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너무 Jul 05. 2019

도움이 필요해

사사로운 일기입니다

 지난 6월, 나는 계속되는 우울감에 한 달간 잠시 일을 쉬며 고찰하는 시간을 가졌다.

24일째에 내린 결론은 내가 나를 잘 이해하고 있지 못했구나 = 나를 알고 있다고 착각했구나 였고, 앞으로

틈틈이 나에 대해 알아가며 생각하며, 여유를 찾아보기로 결심했다.

마음이 왠지 홀가분해지며 문제가 해결될 것 같은 기분이 나를 희망차게 해 줬다.


일주일 정도는.


프리랜서인 나는 한 달의 휴식기를 끝내고 다시 작업에 들어간다.

두 개의 일 진행에 이달 말 또 들어가는 새로운 일이 하나. 거기에 이미 일정이 차 있어서 받지 못한 의뢰 정확히 이번 달에 5건. 그중에서는 정말 개인 프리랜서로 받기 뿌듯한 일도 있었다.

배부른 소리인지 모르겠지만, 의뢰가 들어와서 기쁘기보다는 기회를 놓쳤다는 생각과, 몰아치는 일에 또.

이렇게 내가 지워지는구나.

-하는 엄청 난 상실감이 왔다. 이상하게 인정받고 있는 것 같은데, 내 자존감은 수직 하락하고 있다.  


생각을 정리하고 나를 바꾸기에 한 달이란 시간은 길지 못한 시간이라 생각이 든다.

결국 너무 순식간에 지난 결의에 찬 글을 쓴 것이 도루묵이 된 셈이다.

조금 긍정적으로 보자 하면, 한 달간 나의 문제점을 조금이나마 파악해서 더 크게 다가온 것일지도 모른다.

또 몰아치는 작업들을 해보는데 이전같이 집중하기가 어려워졌다.

생각이 많아졌고, 시간을 쪼개서 책 읽기나 아침운동. 그림 그리기를 계속 도전해봤다.


그리고 오늘. 나는 울면서 일어났다.

동거인에게 '오늘도 좀 기분이 울적한 것 같아.' 하며 나의 현황을 보고했고,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아 작업을 시작---- 하는 순간, 1시간도 채 안되고 펑펑 울었다. 행복하지 않다. 즐겁지가 않네.

하고 싶은 일이 많은데, 해야 할 일도 너무 많다. 곧 있을 엄마 생신 때 작업 납품일이 겹쳐 있어서 이번 주말에 같이 생일 데이트를 하기로 약속했다. 그마저도 작업 때문에 울면서 전화 해 취소해야 했다.

다음 주 월요일 5년 만에 만나는 지인과의 약속도 벌써 부담스럽다. 밥 먹는 시간도 아깝고,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울고 있는 나 자신이 감당이 안된다.


도움이 필요하다. 정말로.


눈물 쏟으며 누구 없나, 전화기를 뒤졌다.

너무 외롭고 괴로웠는데, 이 감정을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 나에게 작은 해결책이라도 내려줬으면.

정말 진짜 이건 나 스스로는 할 수가 없는 일이라는 생각에 심리상담소에 전화를 했다.

작업 중 컴퓨터 앞을 떠나는 것조차 강박적으로 불안한 나머지,  전화상담을 진행했다.

우선 진행한 간략한 검사지 결과는 '버닝 아웃' '만성 우울' '업무 스트레스 수치 위험도' 라 표시되었다.

우울하니까 검사 결과도 영향을 받았겠지만, 문자로 위의 세 결과를 접하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두어 시간의 전화 상담을 받으면서도 필사적으로 눈물을 참아댔다.

어릴 때부터도 이런 우울감은 잦았었고 지금은 성장했으니 극복한 것이라 생각했다.

아. 나 정말 지금 도움이 필요한 상태가 맞는구나.


아주 짧은 상담 결론은 이러했다.

- 일에 너무 자신을 이입하지 말 것

- 현재 에너지가 떨어진 상태이므로, 욕심을 내 무언가를 하려고 보다 죄책감 없이 잘 쉴 것

- 일을 하는 중이더라도 복잡한 마음이 들 때엔, 잠시 내 정신을 격리시켜 이완시킬 것


뭔가. 너무 당연한 것 같은데, 내가 이걸 안 하고 있었지 뭐람.

글을 쓰는 지금도 너무 당황스럽다. 상담받는 내내 그리고 지금도, 작업해야 할 화면을 계속 켜 두고 번갈아 하고 있었는데, 이걸 몰랐다고? 이 활자들을 쓰면서도 화면이 계속 눈에 걸려 정말 초조해진다.

옆에 켜 둔 왕 큰 D-day 시계도.


나는 일단 이 글을 저장하고.

작업하는 프로그램을 닫고.

컴퓨터를 대기화면이 아닌 종료를 하고.

떡볶이 좀 사러 나가야겠다.


먹고 나서 작업 마감은 다시 생각해야지.

나는 도움이 필요한 상태였고,  좀 더 행복한 기분으로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는 내가 되었으면 한다.

사실 조금 쑥스럽고 사적인 이야기지만, 부족한 대로 기록으로 남겨야지.

원천적인 문제를 해결하기는 너무 짧은 시간이었지만, 잠시 내 생각을 정리하기에는 중요했던 짧고도 긴 50분 이었다.

행복하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