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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무 Jan 30. 2024

나는, 오늘도 내가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고 있음

매일 30초 크로키 100개 | 6000개 모음

매일 아침, 눈 뜨자마자
30초 크로키 100개씩
그리기로 했습니다.


매일 유튜브 라이브로 100개씩 영상을 기록하고,

1000개가 모일 때마다 생각을 정리합니다.

5000개부터 6000개까지, 열흘 간 크로키 천 개 기록 (6)

https://youtu.be/YGg5ocEcRjI


나는, 오늘도 내가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고 있음


 이미 세상에는 멋진 것이 넘쳐납니다.

음악, 글, 그림, 영화, 한계를 뛰어넘는 서사, 감동을 주는 사람과 창작물. 이 모든 걸 즐기기만 해도 인생은 짧겠습니다만, '나도 창작자의 길을 뒤쫓고 싶다' 생각한 이후부터는 웃기게도. 하루하루 매일이 너무나도 지난하고 괴롭게 느껴졌습니다.


 저는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있습니다. 기반도 근본도 지식도 없이, 굴러가며 넘어지고, 좌절하고, 오열하며 하루의 대부분을 보냅니다. 할 수 있는 것보다 없는 것이 더 많고,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태반인데. 하필이면 너무나도 멋진 작품들을 보고 자라 꿈을 키워 온 바람에, 굴러가는 이 길이 더 거칠게 느껴집니다.


 즐기고 말면 될걸. 왜 직접 내 손으로 만들어봐야 하는지 아직도 정확한 이유는 찾지 못했습니다. 다만, 이 외의 다른 삶을 생각해 본 적 없었고, 이렇게 멋진 걸 만들어낸 사람들과, 언젠가 나란히 앉아 대화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아무리 해도 버릴 수 없는 저의 주춧돌이 되어버린 지 오래입니다.


 그렇게 구르다 지쳐버린 어느 날, 나에 대한 지겨움에 잡아먹힐 시간에 무지성 근본 쌓기 수련이라도 해보자는 생각으로, 아침에 크로키 라이브를 시작한 지 두 달이 되어갑니다. 어느 정도 습관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어려운 점이 있다면, 완성되지 않는 연습의 과정을 기록하고 펼쳐놓는 것이 항상 부끄럽고, 바닥을 들킨 기분이 들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어떤 날은 즐겁고, 또 어떤 날은 괴롭고. 매일 같은 크로키를 하는데, 그날의 감정에 따라 기복이 느껴지는 것이 가장 별로입니다. 삶은 선형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오르내리는 매일의 나에게 실망해 가라앉을 때도 있고, 숫자를 쌓아가며 기록하는 것에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지. 갑자기 허무함을 느낄 때도 있었습니다. 엉성한 걸 하루라도 빨리 덮어버리고 싶은 마음. 그리고 내가 동경해 온 멋진 사람들과 나의 거리를 조금이라도 많이 좁히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일 것입니다.




 며칠 전, 감정의 기복이 너무나도 큰 날. 새벽에 깨어나 '나는 내 삶을 잘 살아내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으로 엉엉 운 적 있었습니다. 지금보다 더 나은 방법을 찾고, 더 효율적으로. 내 생이 끝나기 전에, 더 많이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이어졌습니다.


 이 생각은 가만 보면, 불안과 괴로움보다는 '막막함'에 가까웠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려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오는 답답함. 뭘 하는지, 뭘 해야 할지도 모르면서, 뭘 못할까 봐 울고 있는 게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일단, 움직여.

일단, 내딛고.

일단, 엉망진창 크로키부터 그렸습니다.


 나는 왜 울고 있을까. 근본 없고,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많고, 할 수 있는 것보다 없는 것이 많은 건, 지난 몇십 년 동안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살아온 일상입니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을 다시 해 봅니다. 저는 만들고 싶습니다. 내가 받아온 감동, 바라본 장면, 형태, 움직임, 언젠가 만들어내고 느껴볼 것입니다. 내가 지금껏 즐기고 감동받아온 모든 것에는 얼마나 많은 시간과, 사랑과, 증오와, 눈물이 쏟아져 있는가.




 2년 전에 만들었던 저의 첫 애니메이션이 TV의 한 프로그램에 방영되기로 한 소식을 받았습니다. 부끄럽고 흠이 많다고 생각한 작업이었지만, 내 손으로 만들어 낸 것이 내가 바라봐 온 화면에서 움직일 기회가 생긴다는 것은 진짜일까 싶으면서도, 작은 위안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잘 사는 것일지, 그때도 몰랐지만 지금도 잘 모르겠습니다.

우선 지금 당장하고 있는 이 유튜브와 글을 업로드 한 뒤에, 미뤄뒀던 문서 작업 약간. 밥 잘 챙겨 먹고, 오늘은 영양제 꼭 챙기고. 저의 애니메이션을 계속 만들 것입니다. 그전에, 흰 종이에 이렇게 쓰고 아주 커다랗게, 눈앞에 붙여버릴 겁니다.


나는 오늘도, 내가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고 있음.


30초 크로키 1000개 기록 모음, 여섯 번째.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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