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감찬관악종합사회복지관 실천사례집 핵사곤 프로젝트

사람과 사람 사이, 그 안락한 육각형의 온기

by 학이지지

사람과 사람 사이, 그 안락한 육각형의 온기

— 《핵사곤 프로젝트》를 읽고


강감찬관악종합사회복지관의 사회사업가들이 펴낸 실천 사례집 《핵사곤 프로젝트》를 덮으며, 나는 오랜만에 ‘전문성’이라는 단어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동안 나는 전문성을 얼마나 많은 기술과 방법, 성과의 언어로 오해해 왔을까. 이 책은 복지 서비스를 얼마나 잘 전달했는지를 증명하지 않는다. 대신 무너진 관계의 선들을 하나씩 다시 이어 붙이며, 한 사람이 다시 자기 삶 안에서 숨 쉴 수 있도록 돕는 시간을 기록한다. 그 과정은 치열하지만, 무엇보다도 따뜻하다.


이 책에서 사회복지사는 모든 문제의 해결자가 아니다. 오히려 자주 물러선다. 기다리고, 지켜보고, 조정한다. 사람을 관리하는 일이 아니라, 사람이 자신의 삶을 주인되게 살 수 있도록 돕는 일이라는 오래된 사례관리 정의가 이 책에서는 구체적인 장면으로 살아 움직인다. 관리비가 제때 납부되지 않아도, 술 문제가 반복되어도 관계는 쉽게 끊기지 않는다. 문제보다 사람이 먼저 놓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해결사’가 되고 싶어 했던 김사장님에게서 강점과 ‘가치 있는 사회적 역할’을 발견해 가는 과정은, 사회사업가의 역할이 무엇인지 다시 묻게 만든다. 사람을 바꾸는 일이 아니라, 사람이 다시 자기 자리에 설 수 있도록 곁에 머무는 일.


“역사를 알면 삶이 다르게 보인다”라는 문장은 유독 오래 마음에 남았다. 농경사회에서 마을 공동체와 어우러져 살았던 정신장애인의 역사를 따라가다 보니, 우리가 얼마나 오랫동안 ‘배제’라는 이름으로 특정한 삶들을 사회 밖으로 밀어내 왔는지를 마주하게 된다. 그동안 나는 얼마나 많은 삶을 깊이 알지 못한 채 이해했다고 착각해왔을까. 배경을 충분히 알지 못한 상태에서, 나도 모르게 내려왔던 섣부른 판단들이 떠올랐다.


이 책에서 제안하는 사회 통합은 거창하지 않다. 치료나 프로그램이 아니라, 카페에서 주문하고, 보드게임을 하고, 동네 편의점 사장님과 인사하는 일상에서 시작된다. “제가 이렇게도 살 수 있군요”라는 샘물 님의 감탄사는 오래 마음에 남는다.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는 평범한 기회가 누군가에게는 생애 처음 맛보는 달콤한 초콜릿 같은 경험일 수 있다는 사실. 그 장면 앞에서 나는 깨달았다. 다양성에 대한 민감성은 올바른 태도를 취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내가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를 자각하는 상태, 바로 거기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이 책은 밀도 있는 관계와 느슨한 관계 중 무엇이 더 중요한지를 묻지 않는다. 대신 둘 모두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곁을 지키는 끈끈한 연대도 중요하지만, 드나듦이 자유롭고 부담 없는 느슨한 연결 역시 사람의 삶을 버티게 하는 중요한 축이다. 서로 다른 밀도의 관계들이 겹겹이 쌓일 때, 삶은 한 번의 충격으로 무너지지 않는다. 육각형이 하나의 선에만 의존하지 않듯, 사람의 삶 역시 여러 관계가 함께 받쳐줄 때 비로소 안전해진다.


이 지점에서 나는 사회사업가로서의 역할뿐 아니라, 사회사업가가 아닌 나의 인생 역시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떠올렸다. 누군가를 돕는 자리에서만 관계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내 삶 안에서는 어떤 거리에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지속 가능한 실천은 지속 가능한 삶 위에서만 가능하다는 것. 그 단순한 진실을 이 책은 조용히 보여준다.


실천사례집은 늘 조용하다. 화려하지 않고, 대단해 보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 조용함 속에는 분명한 윤리가 있다.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는 태도, 결과보다 과정을 존중하는 자세, 혼자가 아니라 함께 버티는 방식. “불행을 막아주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눈을 가려주고 함께 맞닥뜨려 주는 것”이 가장 따뜻한 위로라는 말처럼, 이 책 속 사회복지사들은 당사자의 곁을 묵묵히 지키는 따뜻함이 되어준다.


오랜만에 실천사례집을 읽었다. 설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잊지 않기 위해서. 사람과 사람 사이를 좋게 만드는 일이 여전히 가능하다는 것을, 다시 믿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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