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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학거사 May 05. 2024

나노화에 따르는 영성 파편화

전문적 용어해설이 따라야 하는 부분에서 “나노” 기술은 눈으로 절대 볼 수 없는 10억분의 1미터인 나노미터 크기의 물질을 조작하는 기술로 원자, 분자 및 초분자 물질을 합성하고, 조립, 제어하며 혹은 그 성질을 측정, 규명하는데 활용되나, 나노 입자의 최소화에 따르는 독성(독소)적 요인에 대한 관심은 커지고 있습니다. 나노 입자 물질이 인체로의 침투에 따르는 폐해로 호흡이나 피부를 통해 체내로 유입이 가능하며 세포막을 자유자재로 투과할 수 있으므로 폐나 심장 등 여러 기관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심지어 뇌까지 침투가 가능하여 태아에게까지 전달될 수 있으므로 DNA까지 파괴될 수 있는 위험성에 관한 문제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더불어 "파편화"의 파편은 깨어져 부서진 조각으로 “화(化)” 접미사가 파편 명사 뒤에 붙어 그 명사가 뜻하는 대로 됨을 나타내 “깨어져 부서진 조각처럼 된” 깨져 여러 조각들로 나누어짐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통계학에서 “산포도"는 데이터가 얼마나 그리고 어떻게 퍼져 있나? 하는 빈도분포의 모양을 조사할 때에, 변량(분산 정도)의 흩어져 있는 정도를 가리키는 값을 나타냄보다는 불특정 영역으로 다양하게 쪼개 발겨진 경우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나노(Nano)는 일반적 이해도가 높을 수 있으나, 파편화에 대한 이해도는 끌어 올림의 필요가 있음에는 이데올로기 측면에서 다양하게 울고 볶아 먹었음에 따름으로 파편화 개념 자체는 그 본질의 전체성 개념과 대립함에 관한 본질주의의 특수하며 초월적 형태에 대한 파편화라는 측면으로 이용과 활용함에 따름입니다. 한 곳으로 집중되지 못하고 뿔뿔이 흩어져 있음을 적극 강조하는 기획된 통일성이나 전체성도 최종적으로 무효라는 것을 강조함으로써 현 지배력 행사가 단편화되도록 악랄하게 활용하므로 생각이 있고, 진정 올바로 사물과 현상을 바로 보려 한다면 항시 이에 대한 각성을 필요로 합니다. 파편화는 어떻게 보면 통합적인 것에 반대되어 부정적 의미가 강한 듯하지만, "상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는 자들"이 사회 정의를 획득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이 되어버려 통탄해야할 지경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파편화에 대한 논의는 대부분 필연적으로 다양성에 관심을 집중하지만, 그 본질의 양면적인 역할에 주의를 기우려야함에는 두 얼굴의 야누스처럼 한 수준에서 통합적이라고 간주되는 많은 결과들이 다른 수준에서는 파편화 지향적인 측면을 동시에 띠고 있기 때문일 것 입니다.     


특히 요즘 핫한, 파편화된 개인, 나노 사회가 유난히 현대 사회를 설명하는 핵심 단어로 급부상하고 있으며, 사회•문화•정치•종교 등 여러 방면에서 나노 사회적 특성이 큰 영향을 끼치고 있기 때문으로 나노 사회의 주요 특징 중 하나는 사회 구성원 다수가 자신의 가치관, 신념, 판단과 일치하는 정보만을 받아들이는 확증 편향을 가진다는 점이라는 것입니다. 나노 사회는 사람 각자마다 서로 다른 트렌드로 조각조각 쪼개진 사회를 뜻하며, 이는 각자의 개성이 뚜렷한 사회라는 긍정적인 뜻으로 읽힐 수 있지만, 그 이면에는 사회 구성원이 각자도생하고, 양극화된 단절이라는 의미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할 것으로 이로부터 출발하는 다양한 문제의 소지는 그 크기가 작아지므로 그 해결국면 또한 제시가 매우 어렵기 때문입니다. 특히 개개인이 자신에게 맞춰진 맞춤형으로 길들여지고 자신의 관심사에 맞는 것들만 선정하여 접하면서 자신의 견해와 맞는 사람과 소통하기를 위하고 다양하며 바름에도 자신의 의견과 생각에 반대되는 목소리는 듣지 못하고 듣지 아니하려는 경향으로 굳어지기 때문입니다. 저는 종교적 측면에서 이 현상은 믿음의 나노화에 따르는 영성 파편화에 따라, 교제도 교제이지만, 믿음의 계명에까지 영향을 미쳐 믿는 자들이 자기 자신에게 더 심취해 버리는 것 같다고 봅니다. 


믿음의 측면에서 바라보면, 나노 사회의 경직성을 기반으로 각자의 믿음 생활도 파편화 되어 있음을 발견해내기도 어렵지만, 더욱 심각한 지경에 이른 것은 각자가 그 작은 것으로 인한 영향을 당장 피부나 감각으로 느낄 수 없다는데, 심각성이 매우 큰 것으로 종교적 입장의 큰 틀에서의 입장 정리는 분명 우리를 그 심각한 폐해에서 벗어나게 해 줄 것입니다. 십계명 십계명 하지만, 사실 죄성 많은 인간으로서는 입에 그 이름조차 담기 어려움으로 경솔히 발음하여서는 아니 되는 대목으로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라 하심을 먼저 생각해 보며 신경 써야 할 것입니다. 너 자신은 너의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신령과 진정으로 사랑해야만 한다는 가장 큰 계명(또는 대계명)을 나노화하여 파편화해서는 절대 아니 됨에 심경 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창세전부터 오늘까지 하나님께서는 많은 사역을 이루시며, 항시 낡은 시대는 가고 새로운 시대가 오며, 해가 가고 날이 지나며 끊임없이 순환하며 은혜시대와 더불어 여러 세대가 경과하였지만, 과거의 사역보다 지금 역사하심은 규모가 더 방대하다 못해 강력함 그 자체를 이룰 것입니다.      

따라서 믿음의 선은 오직 주님을 향하여 중심 잡아 굵고 강직함을 이루어야 함에도 나노화로  파편화되고 쪼가리 됨조차도 느끼지 못함에 따라 스스로를 감당치 못하는 형국을 인지해야함에도 자신이 아는 것이 다라하며 내뱉어 버림은 진정 조심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한쪽으로 편중되거나 쪼가리 나 파편화되어 버린 복음 그 자체는 힘을 쓰지도 못하고 그대로 빛을 바라게 될 것으로 교회 공동체 또한 그 영향권에서 벗어나기 조차는 힘들 것이기 때문이라도 스스로 자유함을 유지하며 주님을 향한 중심축에 에라와 오류는 없는 것인가? 를 시시때때로 점검에 점검을 해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스스로들의 믿음에 관한 나노화와 파편화에 따름에 대한 분석이 지니고 있는 첫 번째 문제는 적절한 분석수준과 해결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는 것으로 믿으며, 일단 끝 날까지 함께 하심으로 처음으로 돌아감이란 첫사랑의 관점으로 접근할 수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큰 계명(또는 대계명)이 어떠한 이유에서든 나노화되어 쪼가리 되었음을 분별하고 찾아내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너무 어려워 머리 쥐 내리니~ 문자와 영어 쓰지 말고 좀~ 쉽게 알아듣기 하라 하신다면..      


먼저, 인간이 한계를 지님은 부인 못할 사실이므로 주신 것들 중에 우리가 이루고 지켜나가야 할 것들을 향해 달려가야 함에 있어.. 자신의 모든 것으로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해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함에 따르는 그 순도는 어느 정도인가? 를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진정성 있는 마음을 다한 믿음을 교회에서뿐만 아닌, 삶으로의 예배에 목숨 걸 정도인가? 아니라면.. 그에 따르는 부족함을 느낀다면 주님께 솔직히 고백해 보았는지? 돌아봄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으로 그의 나라와 그 뜻은 내가 잘 살아내고 내 가정의 평안과 나 있는 그곳에서의 화평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럼 뭐~ 여... 성령의 열매를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모든 소유를 팔아버리고 오직 주님~을 제대로 이루려 하는지.. 주님의 임재가 나와 함께 하여함에도 나노화 되므로 파편화 되지는 않았는가?를 신경 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에 와서는 되는 것 같은데, 생활로 돌아가면 신경줄 내려놓으므로 혈기 충만하고, TV나 문화 자체가 나노화와 파편화를 부추기다 못해 담가버리는데 그 속에 빠져 홀망 해버렸음에도 안 그렇다고 한들 그런걸 아니라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사역은 우리가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으며, 더욱이 세상 사람들이 인식할 수도 없으므로 잘 믿으려면 성령의 인도와 동행, 더불어 주를 향한 마음씀씀이는 항시 자신의 모든 것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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