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이기는) 자로 살아낸다는 것..

by 잡학거사

성경은 마지막 시대를 단순히 종말이라는 시간 개념으로 설명하지 않치만, 그것은 무엇이 참인지, 누구를 따를 것인지가 분명히 드러나는 분별의 시기가 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많은 사람이 미혹을 받겠다”고 말씀하셨고, 사도 바울은 “사람들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자기 귀가 가려워서 스승을 많이 두리라”고 경고함에는 세상이 무너진다는 뜻이 아니라, 기준이 흔들린다는 의미이다. 모두가 흔들릴 때란 전쟁이나 재난만을 뜻하지 않으며, 옳고 그름, 진리와 거짓, 생명과 편리함의 경계가 흐려지는 상태를 말하며, 이러한 시대에 끝까지 남는(이기는) 자들은 특별한 능력을 가진 이들이 아니다. 성경이 말하는 “남은 자”는 언제나 소수였고, 조용했으며, 눈에 띄지 않았으나 그들은 기준을 잃지 않았으며, 노아는 세상이 조롱할 때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방주를 지었고, 엘리야는 무너진 제단 앞에서 홀로 서 있었으며, 다니엘은 법이 바뀌어도 기도의 방향을 바꾸지 않았다. 남는다는 것은 싸워 이기므로 살아남는 문제가 아니라, 변하지 않는 자리에 머무는 문제로 이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자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새로운 계시나 극적인 표적이 아니라, 이미 주어진 말씀을 붙드는 태도와 그를 숙성시키기 위해 인내함을 필요로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흔들림은 외부에서 시작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자신들의 마음속에서 먼저 일어나며, 타협이 합리화되고, 침묵이 지혜로 포장되며, 불편한 진리는 사랑이 없다는 이유로 밀려납니다. 이때 남는 자들의 질문으로 “이 선택이 θ 앞에서 옳은가?” 하는 질문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 끝까지 살아남을 것으로 세상이 급진적으로 바뀌는 때는 언제나 선택이 요구되며, 성경에서의 결정적 전환점들은 늘 선택의 순간과 함께 등장합니다. 출애굽의 밤, 이스라엘 백성은 유월절의 피를 문설주에 바를 것인지 말 것인지 선택해야 했고, 광야에서의 만나는 하루치만 거둘 것인지, 더 쌓아둘 것인지 선택해야 했습니다. 바벨론 포로지에서는 우상에게 절할 것인지, 풀무불 속으로 들어갈 것인지 선택해야 했으며, 마지막 시대인 지금 역시 예외는 아니며, 선택은 대개 극단적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매우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얼굴로 다가와 “이 정도는 괜찮지 않나?”, “모두가 하는데”, “지금은 때가 아니다”라는 말은 언제나 선택의 순간에 정확히 등장합니다. 요한계시록이 말하는 짐승의 표 역시 단순한 공포의 상징이 아니라, 생존과 편리함을 이유로 양심과 주권을 넘겨주는 선택을 의미하며, 표를 받는 행위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표를 받게 만드는 사고방식입니다.


작금의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자들은 점점 더 명확한 질문 앞에 서게 될 것으로 θ을 믿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θ을 따를 것이냐의 문제에 봉착하게 될 것입니다. 믿음은 마음속에 숨길 수는 있겠지만, 따름은 반드시 선택으로 드러나며, 예수께서 “너희가 θ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하신 말씀은 마지막 시대인 지금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중립은 사라지고, 유보는 불가능해지므로 선택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태도조차 하나의 선택으로 정의될 것입니다. 매우 심각하며 더욱 중요한 문제는 이 선택의 압박 속에서 교회마저 흔들릴 수 있다는 점으로 성경은 마지막 시대에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들”이 많아질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는 교회가 사라진다는 뜻이 아니라, 교회가 체제 안에서 무해한 존재로 길들여진다는 의미로 진리를 말하지 않아도 유지되는 교회, 회개가 없어도 운영되는 공동체는 겉보기에는 안정적이지만, 실제로는 영적 권위를 상실한 상태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때 마지막 시대의 남는 자들은 제도보다 진리를, 분위기보다 말씀을 우선시하며, 그들은 교회를 사랑하기 때문에 침묵하지 않으며,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진실을 말할 것입니다. 이는 분열을 만들기 위함이 아니라, 무너짐을 막기 위함으로 성경 속 선지자들이 늘 불편한 존재가 되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들은 시대정신에 맞서는 사람들이 아니라, θ의 기준을 현재로 불러온 사람들로 끝까지 남는 사람들.. 이기는 자들은 세상을 미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세상과 동일해지지도 않으며, 예수께서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실 때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구하지 않고, 악에 빠지지 않게 하시기를 구한다”고 하신 것처럼, 이들은 세상 한가운데에서 다른 절대적 기준으로 살아갑니다. 이것이 마지막 시대의 증언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말보다 삶으로, 주장보다 태도로 드러나는 증언과 증인들이 될 것입니다. 작금의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자들의 소망은 세상의 붕괴가 아니라, θ의 나라가 드러나는 것이기 때문에 그리하야.. 그들은 두려움보다 깨어 있음으로 살아내며, 종말을 계산하기보다, 오늘의 선택을 점검해 나갈 것입니다. 예수께서 반복해서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특정 사건을 맞히기 위함이 아니라 매 순간 주인 앞에 서 있는 종의 자세를 유지하라는 뜻이었으므로 끝까지 남는 자들은 완벽해서가 아니라, 돌이킬 줄을 알고 내려 놓을 줄 알아야 하기 때문에 매우 적은 수가 살아남게 될 것입니다. 넘어질 수는 있지만 회개할 줄 알고, 흔들릴 수는 있지만 다시 절대 기준으로 돌아와야 하는 이 마지막 시대는 돈 있고, 강하고 똑똑한 자들의 시대가 아니라, 끝까지 주님께 붙어 바지 가랭이를 흔들어대는 있는 자들의 시대가 될 것입니다.


이김은 세상을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지키는 것으로 세상이 바뀌는 때, 선택을 요구받는 사람들은 결국 한 가지 질문 앞에 서서 “지금 이 자리에서 나는 누구의 편에 서 있는가?” 그 질문에 대해 날마다 답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그것이 성경이 말하는 마지막 시대의 남는 자들이며, 모두가 흔들릴 때 끝까지 살아남는 사람들로 그들의 삶은 요란하지 않을 수 있으나, θ 앞에서는 분명한 증인으로 각인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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