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너무 Dec 09. 2023

무기력이 찾아와서 크로키를 1000번 그렸다

30초 크로키 1000번 기록

매일 아침, 눈 뜨자마자 

30초 크로키 100개씩 그리기로 했습니다.

'딱 이것만 하자. 이것만이라도 해내보자.'



저는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를 만듭니다.

올해 꼬박 시간 들여 만들고 있는 작업이 있는데요,

누가 봐도 멋지게 완성하고 싶은 욕심이 너무나도 큰 나머지

꽤 오랜 시간 일상생활이 힘들 정도로 

무기력과 불안에 빠져 있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이것밖에 안 되는 걸까?'

'이것이 최선일까?' 

'가치가 있는 일일까?'

자기 의심과 혐오가 끝없이 밀려들어옵니다.

빈 화면 앞에서 울던 날이 어찌나 많았던지요,


주변의 조언을 받아 지난 11월 한 달간, 

잠시 작업과 거리를 두기로 했습니다.

미뤄둔 책과 영화를 보고, 그림을 그리며 

유튜브에도 영상을 하나씩 올려보는 

도피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연습하자.'

'무엇이든 원하는 장면을 그릴 수 있도록 준비하자.'

라고, 마음먹은 것이 겨우 며칠 전입니다.



매일 아침.

자책과 욕심은 크로키에서도 드러나는 듯합니다.

거친 선으로 시간에 쫓겨, 

'이것밖에 못 그린다고?' 연신 외치는 자신이 버거워

또다시 여기서마저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아무런 평가도 없을 크로키마저 스스로를 옥죄고 있습니다.


30초 다음 30초.

떠오른 생각들을 30초마다 애써 흘려가며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연습을 합니다.


30초

잘 보이고 싶은 욕심.

30초

인정받아야만 가치를 얻는다는 생각.

30초

어제를 자책하며 잃어버린 오늘.

30초

내일만 바라보며 사라진 지금.

30초 

여전히 나 스스로가 부끄럽고 벅차다는 느낌에

'이 생각은 어디서 시작된 걸까' 하는 생각의 생각

30초

 지난 30초보다는 지금의 30초에 집중하는 시간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감각


800번째 그릴 때 즈음엔,

그래도 내가 여전히 그림을 좋아해서 다행이라는 생각.

30초 그림,

30초 생각.


30초

나는 당신에게 어떻게 보이기를 원하는가.

30초

나는 어떤 그린 그림을 그리고 싶은가.

30초

그 이상은 도달할 수 있는가.

30초

모자라고 어설픈 나를 견딜 필요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살아낼 수 있기를

30초

작은 실패들을 쌓고, 그마저 사랑하기를

나의 작고 짧은 오늘들을 온전히 알아가기를

30초

오늘도 나는 내가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기를.



1000번째 크로키를 채우면서는

어쩌면 내일은 그림을 그리는 손이 조금 더 가벼워지지 않을까? 

하는 작은 기대.

다시 내 작업을 시작할 힘이 조금은 쌓여갈지도 모르겠다는 

작은 마음의 준비.


30초 크로키 1000번 기록 마칩니다


그리고 무엇이든,

하다 보면 되겠거니.

매거진의 이전글 유명하지 않기 때문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