록한 장상화 선생님과 김태웅 선생님과 나란히 서지 못한 아쉬움도 컸다. 이번에도 태웅 님이 현장에서 묵묵히 사진을 찍어주고 말없이 뒤에 있어 주어 더 고마웠다.
이날의 북토크는 노회찬재단과 그날이 오면 서점이 함께 주최한 자리였다. 구술생애사 기록집 《우리들의 드라마》 속 주인공인 김인자 선생님과 배서연 선생님의 삶을 직접 듣는 시간이었다. 이야기를 들으며 계속 같은 질문이 맴돌았다. 우리는 왜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야 할까. 왜 굳이 이렇게 시간을 들여 마음을 써야 할까. 나는 늘 이 질문 앞에서 마음이 불편해진다.
김인자 선생님의 이야기는 단단했다. 가난했던 유년, 여성 노동자로서 겪어야 했던 모욕과 분노, 그리고 지금까지 이어지는 돌봄 노동과 노동운동의 현장. “지구가 내 방석이다”라는 어린 시절의 말은 세상을 이겨냈다는 선언이라기보다 세상이 나를 함부로 정의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태도처럼 들렸다. 나는 그 당당함 앞에서 자꾸 작아졌다. 부끄러웠다. 나는 여전히 그렇게 말하지 못하는 사람이라서.
배서연 선생님의 삶은 또 다른 방식으로 나를 흔들었다. 평생 봉제 노동자로 일하며 살았고, 뒤늦게 공부를 시작해 자신의 이름으로 삶을 다시 써 내려간 사람. 버려지는 자투리 천으로 팔토시를 만들고 약자를 위한 물건을 만드는 이야기 속에서 연대는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계속 선택하는 생활 방식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판소리를 하는 배서연 선생님은 직접 판소리 <흥보가> 한 대목을 열창하며 공간을 사로잡았다.
나는 내내 당당하지 못했다. 여전히 머뭇거리고 확신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작게 만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두 분의 삶을 따라가며 나의 부족함이 부끄러움으로만 남지는 않았다. 사랑은 나의 범위가 확장되는 것이라던데, 이 자리는 그런 사람들이 모인 곳이었기 때문이다. 내 일이 아닌 것을 내 일처럼 돌보고, 타인의 삶을 자기 삶의 일부로 끌어안는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 잠시나마 나도 함께 있었다. 그리고 나도 왠지 그런 사람이 된 것 같다는 착각이 들었다.
이야기가 깊어질수록 기록의 의미가 또렷해졌다. 기록되지 않으면 사라질 이야기들, 말해질 기회를 갖지 못했던 삶들. 이 북토크는 그 삶들을 ‘대단한 역사’로 만들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사소한 개인사’로 축소하지 않았다. 그 중간 어딘가에서 삶은 그대로의 밀도로 존중받았다. 기록이란 결국 누군가의 시간을 박제하는 일이 아니라 다시 말해질 수 있도록 자리를 내어주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북토크가 끝났을 때 마음이 몽글해졌다. 정리되지 않은 감정들이 가슴 어딘가에 차곡차곡 쌓인 느낌이었다. 누군가는 위로받았고 누군가는 다시 분노했고 누군가는 조용히 자기 삶을 돌아보았을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여전히 게으르고 한 것이 없다. 내 선택과 결과물은 늘 모자라고 부족하다. 언제쯤 도달할 수 있을까. 나는 과연 나의 세계를 확장할 수 있을까. 지금의 나는 그저 여기저기 맴돌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이 밤이 분명히 알려준 것이 있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일은 그 사람을 위해서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아직 당당해지지 못한 나를 아주 조금 더 멀리 데려다주는 일이라는 것. 기록되지 않으면 사라질 이야기들, 그러나 한 번이라도 제대로 들은 이야기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아마 그래서 우리는 계속해서 이야기를 듣는 쪽을 선택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나 역시 내 삶을 조금 더 넓은 목소리로 말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너무 많은 사람들이 힘써주신 덕분에 이 자리에 함께할 수 있었다. 서점 그날이 오면, 노회찬재단, 구술생애사팀 1기, 2기, 3기 선생님들, 김인자 선생님을 위한 꽃을 준비해 준 대학원 동기들, 그리고 이 밤을 함께 채워주신 모든 분들 덕분에 연말이 유난히 따뜻했다. 오래 기억하고 싶은, 그런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