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서 말하는 재림의 흐름을 각성 → 분별 → 정화 → 준비 → 드러남으로 정리할 수 있으며, 이는 요엘 2장, 마태복음 24장, 그리고 계시록 전체 구조를 통합한 패턴으로, 인간과 교회, 세상의 영적 변화가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과정을 보여 준다. 그러나 2025년을 "각성의 시작점"으로 설정했을 때, 드러남 즉 예수 그리스도의 현현 시점을 계산할 수 있는가에 대해 명확하게 선을 긋을 수 없음을 연대나 특정 날짜를 추정하는 것은 성경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 예수님은 네 번이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른다”(마 24:36), “인자는 너희가 생각하지 않을 때 온다”(마 24:44),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 권한에 두셨다”(행 1:7), “주인이 어느 날 올지 모르니 깨어 있으라”(눅 12:40)라고 선언하셨다. 이는 인간이 날짜를 계산하려 들 경우, 준비와 깨어 있음이 멈출 수 있음을 경계한 것이다.
따라서 연도를 계산해 재림 시점을 특정하는 것은 성경적 패턴에 어긋난다. 그렇다고 해서 징조를 전혀 볼 수 없는 것은 아니며, 성경은 시대적 징조와 영적 전환의 흐름은 읽을 수 있다고 말한다. "드러남"이란 개념 자체를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으며, 성경에서 드러남, 즉 현현은 두 층위로 나뉜다. 하나는 전 세계가 한순간에 목격하는 실제적 재림으로, 계시록 1장 7절에서 “모든 눈이 그를 보리라”고 한 사건으로 이 사건은 시점 예측이 불가하며 단번에 이루어진다. 다른 하나는 점진적, 영적 현현으로, 각성 → 분별 → 정화 → 준비라는 단계적 과정을 거친 후 나타난다. 각성 단계에서는 성령의 움직임과 숨겨진 것들의 드러남이 일어나며, 분별 단계에서는 진짜와 거짓이 극명히 드러난다. 정화 단계는 개인, 교회, 나라 차원의 영적·윤리적 정결을 요구하며, 준비 단계에서는 사명자 세대가 부상하고 시대적 사명이 재정렬된다.
이 네 단계를 통과해야 마지막 단계인 드러남, 즉 현현이 성경적 구조 속에서 나타날 수 있다. “드러남의 시점”이란 질문은 두 가지 가능성을 포함한다. 하나는 전조적 드러남, 즉 징표적 현현을 의미하며, 다른 하나는 모든 세계가 목격하는 실제 재림을 뜻한다. 전조적 드러남은 각성에서 준비까지의 순서를 거친 후 나타나며, 이를 수년에서 십여 년 단위의 장기적 흐름으로 보는 것이 성경 패턴과 부합한다. 각성의 신호가 나타나면 분별의 시대가 시작되고, 정화 과정을 거쳐 준비된 사명자 세대가 등장할 때 전조적 드러남이 나타날 수 있다. 반면, 예수 그리스도의 실제 재림은 날짜와 시점을 인간이 절대 알 수 없다. 성경은 이러한 사건이 예측 불가임을 명확히 선언하며, 인간이 계산하려는 모든 시도를 막는다. 따라서 인간이 예측할 수 있는 범위는 징조와 영적 전환의 흐름을 읽는 데 있다.
우리는 시대적 징조가 나타나는지, 각성이 진행되는지, 거짓과 진짜의 분별이 일어나는지, 어둠과 빛의 충돌이 발생하는지, 사명자 세대가 등장하는지, 개인과 민족 차원의 정화가 작동하는지 등을 관찰할 수 있다. 그러나 재림의 연도, 월, 구체적 시점은 절대 계산할 수 없다. 성경은 “징조를 읽으라” 했지만 “날짜를 계산하라”라고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2025년을 각성의 시작점으로 본다면, 그 이후의 단계들은 순차적이고 점진적으로 깊어질 것이다. 전조적 드러남은 단계가 충족될 때 나타나며, 수년에서 십여 년 단위의 곡선적 흐름을 따라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각성은 단지 신호일 뿐이며, 분별과 정화 과정은 수십 년 단위로 길게 이어지고, 준비 단계는 세대 단위로 나타난다. 따라서 전조적 현현은 긴 시간에 걸쳐 점진적으로 드러나며, 예수 그리스도의 실제 재림은 인간이 어느 때에 올지 알 수 없는 사건으로 남는다.
결론적으로, 징조의 드러남은 예측 가능하지만, 그리스도의 실제 재림 시점은 예측 불가하다. 각성 → 분별 → 정화 → 준비 → 드러남의 구조는 성경적 재림 패턴을 정확히 요약한 것으로, 2025년을 각성의 출발점으로 본다면 세계적·영적 파동은 점차 강화될 수 있다. 그러나 마지막 단계, 즉 모든 눈이 보는 현현은 인간의 계산과는 무관한 차원의 사건임을 명확히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