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바뀌는 때마다 성경이 언제나 “선택”을 제시함은 θ께서 인간에게 부담을 지우기 위함이 아니라, 시대가 만들어내는 가장 위험한 착각으로부터 사람들을 깨어 있게 하기 위함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 때에 대한 성경적 경고는 재난이나 종말의 공포보다, 미혹과 착각에 더 초점을 둠에 예수께서는 마지막 때의 징조를 말씀하시며 “사람들이 너희를 미혹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반복해서 경고하셨습니다. 이는 위협보다 설득이, 강압보다 합리화가 더 위험하다는 뜻으로 시대적 착각이란 악이 노골적으로 악의 얼굴을 하고 등장하지 않는 상태를 말합니다. 오히려 안전, 발전, 공공의 이익,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나타나므로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악으로 인식하지 못한 채 받아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마지막 때에 선택이 요구되는 명확한 이유와 사유는, 이처럼 분별하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스스로 생각하지 않으면 기준을 잃기 쉽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선택은 강요의 결과가 아니라, 기준 상실의 결과로 자연스럽게 발생하므로 성경은 마지막 시대를 “어둠이 갑자기 덮치는 때”로 묘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람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말할 때” 임한다고 말하며, 이는 가장 위험한 순간이 혼란이 아니라 안도감일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선택은 위기의 순간보다, 평온해 보이는 일상 속에서 더 많이 요구되며, 무엇을 거부할 것인가? 보다, 무엇을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일 것인가? 가 문제가 될 것입니다.
마지막 때에 요구되는 선택은 선과 악 사이의 단순한 윤리적 판단이 아니라. 그것은 무엇을 절대 기준으로 삼고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문제로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은 우상을 숭배하라는 직접적 명령보다, 일상적인 문화와 체제 속에 스며든 동화 압력에 먼저 노출되었습니다. 음식, 언어, 이름, 교육을 통해 정체성을 바꾸려는 시도는 겉보기에는 위협적이지 않았지만, 결국 신앙의 뿌리를 흔드는 과정으로 이처럼 성경은 마지막 때의 위험을 “갑작스러운 배교”보다 “점진적인 무감각”으로 제시합니다. 그리하야.. 그래서 선택은 한 번의 결단보다, 반복되는 작은 타협 속에서 드러나며 “이 정도는 괜찮다”, “다른 사람도 다 그렇게 한다”, “지금은 때가 아니다”라는 생각은 스스로를 합리화하는 동시에 분별력을 무디게 만드는 요소가 될 것입니다. 이러한 착각이 쌓일수록, 어느 순간 더 이상 선택하지 않는 것이 선택이 되어버림은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짐승의 표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단순히 외형적 표시를 말하기보다, 사고와 선택의 권한을 체제에 넘겨주는 상태를 상징하며, 표를 받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구조는 사람들에게 질문을 제시합니다. “너의 생존과 안전의 근거는 무엇인가?” 마지막 때에 선택이 요구되는 이유는, 바로 “이 질문을 회피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다.“라는 문제는 이러한 시대적 착각이 개인 차원을 넘어 공동체와 교회 안에서도 작동한다는 점입니다.
성경은 마지막 때에 “많은 사람이 사랑이 식어질 것”이라고 말함은 사람들이 갑자기 악해진다는 뜻이 아니라, 진리를 지키는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려는 태도가 확산된다는 의미입니다. 교회가 유지되는 것과 진리가 살아 있는 것은 같은 문제는 아니며, 마지막 때의 교회는 종종 “현실적”이라는 이름으로 침묵을 선택함에는 갈등을 피하고, 사람을 잃지 않기 위해 불편한 말씀을 줄여 버립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러한 상태를 지혜로 평가하지 않고, 오히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능력을 부인하는 자들”이라고 강력하게 촌철살인 해 버립니다. 이는 마지막 때의 가장 위험한 착각 중 하나이기 때문으로 형식이 남아 있으므로 안전하다고 느끼는 착각, 활동이 있으므로 살아 있다고 여기는 착각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하야.. 선택은 개인에게만 요구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에게 요구되며, 진리를 말할 것인가, 분위기를 지킬 것인가?. θ을 두려워할 것인가?, 사람의 반응을 더 의식할 것인가?. 이러한 선택 앞에서 절대적 중립은 존재나 성립 자체를 부인합니다. 침묵은 언제나 현 체제를 지지하는 방향으로 작동함에 마지막 때 자신들의 선택은 목소리를 높이는 문제가 아니라, 기준을 어디에 두는가?의 문제에 집중하여야 할 것입니다. 세상이 바뀌는 때 선택이 요구되는 이유는, θ께서 사람들을 시험하시기 위함이 아니라, 스스로를 속이지 않도록 하기 위함으로 성경은 인간의 가장 큰 문제를 무지(무시)보다 자기기만으로 봅니다.
“스스로 부요하다 하나 가난한 것을 알지 못한다”는 라오디게아 교회의 모습은 마지막 시대 신앙의 자화상과도 같으며, 착각의 망상 해수욕장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부에서 만들어지므로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자들에게 선택은 두려움의 근거가 아니라 깨어 있음의 증거가 될 것입니다. 자신의 선택이 철저히 요구된다는 것은 아직도 돌이킬 수 있는 기회가 남아 있다는 뜻이기 때문에 θ은 언제나 심판 이전에 분별의 시간을 주셨고, 경고 이전에 기준을 다시 제시하십니다. 선택은 그 기준 앞에 서는 행위로. 결국 및 종국적 마지막 시대의 질문은 이것으로 “나는 무엇에 의해 살아가고 있는가?.” 여론인가?, 체제인가?, 편리함인가?, 아니면 말씀인가?. 이 질문에 제대된 답을 준비하지 않는다면,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채.. 스스로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채 멍하니 장골 병신처럼 선택당하게 될 것입니다. 세상이 바뀌는 때에 선택이 요구되는 가장 큰 이유와 목적은 가장 위험한 시대적 착각인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사는 태도”를 깨뜨리기 위함으로 깨어 각성된 용기있는 자들은 세상의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그 변화 속에서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를 분명히 알아내며 오늘의 순간을 어디에서든 씩씩하게 살아내며 푯대를 향해 나아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