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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학이지지 Nov 29. 2021

소개팅 관찰기

  들을려고 들은 건 아니었다. 귀가 아파 이어폰을 꽂을 수 없는 요즘, 카페에 혼자 있는데 옆 테이블 목소리가 크거나 너무 또렷이 들리면 자연스레 귀가 움직인다.

  코로나 시대에 소개팅은 어떻게 진행되는가, 인연은 어떻게 만나나, 도대체  어떤 주제로 대화를 하는가. 친구들의 소개팅 소식도 가끔이지만, 주변에 인연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보면 열심히 응원하게 된다. 대신 절대 겉으로 표현하지 않고 속으로만 응원한다.

  "00씨는요?", "아~ 저도요~", "그러셨구나~", "우와~" 라는 말들이 들리면 그들의 대화에 어쩔 수 없이 집중하게 된다.


  소개팅1

  금요일, 오후 8시

  나는 운동가기 전 시간이 남아 잠시 카페에 들렸다. 창가 테이블에 창을 등지고 앉았다. 옆테이블에서는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자와 남자가 손을 잡고 서로 진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수수한 외모지만 적당히 똘끼 있어보이는 여자, 거래처에 한 명쯤은 있는 까칠한 대리 같아보이는 남자. 둘은 술을 마신 뒤 카페에 왔다.

  남자는 거듭 여자에게 취했냐  물었다. 여자는  웃으면서 애교스럽게 아니라고 답했다. 이 대화만 20분동안 반복적으로 오가기에 내 귀는 자연스럽게 쫑긋거렸다. 도대체 이 대화의 끝은 어디일까 궁금해졌다. 집이 일산인 여자는 당장의 귀가를 거부했다. 남자의 의사가 궁금해졌다. 이 여자를 보내고 싶은건가, 밤을 함께 보내고 싶은건가. 여자가 화장실을 갔을 때 남자는 폰을 보며 어딘가에 연락을 하고 있었다. 여자가 다녀온 뒤 남자가 화장실을 갔다. 여자는 그 사이 화장을 고쳤다. 아까는 분명 풀린 눈빛이었는데 화장을 고치는 그 얼굴에서는 분명한 눈빛이 보였다.  립밤을 블러셔로 활용하며 재빠르게 바르는 그녀의 손길이 부지런해보였다. 시간은 어느덧 여덜시 사십오분.  이 대화의 끝은 나지 않았다. 그들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졌다. 누가봐도 소개팅 말투. 포장하고 있는 듯 해도 조금씩 자신의 진짜모습이 삐져나오는듯한 느낌. 반말과 존댓말을 오가며 이미 친근해진 듯한 그들의 대화에 나 말고 많은 이들이 집중하고 있었다.

  나가자고 하는 남자에게 어딜가냐며 재차 묻는 여자. 남자는 어디든이라고 답했고 여자는 답답해했다. 나는 드라마 속 엑스트라가 된 듯한 느낌이었다. 그들의 드라마를 응원했다. 몽글하진않고 찐득한 느낌이었지만 그것대로 나쁘지않았다. 아홉시 이십분이 되어서야 그들은 카페를 나섰고 나는 운동을 가지 못했다.


  소개팅 2

  일요일,  오후 2시.

  20대 후반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녀. 남자는 여자의 이야기에 열심히 반응 중. 여자는 끈적한 느낌은 들지만 차분한 말투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가볍지않고 울림이 있는 목소리 톤. 그래도 평소보단 들떠있는 톤. 여자의 호감이 느껴졌다. 서로의 직무, 가족관계에 대해 질문하고 대답한다. 멀리서보니 설레보였지만 그들의 대화는 전쟁 같았다. 어느 순간 여자만 이야기하고 있다. 남자의 표정을 읽을 수가 없었다. 남자는 어떤 상황이었을까?여자는 장녀에 나름 화목한 가정에서 자란 듯하다. 아님 그건 연기인걸까?포장인걸까? 알 수 없지만 자신의 긍정적 모습을 어필하고 있다. 생글생글 웃으면서 말이다. 상대의 취향과 일상을 나누려는 그 모습이 너무 예뻐보인다. 남자가 좀 더 반응해주면 좋았을텐데 티키타카가 아쉽다.

  카페에서 소개팅을 여러번 우연히 보게 되면, 첫소개팅 에서 여자는 싫지않아요와 싫어요 중 하나.  남자는 좋아요, 좋지않아요의 느낌 중 하나를 선택하여 보여주는 것 같다. 하지만 일요일의 여자는 솔직하고 당당해보인다. 예의가 아닌 진심을 전하는 듯하다. 무튼, 잘되었음 좋겠다.


 이 사람은 나의 인연일까. 이 소개팅 시간이 헛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서로 좋아하는 마음이 확인되었고 두근거림에 한시간이 십분처럼 지나갈 때의 그 느낌. 나는 그 느낌을 잊었다. 그보다 더한 생존의 불안에 내 몸 하나 편하게 눌 수 있는 공간이 더 시급하다. 그래서 그런가 소개팅을 보면 그들도 잠시 생존층을 떠나 그들만의 공기층에 떠있는 것처럼 보인다. 발이 땅에 닿여 있는 것이 아니라 10cm는 떠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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