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 말하는 종말은 파괴로 끝나는 이야기가 아니라, 흩어진 것을 다시 하나로 모으는 완성의 전개이다. 창세기에서 시작된 θ의 통치는 인간의 타락으로 인해 왜곡되었지만, θ은 그 통치를 포기하지 않으셨다. 인간의 죄로 인해 깨어진 것은 단지 개인의 도덕성이 아니라, θ과 인간, 인간과 인간, 인간과 피조 세계 사이의 질서였다. 종말에 θ께서 이루고자 하시는 통일은 바로 이 깨어진 관계들을 본래의 자리로 회복시키는 일이다. 새 하늘과 새 땅은 단절된 다른 세계로의 도피가 아니라, θ의 통치가 온전히 회복된 현실을 의미한다. 이는 시간과 공간이 사라진 추상적 상태가 아니라, θ의 뜻이 더 이상 거부되지 않는 상태다. 다시 오시는 주님은 새로운 통치를 시작하시는 분이 아니라, 이미 시작하신 θ의 나라를 완성하시는 분이다. 종말은 θ이 패배한 세상을 정리하는 사건이 아니라, 끝까지 책임지시는 사건이다. 이 통일의 중심에는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다. 성경은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창조되었고, 그를 위해 존재한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종말의 통일은 어떤 사상이나 제도, 국가나 문명이 중심이 될 수 없다.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하늘과 땅,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하나로 묶인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종말의 본질이다.
θ은 이 종말의 통일을 이루는 과정에서 인간을 수동적 구경꾼으로 두지 않으신다. 오히려 성경은 성도들을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부르며, θ의 통치에 참여하는 존재로 부르신다. 이는 인간이 θ을 대신해 통치자가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θ 아래에서 질서를 회복하는 역할을 맡았다는 뜻이다. 타락 이전 아담에게 주어졌던 청지기적 왕권이,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회복되는 것이다. 성도들의 왕권 회복은 세상적 권력 장악이나 정치적 지배를 의미하지 않는다. 성경이 말하는 왕권은 자기 통제에서 시작된다. 죄와 욕망, 두려움과 거짓에 더 이상 지배받지 않는 자유가 먼저 회복되어야 한다. 그 자유를 통해 성도는 세상의 방식이 아니라 θ의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이것이 종말을 향해 살아가는 성도들의 첫 번째 역할이다. 또한 성도들은 θ의 통치가 어떤 것인지를 삶으로 증언해야 한다. 강제가 아닌 사랑, 폭력이 아닌 진리, 통제가 아닌 회개를 통해 다스리시는 θ의 성품을 드러내는 것이다. 종말의 통일은 힘으로 밀어붙이는 획일화가 아니라, 진리 안에서의 일치다. 성도들은 이 일치의 미리보기로서, 세상 속에서 다른 질서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존재이다.
그러나 이 종말의 통일을 방해하려는 시도는 언제나 존재해 왔다. 성경은 적그리스도의 영이 이미 세상 가운데서 활동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 영의 특징은 노골적인 반대보다 대체를 시도한다는 점이다. 그리스도를 부인하기보다, 그리스도를 대신할 무언가를 제시한다. θ의 나라 대신 인간이 설계한 이상 사회를, 구원 대신 체제와 기술과 이념을 내세운다. 이러한 접근은 늘 그럴듯한 논리와 선한 명분을 동반한다. 평등, 안전, 번영, 인권, 자유와 같은 가치들은 그 자체로 문제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들이 θ 없이, 그리스도를 배제한 채 절대화될 때, 종말의 통일을 부수는 도구로 변한다. 성경은 이것을 우상숭배라고 부른다. 창조주를 대신해 피조물이 중심이 되는 순간, 질서는 다시 무너진다. 그래서 마지막 때의 가장 큰 싸움은 선과 악의 단순한 대결이 아니라, 누가 중심이 될 것인가에 대한 싸움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만물의 주로 고백되는가?, 아니면 인간의 이성·집단·체제가 그 자리를 차지하는가?의 문제다. 성도들은 이 싸움에서 요란한 행동보다 분별로 서야 한다. 모든 영을 다 믿지 말고, 그것이 그리스도를 높이는지, 대체하는지를 살피는 태도가 요구된다.
종말의 통일을 향한 θ의 뜻을 아는 성도들은 현재를 다르게 살아간다. 세상의 흐름에 휩쓸리지 않되, 세상과 단절하지도 않는다. 두려움으로 숨지 않고, 분노로 싸우지도 않는다. 오히려 푯대를 분명히 하여 살아간다. 사도 바울이 말한 푯대는 세상에서의 성공이나 영향력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온전히 닮는 것이다. 다시 오시는 주님을 기준으로 오늘을 살아가는 삶이다. 성도들의 왕권 회복은 마지막 날에 갑자기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땅에서 연습되고 훈련된다. 진리를 선택하는 작은 결단, 편리함보다 양심을 따르는 선택, 침묵보다 정직을 택하는 태도가 모두 그 훈련의 일부다. 이러한 삶은 세상을 단번에 바꾸지는 않지만, θ 나라의 질서를 현재로 끌어온다. 결국 종말의 통일은 인간이 만들어내는 성취가 아니라, θ께서 완성하시는 약속이다. 그러나 그 약속은 성도들의 삶과 무관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θ은 끝을 정하신 분이지만, 그 과정 속에 성도들을 동역자로 부르신다.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는 신앙은 현실 도피가 아니라, 오늘을 책임 있게 사는 힘이다. 다시 오시는 주님을 중심으로 모든 것을 통일하시려는 θ의 뜻은 지금도 성도들을 통해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이루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